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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달팽이
04화
2.3. 떠나야 할 때
2. 보금자리
by
민달팽이
Aug 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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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네 아빠는 평생 네 욕심 따라가느라 바빴지”
엄마와 얼마 전에 이야기를 하다가 들었던 말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어렸을 때부터 외국으로 나가며 그 어느 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한 방황 때문이었을까,
러시아에서부터 나는 그렇게 새로운 곳을 가겠다는 욕심이 많았다.
마치 나의 뼈가 시리도록 추웠던 겨울이 끝났음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듯 계속 남들이 걷지 않는 길을 가겠다고 우겼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에는 순한 막내딸이었지만 종종 예상치 못한 때에 폭탄 같은 발언을 던지고는 하는 나였다.
코로나로 급하게 치렀던 졸업식
그 첫 번째 폭탄은 코로나가 터진 후 첫여름이었다.
러시아에 있는 미국 국제학교에서 완벽하게 적응을 해 학생회장까지 거머쥐었던 중학교 삼 학년이었다.
학교 생활에서 늘 열심히 했던 사람이었기에,
아무도 내가 학교를 떠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적응을 마치고 공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시기여서 그런지,
학교의 약한 교육과정이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그렇게 첫 번째 폭탄을 던졌다.
“엄마, 아빠. 나 영국 국제학교로 전학 가고 싶어”
“어?”
라며 당황하던 부모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결국 그 여름,
영국 국제학교 시험을 봤고 입학하게 되었다.
공부하느라 바빴던 11학년
너무 즐거웠다.
처음으로 체계적인 커리큘럼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고,
나의 노력만큼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부모님은 자신들이 지불한 입학비에 살짝 속을 쓰려하시곤 했지만,
즐기며 학교 생활을 하는 딸을 늘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2년 뒤, 추웠던 겨울날.
나는 두 번째 폭탄을 던졌다.
“엄마, 나 영국 가고 싶어.”
지금 학교보다 좋은 교육을 가지고 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는,
나의 꿈에 조금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아 내뱉었던 말이었다.
계속된 이주와 전학 탓인지, 생각보다 좋았던 결과들 덕분인지,
겁이 없어진 나는 원래 강했던 추진력까지 합해져
내가 갈 수 있는 학교 후보들을 뽑기 시작했다.
영국 고등학교 기숙사에서의 12학년
부모님은 생각보다 진지한 자신들의 딸의 모습에 또다시 당황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지 않다던가.
결국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또다시 꿈에 부풀어 오르는 자신들의 딸 옆에 앉아 함께 알아봐 주기 시작했다.
입학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 입학허가를 받았다.
그래, 한다면 또 하는 게 내 딸이지.
부모님은 또다시 나의 폭탄을 기꺼이 감당해 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떠나야 할 때를 기가 막히게 알았다.
내가 미국 국제학교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치상의 이유로 폐교를 했고,
영국 국제학교를 떠나기로 결정하지 얼마 되지 않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영국 국제학교로 오며 내가 사랑하는 과학을 만나게 되었고,
영국으로 홀로 이주하며 너무나 훌륭한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성적으로 안정적이게 졸업할 수 있었다.
변화를 무서워하던 나는,
결국 그 수많은 떠남 속에서 뜻밖의 빛을 만났다.
그 빛은 나로 하여금,
두려움 속에서도 떠나야 할 때 떠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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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2.1. 그 케이크가 뭐라고
03
2.2. 뼈가 시리도록 추웠던 겨울
04
2.3. 떠나야 할 때
05
2.4. 낯설어진 한국
06
2.5. 다시 그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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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차 해외생활 중인 대학생이 방황을 품에 안고, 자신을 닮은 마음 속 집을 만들어 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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