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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수업

by Adela

첫 수업은 2주 뒤였다. 민아는 첫 수업을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준비했다. 2주 차 수업까지 미리 분량을 준비해 두는 것이 목표였다. ppt 슬라이드도 만들었고 참고할 교재도 선정했다. 쉽게 이해되는 수업을 하고 싶었다.


‘첫 수업은 너무 어렵게 하면 안 되겠지? 그래도 매주 수업이니까 미리 준비해야지..’


민아는 거울을 보면서 연습을 계속했다. 대학 과제 발표를 할 때 잘 넘어갈 때도 있지만 떨릴 때도 꽤 많았다. 한글교실 수업 때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르신들에게 도움이 되려면 자신 있으면서도 친절한 수업을 하고 싶었다.


드디어 첫 수업 날이 되었다. 민아는 칠판에 크게 이름 세 글자를 썼다. 또박또박 적어나가며 기분 좋은 떨림이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박민아라고 합니다! 오늘부터 저와 함께 한글을 배우실 거예요. 다 같이 열심히 해봐요. 먼저 출석부터 부를게요!”


민아는 준비해 온 출석부를 꺼냈다. 5명의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몇 초간 눈을 마주쳤다. 어르신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려고 마음에 새겨 보았다. 결석 없이 모두 다 참석하셨다. 수업 시작이 저녁 6시라 다들 오실까 걱정했는데 모두 다 오셨다. 다 오셨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했다.


늘솔학교는 야학이라 제일 첫 수업이 저녁 6시였다. 수업 시간은 50분이고 10분 쉬고 다음 수업을 하는 방식이다. 고교과정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반이 제일 늦게 끝나는데 저녁 9시가 마지막 수업 시작 시간이다.


“자 일단 제가 가져온 자료를 나눠드릴게요.”


민아가 정성껏 만들어온 자료였다. 민아는 앞으로도 교재만 보기보다 자료를 따로 준비해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제가 도와드릴게요. 이리 주세요.”


영하 할아버지가 번쩍 일어나며 말했다. 강의실은 넓은데 자유롭게 앉다 보니 서로 손이 닿지 않는 거리에 앉아 있는 분들도 있었다. 먼저 도와주시다니 정말 감사했다.


자료를 나눠주느라 조금 어수선해진 분위기가 가라앉고 민아가 말했다. 딱딱하게 수업만 하기보다 서로를 알아가고 싶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학생들의 긴장도 풀어드리고 싶었다.


“자. 우리 오늘은 첫 시간인데 자료를 보기 전에 한글을 배우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돌아가면서 이야기해 볼까요? 왜 수업을 듣고 싶었는지 이야기해 봐도 좋고요.”


다들 수줍어하는 표정이 되었다. 모두들 60대가 넘은 어르신들이었지만 왠지 귀엽게 느껴져 미소 지었다. 영하 할아버지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저는 글을 배우고 나면 늘솔학교 상급반으로 올라가고 싶어요. 중등 검정고시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야심 차게 말씀하시는 영하 할아버지였다.


“저도요.” “저도 나중에 검정고시 시험 보고 싶어요.”


옆에서 다른 학생들이 맞장구를 치셨다.


“다들 학구열이 대단하신데요? 늘솔학교에서 더 오래 같이 공부하시면 다들 하실 수 있을 거예요.”


민아가 감탄하며 대답했다.


듣고 계시던 점자 할머니가 입을 여셨다.


“저는 우리 막내 손녀가 이제 조금 있으면 글을 배우려고 하거든요. 같이 있는 시간도 많은데 내가 먼저 글을 알고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제가 가르쳐 줄 수도 있잖아요.”


“와! 손녀분이 나중에 이 이야기를 알면 감동하겠어요. 그럼 한글교실에서 글을 배우고 제일 하고 싶은 건 어떤 거예요?”


민아가 웃으며 물어봤다.


“우리 손주들이 좋아하는 동화책을 읽어 주고 싶어요. 직접요. 낮에 놀아줄 때 책을 읽어달라고 할 때가 많았는데 제가 읽어줄 수가 없었거든요..tv를 보라고 하거나 장난감으로 놀아주는데 마음이 안 좋았어요.”


다른 분들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손주나 자식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책이나 신문을 직접 읽고 싶다고 하셨다. 자식들은 공부를 시켰지만 아직 스스로는 글을 못 읽는 것이 한이 되었다고도 하셨다.


“말씀하신 것들 이룰 수 있게 제가 도와드릴게요. 우리 오늘부터 같이 해봐요.”


모두 소망을 나눈 후라 그런지 다들 눈을 반짝이며 수업을 들으셨다. 민아의 첫 수업은 성공적이었다. 민아는 수업을 통해 어르신들의 꿈을 이뤄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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