2.2. 뼈가 시리도록 추웠던 겨울

2. 보금자리

by 민달팽이

12월이던가, 2월이던가, 우리 가족은 모스크바를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집 밥집에서 엄마에게 통보 받은 날로부터 비행기에 몸을 실은 날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우리 가족이 엉겨붙어 살던 집을 떠났고,

앞으로 항상 같은 학교를 다닐 것만 같던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내 몸만한 이민 가방에 짐을 차곡차곡 싸며

일반적이지 않은 보통의 하루들을 보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자그마치 -24도의 날씨가 우리를 반겼다.

“아, 춥다”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꽁꽁 얼어버린 손에 입김을 호호 불며 말했다.



그 날 처음 느꼈던 것 같다.

통하지 않는 언어,

낯선 주변의 건물들,

마음의 한구석에 구멍이 뚫린 기분.

그래, 아마 그 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이 안내 받은 집에는

아직 우리의 짐이 도착하지 않아 집주인의 취향과 손때가 가득 묻은 가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의 인생에서 본 가구들 중에 가장 화려해서

혹시나 내가 닿으면 때가 탈까 소파에 제대로 기대지도 못했다.


참으로도 큰 침대에

나의 작은 몸을 눕히며 이 집에서도 겉도는 스스로를 꽉 껴안았다.


러시아에서 미국 국제학교를 다닌다는 건

꼭 영어를 쓰는 다른 나라에 가는 것만 같았다.

생전 처음 듣는 러시아어보다는 영어가 더 익숙하기에 내가 덜 외로울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갔지만

몇시간 사이에 그 희망은 자비없이 즈려밟아졌다.


말도, 정도 많은 내가 누군가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누군가의 농담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눈치로만 소통해야 한다는 것.

그 모든 게 12살의 나를 먼지보다 작게 만들었다.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그들의 언어를, 대화를, 세상을 이해하려 하루하루를 고군분투했다.

돌이켜보면, 우리 가족 모두 그런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을 것 같다.


모든게 낯선 것이 무서워 밖을 나가지 않는 나를 데리고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잠깐이라도 외출을 했었다.

열두 달 중 아홉 달은 추운 러시아이기에,

매 외출마다 나를 꽁꽁 감싸 나갔다.


가족들과 함께 처음 굼 백화점을 간 날이었다.

러시아의 전통 간식들과 달달한 디저트들을 선물용으로 파는 긴 통로가 있었다.

상인들은 우리 가족에게 러시아어로 이야기를 했고,

아직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는 무안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다.

그러다가 지나가는 행인에게 내가 살짝 부딪혔던 것 같다.

그때 꼭 내가 이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 같아,

분명 실내라 따뜻했는데도 마음이 너무나 추웠다.

12살의 내가 꼭 언제든 길을 잃을 것 같은 4살배기 아이 같이.

아빠의 손을 꼭 잡고, 그 통로가 끝나길 빌며 걸었다.


“언젠가는 익숙해지겠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겨울날들에, 밖에 나가지 않아 나의 피부색이 바뀔동안 내가 수없이 되새겼던 말이었다.

이상하도록 추위를 타는 나의 마음의 마지막 온기가 떠나기 전에 이 겨울이 끝나기를 빌었다.


그 겨울이 나를 삼키는 것이 무서워 나는 나를 지키려 애썼다.

서툰 영어로 나를 보이기 시작했고,

영어책들을 통해 그들이 보는 세상을 구경했고,

러시아어를 배우며 사람들에게 미소 가득한 인사를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세상에 티가 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노력들이

천천히 내 곁에 다시 사람들의 목소리를 데려왔다.

그렇게 뼈가 시리도록 추웠던 겨울이 천천히 지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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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