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외국에서 일하며 살며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동을 하면, 단순하게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 날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내 주변의 모든 것이 한 번에 싹 바뀌는 일이다. 시간대, 기후, 고도, 물, 식재료, 일조량 등 내 육체와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가 완전 다른 곳에 내 몸을 던져놓는 셈이다. 적응을 위한 기간 동안 내 몸과 마음은 각종 고생을 한다. 사람마다 장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는 체중변화와 물갈이, 피부질환이 나타났다.
체중변화는 대략적인 패턴이 있다. 외국살이 첫 한 달쯤은 새로운 환경에 나도 모르게 긴장해서 그런지, 식욕 자체가 좀 떨어진다. 주변 환경에 익숙하지 않아서 어디에 뭘 파는지도 잘 모르고, 거주지도 정해지지 않아 일하면서 집을 알아보느라 바쁘기도 해서 잘 챙겨 먹을 힘이 없기도 하고, 물갈이에 대한 본능적인 염려가 있어 음식을 먹을 때 몸을 좀 사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평소 체중보다 약간 덜 나갈 정도로 살이 빠진다. 얼굴도 좀 핼쑥해지고.
집도 구하고 몸과 마음이 변화된 환경에 적응을 하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마음이 편해지면서 잠시 숨죽이고 있던 호기심이 발동하여 먹어보고 싶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는 특히 현지 마트에서 새로운 과일이나 야채, 군것질거리 등을 먹어보는걸 참 좋아해서 이것저것 사 와서 먹어본다. 요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해봤자 야채볶음이나 샐러드 정도고..... 거의 현지 디저트나 과자 등 군것질을 많이 한다. 주말에 근처 카페나 식당, 가게나 쇼핑몰을 탐방하기도 하고, 회사 근처 식당들도 여기저기 도전해 본다. 주변에 알게 되는 사람들도 슬슬 생기기 시작하면, 저녁 외식도 늘어나고 초대도 많아진다. 이렇게 군것질과 외식으로 두 번째 달부터 체중이 부쩍 늘어 평소 체중을 넘어간다.
그러다가 물갈이 겸 그간의 방탕한 식습관에 대한 대가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급성위장염이 걸리거나 역류성 식도염이 도지거나 해서 열이 나면서 한 번 앓아눕는다. 이렇게 아프면 그제야, 아 맞다 잠 잘 자고 밥 잘 챙겨 먹고 운동도 해야지! 하며 정신을 차린다. 아파서 살이 좀 빠지고, 그 이후 운동도 하고 밥도 제대로 챙겨 먹으면서 다시 평소 체중으로 돌아온다. 그 뒤로는 대체적으로 규칙적으로 살면서 별 변화가 없다. 한국에 돌아갈 때가 다가오기 전까진.
귀국할 때가 되면 업무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매우 바쁘다. 팔 건 팔고 줄 건 주고 가져갈 건 가져가려 짐도 정리하고, 한국에 가져갈 선물도 사고. 언제 어디서 다시 볼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친구들과 밥이라도 한 끼 더 먹고, 아쉬움을 덜기 위해 좋았던 곳 한 번 더 가보고, 맛있었던 것도 한 번 더 먹고. 운동 이런 건 당연히 뒷전이다. 한 명이라도, 한 번이라도 더 만나야지. 매일 저녁, 매일 주말이 약속이고 만남이다. 그렇게 먹고 마시며 정신없고 즐겁고 아쉬운 마지막 한 두 달이 훅 지나가고, 조금 슬픈 마음과 조금 무거워진 몸으로 한국에 돌아간다.
한국에 돌아오면, 슬픈 마음이 가시기도 전에 너무 신난다. 첫 한 달 정도는 파티다. 일도 안 하는 기간이다. 보고 싶던 사람들을 아주 자주 만나고, 그동안 먹고 싶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먹을 수 없었던 음식들을 정말 신나게 먹는다. 이 기간에는 사회적인 인간이 될 기운까지는 없어서 엄청 엄청 가깝고 친한 소수만 자주 만난다. 몸 편하고 마음 편하고 그리웠던 음식들 계속 먹고. 살은 좀 더 찌고. 그러다가 한 두세 달 있다 보면 새로운 일상에 적응되며 평소 몸무게로 돌아온다.
