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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사초 Jul 08. 2023

# 화물 면허 자격증을 취득하다

시간적 경제적 자유인의 일상

시간적, 경제적 자유에 도달 후, 해야겠다고 생각한 일 중 하나가 화물 면허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다. 화물차 자격증으로 돈을 벌어볼 요량이 아니다. 화물차 운전을 하시는 아버지께서 회사에 얽매이지 않고, 여기저기 마음껏 구경하고 다니는 화물차 운전이 최고라며, 화물 운전면허를 따 놓으라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나이 들어 이만한 일이 없다며 볼 때마다 말씀하시는 통에 소원 하나 들어드리는 셈 치고 자격증을 딴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 아버지는 개인택시 운전을 하셨다. 새벽같이 택시를 몰고 나가시던 아버지는 새벽잠에 미처 잠도 깨지 못한 아들을 종종 조수석에 태웠다. 말동무가 되지도 못하고, 택시 운전에 도움이 될 리도 없건만, 아버지는 어린 나를 데리고 나가는 것을 좋아하셨다. 아침잠이 많을 때라 갈 때마다 깜뿍깜뿍 졸기만 했지만, 매번 아버지를 따라나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아버지께서 운전 후 쥐어준 동전 몇 개가 졸린 나를 움직인, 강력한 동기였을 것이다. 이따금 손님들이 승차할 때마다 우리 아들이라며 소개하는 아버지의 말에 졸린 눈으로 인사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의 운전 실력 때문인지, 아버지가 쥐어준 동전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나에게 아버지의 택시는 내 방처럼 편안하게 눈 붙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지금도 흔들리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불편해하지 않고 졸 수 있는 건 팔 할이 아버지 덕분이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이제 일흔을 넘기신 아버지가 화물차를 몰고 나가시는 모습을 볼 때면 내가 운전대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직장 다닐 때는 일에 묶여 어려웠지만, 이제 시간적으로 자유로우니 어려운 일도 아니다. 1종 보통 면허증과 보험만 가입되어 있어도 아버지의 화물차를 운전할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직까지도 아들에게 운전대를 내어주지 않으신다. 아들도 면허증을 딴 지 20년이나 되었다고 항변해 보지만, 여전히 아버지에게 아들은 처음 자전거를 배우는 어린 아이와 같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일흔의 나이가 될 때까지 개인택시에서 화물차로 반평생 운전만 하며 살아오신 당신께 운전대는 단순한 사물 그 자체가 아니다. 당신께 운전대는 직업인으로서 당신의 정체성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상징이며, 동시에 소띠생에게 주어진 운명의 굴레처럼 평생 당신의 육신을 옭아맨 고삐 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의 운전대를 내려놓으라는 것이, 평생을 일소로 살아온 아버지에게 이제 그만 그 고삐를 풀으라는 것이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경제적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 자유로워진 요즘, 나는 어릴 때만큼이나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낸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가 옆에 계시지 않을 때, 이런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싶지 않다. 집에 머무는 아들이 적적하고 심심할까 아버지는 종종 장거리 운행을 함께 가자고 하신다. 젊은 아버지가 택시를 몰던 그때처럼, 아버지와 아들은 이제 화물차를 타고 함께 운행을 나간다. 서른 중반의 아버지는 일흔이 넘고, 열 살 정도였던 아들은 제법 말동무가 될 만큼 나이를 먹었지만, 여전히 운전대는 아버지가 잡고 있다. 창문 너머로 바람이 불어 들어오고, 나는 바람이 만든 풍경을 본다. 하지만 눈앞의 풍경보다 저 멀리, 아버지의 화물차를 내가 운전하고, 아버지는 조수석에 앉아 ‘라테는 말이야~’하시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그 닳고 닳은 이야기를 다시 처음처럼 늘어놓는 풍경을 떠올린다. 봄바람처럼 따뜻한 풍경이다.




#파이어 #FIRE #경제적자유 #조기은퇴 #화물차 #화물면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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