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여는작가> 2023년 봄호
조 희
함께라서 외롭다고
그들은 바다를 끌어안으러 간다고 했다
거울에 비춰지는
줄지어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은
죽음에 이르는 병
바다를 위해 살고 바다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는
멈출 줄 모르는 레밍, 레밍들은 거울 바깥으로 사라졌다
그들의 병 때문에 밤잠을 설치다가 빈 방에 오도카니 앉아 그들이 걸어간 언덕이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는
절벽은 아닐 거야, 그럴 거야
멈추면 볼 수 있는 풍경을 모르고. 바람이 뒤돌아갈 때 들리는 풍경소리도 못 듣고, 왜 앞으로 걸어가야 하는 이유도 모르고, 직선밖에 모르는 레밍, 레밍들, 사랑이나 주식이나 도박에 눈 먼 사람들처럼 맹목에 뛰어드는 백수광부들
가장 높은 절벽에서 떨어져본 레밍만이 바다를 끌어안았을까 기어코 바다를 가져보기나 한 걸까 바다가 그까짓 것들을 알기나 할까
바다를 끌어안는다는 것은 혼자의 깊이를 이해하는 것
파도가 이불 속으로 찾아와 문고리를 잡듯 나를 흔들 때
안쪽으로 휘어질 줄 모르는 거울만이 빤히 나를 바라보고 바다는 거울처럼 반짝이고
유튜브로 툰드라 지역을 검색하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바다에 둥둥 떠 있는 레밍들을 보고 말았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절벽에 노크한 기분
아, 직선으로 죽을 줄 아는 생명은 아름답다
이제 거울을 바꿔요
어제의 거울은 레밍의 뒷모습
거울의 옆구리를 꼬집거나 거울을 깨뜨릴 생각조차 못했었는데
커튼 사이로 거울을 읽고 난 몇 개의 햇살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핸드폰이 울렸다
그것이 우르르 우르르 몸을 떨었다
-『내일을여는작가』2023년 봄호(통권 82호), 306~307쪽.
시 부문 심사평
가장
순진무구한
혁명적인 일을
감당해낼 사람
-내일을여는작가 심사위원-
<고인환, 김명기, 김안녕, 조기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