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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짧은 시

by Adela

여보, 나예요.

당신이 떠나고 나 혼자 애들을 키웠네요.

우리 애들 다 잘 컸어요.

이제 나도 글을 배워서 읽고 써요.

보고 싶어요.


한글을 배운 어느 할머님이 쓰신 시였다. 짧은 시이자 젊을 때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쓴 편지였다. 이 시에는 그녀의 삶이 녹아 있었다. 직접 꾹꾹 눌러쓴 글씨 옆에는 꽃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이제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순수한 기쁨과 그리움도 묻어났다.


민아는 왜인지 모르게 이 시가 마음에 박혔다. 단순한 표현과 짧은 문장들로 이루어진 글이었지만 마음 깊이 와닿는 시였다. 왜인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도 났다.


그날 밤 민아는 잠이 오지 않아 뒤척였다. 아까 읽은 시가 자꾸 생각이 났다. 한글을 배웠기 때문에 직접 글로 표현할 수 있었던 걸 텐데. 시를 완성한 할머님이 얼마나 기쁘셨을지 상상이 되었다. 한글 교실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졌다. 어떤 분들이 올진 몰라도 배우고 싶은 그 마음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간 민아는 공강 시간에 도서관에 들렀다. 앞 수업이 조금 일찍 끝나기도 했고 다음 수업까지 원래 몇 시간이 비는 날이었다. 도서관에 가면 와이파이를 더 편하게 쓸 수 있기도 하고 조용히 집중하고 싶었다. 자리를 하나 잡고 앉은 민아는 핸드폰으로 늘솔학교 홈페이지에 다시 들어갔다.


다시 보니 봉사 신청 기한이 며칠 남지 않았다. 신청서 폼을 클릭했다. 맨 위에 이름부터 주욱 적어 나갔다. 오늘은 망설임은 없었다. 신기하게도 갈팡질팡하던 마음이 굳어졌다.


‘좋아 오늘은 신청해 보는 거야. 근데 경쟁자가 많으려나?’


한 가지 걱정은 신청자가 많아서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사실 민아는 예전에 대학생 대외활동 차원으로 모집하는 단기 봉사활동을 신청했다가 탈락한 적이 있었다. 무엇을 하든 경쟁인 건가. 그래도 이번에는 느낌이 왠지 좋았다. 꼭 같이 활동하고 싶었다. 늘솔학교에서.


민아는 이런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활동을 준비하자니 괜히 신이 나기도 했다. 그래도 일단 신청하고 기다려보자. 신청서 작성을 마친 민아는 제출 버튼을 클릭했다.



* 밀리로드에서도 연재 중입니다. 밀리의 서재 쓰시는 분들 놀러 오세요 ^^

( 밀리로드 연재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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