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힘은 듣는 힘이 된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각종 비유로 하늘나라의 진리를 설명하신 후'들을 귀가 있는 자는 알아들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구절이 나온다. '들을 귀'는 무엇일까?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열심히 듣고 이해하고 노력하는 '귀'라고 성경 공부 시간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진리를 깨우치는 귀라니. 너무나 심오해서 그 또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 귀가 결국'경청'하는 귀라는 걸 '경청'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을 때 알게 되었다.
2008년 즈음부터 경청에 대한 책이 정말 많이도 출간되었다. '들을 귀'가 참으로 약했던 터라 '경청'이라는 글자가 박혀있는 책은 거의 다 읽어봤다. 그런데 슬프게도 경청 능력은 생각보다 늘지 않았다. 진리를 탐구하는 수준은 고사하고 상대방의 의도를 이해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경청 능력도 천부적인 재능인가 싶었다. 상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결론을 도출했을 때 관계가 어그러지고 일적인 부분에서도 문제가 생기다 보니 '경청'능력 함양에 대한 다급함이 밀려왔다.
경청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경청의 달인!! 마이크로 소프트 회장님, 바로 빌 게이츠. 이 분은 경청 관련 책에는 언제나 등장하시는 분으로 경청 분야의 신계에 계신 분이다. 이분이 주로 많이 쓰는 말은 세 가지, '정말요?', '대단한네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라고 한다. 열심히 따라 해 보았다. 나도 들을 귀를 가지고 싶다는 일념으로 정말 열정적으로 눈을 마주치고 질문을 하고 심지어 보는 앞에서 필기도 해보았다. 물론 전혀 의식하지 않고 내 말만 쏟아내기 바빴던 시절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러나 빌 게이츠랑 이야기하고 나온 사람들은 빌 게이츠의 교감 능력에 탄복하며 계약도 막 해주고 친구도 되고 그런다던데 나는 여전히 맹숭맹숭한 관계들이 지속될 뿐이었다. '내가 빌 게이츠가 아니니까'라고 생각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주변에 평범한 사람들 중에도 경청에 능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가시나무'라는 노래가 우연히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올 때 문득 생각했다. 빌 게이츠의 세 가지 질문을 하면서도 언제 다음 질문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 내 말을 쏟아낼 틈을 보며 듣는 척하던 시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 아무리 해봐야 '들을 귀'가 생길 리 만무하다. 그놈의 자기 중심성은 항상 말썽이다. 그냥 대충 나 좋을 대로 살면 그뿐이라면 또 그뿐이지만 그래도 한번 살고 가는 인생인데 일도 잘하고 관계도 잘하고 잘 살고 싶은데 '들을 귀'가 생기면 그 모든 게 술술 풀린다니 너무나 갖고 싶은 그 능력!! 대박 우량주보다 더 확실한 미래를 보장받을 거 같은 그 경청 능력은 정말 오랜 과제였다.
자기 중심성을 낮추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능력은 어떻게 키워지는 것일까를 고민하다가 재작년 즈음인가에 사실상 포기했었다. 사람 만나는 일이 스트레스가 되어 버리고 극도로 말하는 데 소심해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생긴 대로 살자!! 그러다가 코로나가 터지고 재택이 시작되고 새벽에 일어나고 책을 읽고 리뷰를 올리고 SNS에 올라온 다른 리뷰들을 읽으면서 조금씩 상대의 언어를 이해하는 힘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뭔가 횡재한 기분!
책을 읽어보면 술술 읽히는 경우도 있지만 읽다 보면 딴생각하다가 두 페이지 그냥 넘기는 경우도 있다. 그럼 다시 돌아가서 읽게 되고 내용이 난해한 경우는 앞으로 다시 돌아가기도 하고 주술 관계를 따져서 정리를 따로 해야 할 때도 있다. 이렇게 이해를 위해 머리를 굴리고 생각을 깊게 하는 훈련을 통해 듣는 힘도 생긴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정말 유레카였다.
경청의 힘이 없으면 일대일의 관계뿐만 아니라 강의를 듣거나 긴 스피치를 들어야 할 때에도 집중력이 떨어진다. 결국 듣는 집중력을 기르는 훈련이 필요한데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듣는 능력은 청해력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사람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능력은 '청해력'이 아니라 '문해력'이다.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듣고 이해하는 능력과 연결되어 있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작가가 최선을 다해 뽑아낸 문장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문장들과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어려운 문장을 이해하며 상대의 복잡한 심경을 이해하는 힘을 기르고 문장을 읽으며 웃고 울며 감정을 움직이면서 경청을 넘어 공감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보낸 시간들이 보상을 해주듯 이제는 듣는 게 익숙하고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하다. 다른 사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그냥 '일'이었던 시절에는 꿈도 꿀 수 없던 놀라운 능력이 배양되었다. 경청의 힘은 실로 놀라워서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게 하는 마력이 있다. 그뿐이 아니라 사춘기 아이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도 더없이 좋은 힘을 준다.
요즘같이 얼굴을 마주 하지 않고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 일이 많을 때는 더욱 문해력이 필요하다. 마스크를 쓰고 이야기를 나눌 때는 입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상대의 표정을 읽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완전히 듣는 것에만 의지해 말의 의미를 이해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귀를 기울이다는 뜻의 '경청'은 요즘처럼 느슨한 듯 촘촘하게 짜이고 복잡 미묘하게 얽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초연결 사회에서는 매우 필수적인 능력이다. 이 능력을 배양하는 훈련은 다름 아닌 '독서'라는 사실! 오늘부터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경청'능력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