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dela May 17. 2024

마지막 마음

2024년 <질문의 편지> 프로젝트- 5월의 편지

이야기 1)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자전거를 끌고 오신 할아버지였다. 빼빼마른 몸이지만 허약해보이진 않으셨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잘 쓸어넘기고 오신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어제, 죽었다 살아났어." 할아버지는 밤중에 잠을 자다가 죽었다 깨어나셨다고 했다. 깜박하고 잠이 들었고, 또 깜박하니 다시 정신이 들었다고. 그 깜박 하는 동안 몇 시간이 지났는지, 하루가 지났는지, 수일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하시며 말했다. "곧, 죽을 건가봐." 이제야 힘든 시절 지나고 살만 한 세상인데 너무도 아쉽다고 하시며 이건 인생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셨다. 아이고 그러셨구나, 하는 대답을 뒤로 하고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는 듯 했다. 그리고 곧 미소를 띄운 얼굴로 "내가 누군지 아냐"고 물으셨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오토바이'라고 했다. 선도동*이 허허벌판이었던, 자전거를 가진 사람도 몇 없던 시절, 할아버지는 처음으로 오토바이를 타셨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선도동 오토바이'라고 불렀다고. 그땐 참 재미있었다고 연거푸 혼잣말을 하시던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그 뒤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매일 자전거를 타셨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가게 앞을 지나가는 할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찬란했던 시절을 되돌아보듯이. 자전거 뒤에 지팡이를 매달고 느릿 느릿 페달을 밟아 지나가는 모습이 보이면 "아 아쉬워.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라고 하시던 할아버지의 말이 떠오른다.


*경주의 어느 동네 이름


이야기 2)

이번엔 항상 정장에 구두를 신고 오시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다. 그날은 챙이 짧은 중절모를 쓰시고, 가슴포켓에는 헹거치프 대신 곱게 접은 흰 마스크가 꽂혀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랫시장 2층에 조그마한 상가 공간을 임대했다고 하셨다. 친구들과 모여 노는 장소인데, 거기엔 10년도 훨씬 전부터 담가 둔 술도 많다. 시장에 내려가 고기 한 쪽씩 사다가 구워먹곤 한다고, 약술이 참 달다고, 월세 내는 건 가족에겐 비밀이라고도 하셨다.


 "이제는 술은 담그지 않아." 담금술에 약효가 제대로 들려면 10년은 기다려야 한다. 그치만 할아버지와 친구들은 살아갈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고 하셨다. "오늘 친구 한 놈이 죽는 게 무섭다 했어." 이제 친구도 몇 남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꺼내신 이야기. 할아버지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야 그거 하나도 무서워 할 필요 없어. 얘도 하고, 나도 하고, 우리 다 한다. 그러니깐 겁먹지 말어." 옛날엔 마흔 살만 되도 죽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 내 나이가 여든이 훌쩍 넘었다고, 그럼 인생 두 번 산 거나 다름 없지 않냐고 하시며 허허 웃으셨다. "그러니까 괜찮아. 아쉬워 할 필요 없어. 우리 다같이 하는 거니까 잘 할 수 있어."


 할아버지는 '죽는다'라고 하지 않고 '한다'라고 표현하셨다. 가끔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다 하는 거니까 아쉬워 할 필요 없다'는 정장 할아버지의 말이 떠오른다.


(질문)

미래에 나의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어떤 마음이면 좋겠는가? 너무 아쉬워서 죽음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 싶은 마음과, 한평생 잘 살았다-하며 홀가분한 마음. 두 가지 중에 어떤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지 궁금하다. - 니은


(답변)

내가 바라는 바는 세상을 떠날 때 후회 없이 떠나는 것이다. 처음으로 진지한 생각을 해본 10대 이후로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양가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한 분씩 떠나 보내면서 매번 정말 갑작스러우면서도 돌이킬 수 없는 이별에 황망했다. 그러면서 실감한 듯 하다. 죽음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고 그 시기는 누구도 정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언제인지 모르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잘 살고 싶다. 잘 산다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떠날 때 후회하지 않고 ‘이 정도면 괜찮았다, 아니 좋았다’라고 할 수 있는 삶이 아닐까. 죽음을 미루며 두려움에 떨기보다는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홀가분함을 느끼며 떠나고 싶다. 그런 어른으로 늙어가고 싶다. - 콩이



2024년 <질문의 편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매달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는 프로젝트입니다. 5월의 편지 질문과 제 답변을 공유해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