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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ela Oct 01. 2024

[단편소설] 내가 아끼던 아이

나는 언제쯤 결혼을 할까.


주변에서 많이 궁금해해서 그런지 나에게도 한 번씩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요즘 시대에 꼭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나만의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늘 있었다. 나중에 힙하고 귀여운 할머니로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손주가 보기에 힙하고 귀여운 할머니가 되려면 손주가 있어야겠지. 그러려면 역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서 또 아이를 낳아야 가능한 꿈인 거겠지. 결론은 솔직하게 들여다보면 결혼을 하고 싶은 생각이 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남자친구를 만들거나 연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편은 아니다.


왜냐고. 글쎄. 지금도 사실 나쁘지는 않다. 혼자 지내는 삶은 외로울 수 있다지만 자유롭다. 그 자유가 지금의 나에게는 소중하다.


인생에 지쳐버린 나는 몇 달 전 과감하게 퇴사를 감행했다. 그리고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실업급여 외에도 아직은 모아둔 돈이 있다. 그리고 젊음과 체력이 있다. 그렇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나는 두렵지 않았다.


물론 몇 년 전이었다면 상상도 하지 못할 행보이다. 남 부럽지 않은 곳에 취업을 하려고 애를 써왔던 몇 년의 시간을 보냈으니까 말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나 같지가 않다. 다른 사람의 생활에 대한 기억이 나에게 생생하게 남아 있는 느낌이다.


어쨌든 요즘 나의 관심사는 숲이다. 숲 속에서 산책을 하면서 청량한 공기를 가득 마시면 정화가 되는 느낌이다. 사실 회사를 그만둘 때 즈음에 숲 해설가라는 직업도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나무들이 가득한 숲을 마음껏 가서 거닐며 다니는 것이 업무라니. 사람들에게 이 숲이 얼마나 멋진 곳인지 자세히 소개도 해준다니. 너무나 멋져 보였다. 숲 해설가가 되기 위한 교육 과정도 알아보고 있다. 자격증을 딸 수 있다고 한다.


숲 해설가가 되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둔 것은 아니다. 그렇게 구체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뭐가 되고 싶다는 거창한 생각을 할 힘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요즘은 나도 숲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상에 활력이 생겼다. 숲을 돌아다녀야 하는 이유도 있고 말이다.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내가 제일 좋아하던 숲에서 시작된다.



그날 나는 충청도에 있는 한 숲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내 인생을 바꿔 놓은 만남을 하게 되었다. 숲길을 걷는 것은 언제나처럼 상쾌했다. 잡생각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그래서 그냥 걸었다. 혼자서 걷고 또 걸었다. 가을을 맞아 장만한 바람막이를 입고 들뜬 기분으로 걸었다. 천천히, 느릿느릿 걷기도 하고 빠른 걸음으로 운동하듯 걸어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잠시 멈춰 섰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숲 속이라 평화로운 기분이 들었다. 혼자 편하게 스트레칭을 좀 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목을 뒤로 뻗으며 위를 쳐다보았다. 하늘을 쳐다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를 정도로 오랜만이었다. 키가 큰 나무들을 올려다보며 기지개를 켰다.


그때였다. 나무 위에서 무언가 쪼르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다람쥐인가?’


숲에 왔다가 귀여운 다람쥐를 볼 수 있다니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숲에서 만난 다람쥐 두 마리는 친구인지 가족인지 같이 붙어 다니는 모습이 웃음을 나게 했다. 오랜만에 숲에서 만나는 귀여운 생명체였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한 번 더 움직이며 나무를 내려오는 듯하길래 물끄러미 바라봤다. 혹시 이쪽까지 내려오면 간식이라도 줘 볼까 싶었다.


‘아 내려온다.’


진짜로 점점 큰 나무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작긴 하지만 생김새가 다람쥐는 아닌 것 같았다. 몸통이 더 길쭉했다. 청설모인가 했는데 그것도 아니다. 온몸에 아주 짧은 털이 송송 나기는 했지만 꼬리가 길고 몸도 단단해 보였다. 만져 보지는 않았지만 단단해 보이는 몸이 꼭 도마뱀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생전 처음 보는 동물이었다.


아래로 더 내려올수록 생경한 모양새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나는 한 번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동물이었다. 저런 동물이 우리나라에 사나? 털이 있는 도마뱀류가 있나? 어쩌면 숲에만 있는 희귀 동물일 수도 있다. 나는 숲 해설가 지망생일 뿐 숲에 사는 생물들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도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동물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내가 놀라고 있는 사이 그 작은 생물이 바닥으로 내려왔다. 저 앞쪽에 있던 나무 앞에 있던 모습이 보였는데 기어가는 속도도 빨랐다. 어느새 내가 있는 곳 근처까지 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낯선 생김새에 무서울 법도 한데 나에게는 그렇지가 않았다. 왠지 친근한 느낌이 들었고 자꾸 보니 까맣고 똘똘한 눈동자가 귀엽기도 했다. 이 생물체도 내 앞까지 와서는 빤히 나를 보고 있었다.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나도 모르게 천천히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손을 뻗었다. 그 아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손바닥을 그 아이의 머리에 얹었다. 그 아이는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내 손에 자기 머리를 비비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을 못 하는 동물도 만나자마자 친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때가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우리는 서로가 마음에 들었다.


