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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ela Mar 21. 2024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한 생각을 기록하며

미국에서 본 내 또래 친구들은 형제가 세 명, 네 명인 경우가 많았다. 연애에 적극적이고 정말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면 장기간 연애나 결혼에도 딱히 부정적인 것 같지 않았다. 데이팅앱을 쓰는 경우가 많지만 과도하게 포토샵을 해 꾸민 사진이 아닌 현실적인 사진을 올려놓는 경우도 많았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과 환경이 꼭 다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였지만 꽤 흥미로운 점이 많았다. 그리고 나에 대해, 내가 살아온 환경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 것 같다.


일단 내가 속해 있던 미국의 대학원 환경에서도 한국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인 것 같았다. 대학원 과정 중에 임신을 하고, 아기를 출산하고, 갓난아기를 데리고 학교에 오기도 한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수유실 등 환경이 잘 되어 있을 뿐만은 아니었다. 개인주의 문화 때문인지 아기에 대해 우호적인 문화가 있는 건지 모두들 무심한 듯 잘 도와주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환경이 갖추어지려면 사람들의 인식이 그 방향으로 향해 있어야 가능했겠구나 싶기도 했다.


한 번은 아기 엄마인 친구와 수업에서 팀으로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다른 팀원들과 다 함께 점심을 먹으며 과제 이야기도 할 겸 교내 카페테리아에서 모였다. 아기 엄마인 친구가 자연스레 유축기를 꺼내 작동시키며 우리와 대화를 하던 모습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물론 아기 우유 준비 때문에 지금 해야 한다는 설명을 하긴 했지만 지나치게 미안해하거나 부끄러워하는 태도는 전혀 아니었다. 팀원들도 “오 그래” 하면서 민망하지 않게 해 주었다.


잠시 아기가 몇 개월인지 등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유축기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우리가 모인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도 물론 아기를 데려온다던 친구를 배려하려고 생각했지만 그들에게는 일부러 생각해서 하는 배려를 넘어서는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또 한 번은 학기 마지막에 수업이 마무리되는 날, 교수님이 동네에서 유명한 도넛 가게에서 도넛을 사서 학생들에게 돌렸다. 그날은 교수님의 어린 따님도 교실 뒤편에 앉아서 참관하고 있었다. 그 전주에 미리 양해를 구할 겸 딸을 데려온다고 말을 했을 때도 다들 웃으며 훈훈한 분위기로 찬성했다. 아마 학생들 응원차 인사도 할 겸 데려오신 것 같다. 수업이 끝나고 다들 따뜻한 분위기로 교수님 따님을 포함해 다 같이 도넛을 먹었다. 귀여운 미소로 우리에게 인사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에서 대학원생이 학교 수업이나 식당에 아주 어린 아기를 데리고 다니면 사람들이 좋게 봐주고 도와줄까? 유축기를 식당 근처 카페에서 사용할 때 안 좋은 시선 없이 이용 가능할까? 애초에 수유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곳도 많아서 급하면 모유수유를 할 때 화장실을 이용했다는 지인의 말도 들은 적이 있다.


교수님이 어린 자녀를 수업에 같이 데리고 오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건너 건너 지인 중 대학원생인데 아기를 봐줄 사람을 구하지 못해 학교에 데리고 가려고 하다가 교수님과 몇몇 학생들의 부정적 반응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예전부터 인터넷에서도 ‘맘충’이라는 말을 비롯해 여러 부정적 이야기들이 돌고 있으므로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어쨌든 자연스럽지는 않은 것 같다. 조심스러운 일에 가까운 것 같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피해야겠지만 아예 피하게 되는 것과 서로 조심하고 배려하며 살아가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된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문화 차이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뒤늦은 충격적인 깨달음 같은 것이었다. 30년가량 한국에서 나고 자라며 대학원 과정 중에 출산과 육아는커녕 결혼도 연애도 힘들어하는 분위기 속에서 살았고 거기에 많은 부분 공감하던 나였다. 당연히 이건 대학원뿐 아니라 취준생인 기간에도, 취직하고 자리 잡을 때까지도 다 마찬가지다. 어쩌면 꽤나 냉소적인 생각도 많이 했던 것 같다.


아. 그런데 미국에서 지낸 지 몇 달 만에 ”또 나만 속았지..”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였다면 굳이 결혼과 출산이 뭔가를 하며 병행하기에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샘솟았다.


‘이런 분위기니까 다들 형제가 세 명, 네 명이지. 나도 공부하고 일하면서 가능했으면 세 명은 낳고 싶지 않았을까? 이미 한 명은 낳았지 않을까?’ 하는 스스로 봐도 놀라운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 후 한국에 와서는 주위 사람들과 기회가 되면 이런 주제의 이야기들을 나눠보았던 것 같다. 이야기해 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자유로움을 느꼈다. 애초에 나도 그렇고 한국의 친구들도 아기 자체가 싫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면서 임신과 출산, 육아를 병행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질 정도로 부담스러웠던 것이 크지 않을까. 임신이 문제가 아니라 결혼도 부담인 것을.


지금은 아직도 답을 찾지는 못 했지만 일도, 내 삶도 계속 충실히 살아가면서 임신도 출산도 육아도 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임신을 먼저 준비해 보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물론 인생은 완벽하지 않은 건지 막상 병원을 찾으니 임신이 쉽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건 현재 진행형이라 다음에 기록할 기회가 있으면 써봐야지. 그래도 지금 내 인생의 시점에서 한 번은 기록해보고 싶었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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