체중변화는 그냥 그러려니 하지만, 피부질환은 고통스럽다. 가장 큰 원인은 물인 것 같다. 한국은 물이 참 좋다. 수돗물도 수질이 참 좋고, 요리도 할 수 있고. 여차하면 그냥 마실 수도 있고. 선진국인 호주도 시골은 물이 안 좋아서 연수기를 써야 했다. 물 자체가 석회질도 많고, 질도 안 좋다. 외국에서는 어디를 가든 물갈이를 하기 전까지는 양치할 때 생수를 쓰는데, 물갈이를 한 뒤에는 수돗물을 쓰기도 했었는데 정말 후회하는 일 중 하나이다. 이가 약해진다. 때운 것도 잘 빠지고 잇몸도 상하고(내 치과 진료비.....). 지금은 양치할 때도 생수를 쓴다.
캄보디아에 씨엠립에서는 정말 심하게 피부병을 앓았다. 물탱크가 있고 연수기가 설치되어 있는 상황이면 괜찮은데, 한 번은 연수기가 없는 방에 묵었었다. 물로 샤워를 했더니 몸의 왼쪽 얼굴 귀 아래부터 목, 팔, 배, 허벅지까지 피부 표면이 우둘투둘해지고 벌겋고 딱딱하게 부어오르면서 엄청 간지러웠다. 흉터가 남는 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바로 연수기가 있는 방으로 옮겼지만 한동안 피부병이 가라앉지 않았다. 너무 간지러운데 긁으면 안 되니까, 뜨거운 물로 가려운 부분을 지지고(이렇게도 하면 안 된다) 차가운 생수로 식히기를 반복했다. 그러고도 밖에 땀 뻘뻘 흘리면서 돌아다녀서 더 오래갔던 것 같긴 하다. 그래도 약 먹고 발랐더니 한 2주 뒤에는 얼추 가라앉았다.
호주 시골에서도 같은 피부병이 도졌었다. 도시에서는 물이 괜찮았는데 시골에서 살던 곳은 상하수도 시설이 도시만큼 관리가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게 기후와도 관계가 있었나 보다. 그 호주 시골도, 씨엠립도 그렇고 습하고 더운 계절이었다. 여기서도 한 2주 정도 피부병이 지속되다가 나은 뒤로는 그 물로도 계속 별 무리 없이 살았다.
여기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는, 내가 사는 아파트도 물이 많이 안 좋다. 석회질이 정말 많고, 가끔 물비린내도 난다. 머릿결도 푸석해지고. 샤워실 청소를 해도 바로 하얀 물 마른 자국이 생기고, 바닥에 끈적하고 미끄러운 무언가가 묻어나온다. 섬유유연제를 쓰지 않으면 빨래에 물비린내가 그대로 묻어나온다. 이 물로 양치를 하면 이가 다 사라지겠구나 싶어서 계속 생수를 쓰고 있다. 여기 온 뒤 두피와 등 날개뼈 사이 같이 로션을 바르기 힘든 곳에 붉고 아프게 뭐가 나서 꽤 고통스러웠다. 거의 두 달 정도 지속되다가, 어느 순간 몸이 적응을 했는지 싹 사라졌다.
이동이 잦을수록 몸에 소홀해지기가 쉬운 것 같다. 새로운 환경에 이미 긴장이 많이 되어 있는 데다가 주로 생활환경이 덜 좋은 곳으로 가니까 육체적으로 부담이 가고 불편할 때가 많은데, 새롭게 익히고 신경쓰고 챙겨야 할 것들이 많으니 몸은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게다가 둔한 편이라 몸이 불편하거나 아픈걸 뒤늦게 눈치채기도 하고, 별 일 아니라고 참아버리기도 해서 몸을 괴롭게 하는 주인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지금은, 나이가 들면서 체력도 떨어지고, 몸의 희생으로 얻어지는 다른 것들에 대한 한계가 점점 느껴져서 몸부터 우선적으로 잘 챙겨주려고 한다.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경험으로 조금 더 잘 알게 되기도 했고. 외국으로 거처를 옮기면 한동안 신경써서 잠을 잘 자 주고, 먹을 것도 잘 먹으려고 해 주고, 운동도 자주 해주고, 힘들면 쉬고. 특히 외국에서 아프기라도 하면 정말, 더 고생이니 미리미리 챙겨줘야 한다. 더 잘 챙겨주도록 노력할게, 건강하자 내 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