“너는 여기 혼자 사니? 나도 혼자 사는데.”


혼잣말을 하듯 말도 걸어보았다. 이 아이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아 보였기에 나는 그 옆의 나무 밑동 앞에 털썩 앉았다. 그 아이도 떠나가지 않고 내 옆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꼬리만 왼쪽, 오른쪽으로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쉬었다. 같이 쉬는 느낌이라니 신기하면서도 안심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일어서는데 그 아이가 가만히 있었다. 그러더니 내 다리를 타고 올라와 나에게 안겼다. 숲 속에 살아야 한다며 놓아주었지만 또 나에게로 다가왔다.


“나랑 같이 갈래? 너도 내가 마음에 드는 거니?”


결국 나는 그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무슨 종인지도 모를 생명체였지만 나에게도 반려생물이 생겼다. 우리는 꽤 잘 맞았다. 도마뱀을 키우는 사람들이 올린 인터넷 글을 다 찾아보면서 집도 꾸며 주고 먹이도 구해 주었다. 하니라고 이름도 지어줬다. 몇 달 동안 하니는 크기도 좀 더 커지고 등에서 작지만 날개도 자랐다. 정말 귀엽고 기특했다.


그런데 몇 달 후, 일이 벌어졌다. 핸드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여러 번 왔다. 이상한 번호일까 봐 받지 않다가 여러 번 오길래 받았더니만. 정부 기관에 소속된 과학연구개발팀이라며 어떤 남자에게 연락이 왔다. ’하니를 데려와서일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곽수연 씨, 혹시 숲에서 어떤 생물체를 만나지 않으셨나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희가 관리하던 돌연변이 생명체가 수연 씨 집에 있다고 추적됩니다. 저희가 추적을 위해 그 생명체의 몸속에 칩을 심었습니다. 그동안 확인 중이었습니다.”


하니는 돌연변이 생명체라 정부 기관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야생환경에 잘 적응하는지 보려고 풀어둔 것이었는데 우리 집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그들은 하니가 정부 기관 소속 생물이니 다시 반환하라고 했다.


몇 달 동안 정이 많이 들었는데 이별이라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 하지만 정부 사람들에게는 이미 우리 집 주소도 있었고 나는 거절할 명목이 없었다. 몇 주 후로 약속 시간을 잡고 그들에게 하니를 넘겨주기로 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하니가 걱정이 되어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그 사람들의 연구소가 어디 위치해 있는지는 알기 쉬웠다. 그래도 연구를 하다 보면 하니를 해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여러 실험을 하다 보면 하니가 괴로운 일을 당할까 봐 무서웠다. 그러다 보면 목숨까지 위험한 것 아닐까.. 인간은 잘 모르는 존재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 그것이 하니에게는 위협이 될 것이다.


며칠이 지나가고, 나는 결심했다. 그곳에 가면 어떻게 지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하니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나만의 하니 탈출 작전을 시작했다. 제주도로 가는 제일 빠른 표를 끊어 당장 떠날 채비를 했다. 짐은 간단히 싸고 하니와 함께 집을 나섰다.


그렇게 하니와 함께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작은 숙소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 사려니 숲에 하니를 풀어줄 참이었다.


그전에 할 일이 있었다. 하니의 발에 있다던 칩을 제거해 주는 것. 이름표가 밖으로 돌출되어 있었는데 내부까지 이어지는 심이 있는 것 같았다.


“미안해 하니야. 아플 거야. 그래도 조금만 참아.. 그럼 자유야. 미안해. 이것밖에 해줄 게 없어.”


혹시 몰라서 소독 용품을 챙겨 왔다. 나는 칩을 꺼내고 피가 나는 자리를 지혈하고 소독을 해주었다. 붕대도 예쁘게 감아 주었다. 하니는 내가 도와주는 것을 안다는 듯 신음 소리를 내면서도 가만히 있었다.


고된 하루였다. 알람을 맞춘 나는 하니를 꼭 안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새벽 일찍, 우리는 사려니숲으로 향했다. 하니는 내 가방 안에 들어가 있었다. 아침에 도착하니 다행히 사람이 아직 거의 없었다. 나는 눈물을 참으며 좋은 자리를 찾을 때까지 열심히 걸어갔다.


‘아, 여기다. 여기면 되겠다.’


여기면 되겠다는 느낌이 온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사람들도 없었고 처음 하니를 만난 곳과 비슷하게 생긴 곳이었다. 하니에게 날개도 생겼으니 어디든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니야, 여기서 너를 풀어줄게. 도망가서 자유롭게 살아. 절대 잊지 않을게. 잘 가.”


하니를 한 번 꼭 안았다가 땅에 놓아주었다. 하니는 머뭇거리듯 내 주위를 맴돌다가 걸어갔다. 하니는 몇 걸음 걷더니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날아가기 시작했다. 하니의 등에 날개가 난 이후로 나는 건 처음 보았다. 하니의 첫 비행은 아름다웠다.


집으로 돌아간 나는 집을 비운 사이 하니가 없어졌다고 거짓말을 했다. 정부 사람들은 하니의 지능이 높아서 몰래 나갔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렇게 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니가 없는 집은 허전하지만 하니가 자유를 찾아서 행복하다.


나도 전국의 숲을 돌아다니다 보면 언젠가 하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니가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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