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미국으로 가게 되었을 때 엄마가 음식에 대해 걱정하셨다.
“미국에선 김치를 못 먹어서 느끼해서 어떡하니.. “
한국 사람은 밥심. 그리고 김치가 꼭 있어야 한다는 말씀. 그때마다 나는 막상 가면 밥과 김치 없이도 잘 먹고 다닐 것 같다고 호언장담했다. 미국에는 여러 나라 음식이 다 있으니까 지루할 틈 없이 잘 먹고 다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두 달이 흐르면서 점점 한국 음식이 너무 그리웠다. 퓨전 아시안 음식을 파는 곳에 가면 김치볶음밥 메뉴가 있기는 했지만 뭔가 한국의 그 맛은 아니었다. 미국에는 이런 가게가 꽤 많았다. 퓨전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뭔가 중국 음식, 일본 음식, 베트남 음식, 약간의 한국 음식을 다 파는 가게여서 국적불명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식당 주인도 대부분 한국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다 알게 된 꿀팁. 한국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작은 동네 가게에서 김밥도 판다는 것이다. 미국의 일반 슈퍼와 달리 한국 반찬류도 팔고 라면, 김, 김치 등도 팔아서 한국 유학생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다. 그런데 아주머니께서 매일 직접 싼 김밥도 파시는 거였다.
집에서 걸어서 3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한국이었다면 버스를 타면 탔지 매번 걷기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거리다. 유학생이라 차도 없었고 버스도 잘 안 다니는 거리에 있어서 애매했다. 하지만 한국 음식이 그립고 가족이 너무 그립던 어느 날 드디어 찾아가 보기로 했다.
구글 맵을 켜놓고 처음 가보는 길을 열심히 걸어갔다. 조금 헤매느라 오래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사 와서 먹었던 김밥의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어떻게 그렇게 꿀맛일 수가 있는지.
포일에 싸져 있는 김밥이었는데 참기름을 바르고 깨를 뿌린 김이 타이트하게 말려 있어서 맛있었다. 미국 와서 통 먹기 힘들었던 시금치도 재료로 들어가 있었고 계란, 당근, 단무지처럼 익숙한 재료가 들어가 있었다. 예전에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김밥도 이런 비슷한 스타일이었기에 더 좋았던 것 같다.
핸드폰 사진첩을 열심히 뒤적거려서 그때 그 김밥 사진을 한 장 찾아냈다. 먹다가 반 남기고 찍은 사진 딱 한 장뿐인 걸 보면 찍기보다는 먹기에 집중했었나 보다.
그 후로는 한국의 맛이 그리울 때, 그리고 주로 울적한 날에 그 가게를 찾아갔다. 지금 생각하면 기필코 김밥을 사 먹겠다는 의지로 걸어갔던 내 모습이 조금 웃기다.
비가 오는 날에 우산을 받쳐 들고 걸어간 적도 있다. 원래는 비가 오면 오래 걷는 것도 안 좋아했던 나인데 k-김밥이 그리워서 힘든지도 몰랐다. 만들어 먹을 수도 있겠지만 요리 실력이 부족해 직접 만들면 그 맛을 낼 엄두가 안 났다.
사실 가게까지 30분이 아니고 1시간이 걸려도 갔을 것이다. 가게를 찾아가는 길은 조금은 멀고 종종 헤매느라 힘이 들어도 매번 설렜다.
흔한 김밥 재료로 만든 김밥이었다. 하지만 그냥 김밥이 아니었다. 유학생활의 서러움과 외로움도 잊게 해주는 그리운 고향의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