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때,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때 수학을 처음 배운 것 같다. 단순한 덧셈, 뺄셈부터 배우니 산수에 가깝다. 주로 교과서나 그 당시 처음 접해본 학습지로 배우게 되었던 것 같다.
반복적으로 풀어 나갔던 눈높이 학습지보다도 사과, 피자, 사탕 그림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 문제들이 아마 친구들끼리 사과를 몇 개 가지고 있다가 몇 개를 다른 친구에게 주면 몇 개가 남는지, 그런 식의 문제였던 것 같다. 피자는 8조각으로 잘라서 영희가 3조각 먹으면 몇 조각 남는지 그런 문제들.
그리고 문제의 사탕 문제.
“사탕 5개를 가지고 있다가 2개를 먹고 1개를 친구를 주면 나는 몇 개 남았을까?”
때로는 몇 개를 주었다가 다시 가져오는 문제도 있었다. 그게 제일 헷갈렸던 문제라 기억이 난다.
‘왜 다 같이 나눠먹지 않고 몇 개는 가지고 있고 몇 개는 또 주는 걸까? 그리고 왜 친구에게 사탕을 줬다가 다시 뺏어오지?’
엉뚱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문제 자체를 듣고 생긴 궁금증이 머릿속에 많이 떠다녔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래서 계산을 할 생각보다 문제 자체를 다시 물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아빠가 어린 나에게 기본 개념을 이해시키려고 열심히 설명하시던 기억도 드문드문 머리에 영상처럼 남아 있다. 하지만 퇴근 후 만날 수 있던 아빠이기에 9시가 조금 넘으면 자러 가던 나에게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조곤조곤 설명해 주면서 질문도 하시지만 매번 꾸벅꾸벅 졸음이 왔다. 정말 요즘 말하는 ASMR처럼 잠이 잘 왔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나서 죄송하기도 하고 정말 웃기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뭔가를 읽어주시던 기억이 지금은 흐릿하지만 따듯한 추억이다.
이렇게 미리 공부를 집에서 하는 이유는 학교에서 잘 따라가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구구단을 못 외워오면 공부를 더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혼났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수학 과목은 좋은 이미지가 아니었고 별로 공부하기가 싫었던 기억이다. 이게 이어져서 고등학교 때까지 괴로운 과목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전국의 수포자들이 예전부터 많았던 것도 수학이 어렵고 잘 모르겠다고 하는 아이를 이끌어주기보다는 혼내기만 하는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다른 과목들을 예를 들면, 국어 관련된 과목이나 영어, 미술 같은 과목은 어릴 때 그런 압박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놀이를 하듯 재밌는 분위기를 만들어준 선생님들도 계셨다. 그래서 아마 수학 수업에서 혼나는 게 더 크게 느껴진 것 같다.
구구단을 나는 외워 갔더라도, 나는 덧셈 문제를 풀었더라도 끝이 아니다. 내가 직접 혼나는 게 아니어도 앞자리 친구, 옆자리 친구, 같은 반 다른 친구가 혼나는 것도 똑같이 주눅이 드는 효과가 있었다.
사람마다 배우는 속도가 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면 좋았을 텐데. 아이들마다 흥미 있는 분야가 다양할 수 있음을 인정해 주고 적성을 찾아주면 좋았을 텐데.
대학원에 가게 되고 통계 과목을 배우게 되었을 때 수학 과목인데 내 생각보다 괴롭지 않았고 오히려 재밌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하나하나 원리를 배워보고 프로그램으로 직접 모델을 다뤄보기도 하다 보니 어렵다는 생각보다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궁금해진 것들을 직접 해결하는 재미가 있었다.
수포자가 많은 한국인데. 어릴 때도 이렇게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조금은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수학을 배웠으면 어땠을까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혼나고 손바닥을 자로 맞는다고 해서 수학 원리를 갑자기 깨우치는 것이 아닐 텐데. 요즘은 체벌이 없어졌다고 듣기는 했지만 딱딱한 분위기는 남아 있지 않을까 싶어 어릴 때 교육에 대해 아쉬운 마음이 든다.
어려운 주제이지만 내가 아이를 키우게 되면 어떤 교육 방식이 좋을지도 생각해 보게 된다. 어쨌든 조금은 생각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해 주고, 아이가 배우는 속도를 존중해 주는 방식이 좋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