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날 닮아 쉴 팔자가 못 되는 걸 어쩌겠니.” 아주 오랜만인 엄마와의 통화를 끊으며 듣는 마지막 인사다. 타고난 팔자란 게 어딨어?라고 반박하려다 가만가만 그 말을 건네는 다정하고 조심스러운 말투가 떠올라 그만둔다. 내 엄마 식(式)의 딸을 향한 진심 담긴 위로와 응원인 걸 알고 있으니까. 해가 바뀌어 70의 연세에 요양원으로 출근하시며 매일 같이 코에서 불나는 코로나 검사를 감내하는 엄마께서 하신 말씀이니까 이제 고작 마흔하고 몇 년 넘은 딸은 바로 입을 다문다.
사주를 본 적도 없지만 타고난 복이란 게 있다면 쉴 복 보다 일 복이 많을 것임은 분명하다. 지난 여름 직원 한 명의 코로나 확진으로 회사 내 70%가 자가격리 대상자로 분류되었다. 난 당연히 미해당 반대쪽 30%, 전 직원 열 명 남짓이라 출근 가능자는 나를 포함 4명뿐이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우린 어벤져스다!’ 혼자 주문을 외웠다. 길게 숨을 내쉬는 법도 잃어버린 듯 온몸 꼿꼿한 긴장감으로 꼬박 2주를 보냈다. 상황이 일단락되고 연말에 상여나 많이 요구하라며 현실적 위로를 하던 친구는 “일복 하난 타고났어. 하긴 넌 천국이라는 조리원에서도 쫓겨난 애잖아!”라며 웃는다. 아 그렇지. 산후조리원 건물 내 은행에서 화재가 발생한 건 나와 아기의 조리원 입소 3일도 채 되지 않은 새벽이었다. 화재경보기 소리에 잠이 깨 조리원복 그대로 신생아실 클린룸에 모여 겉싸개로 싼 내 아기를 꼭 끌어안고 덜덜 떨었다. 소방대원의 제재를 뿌리치며 “이 안에 내 와이프랑 아기가 있어요!”라고 소리 지르며 계단을 날 듯 뛰어 올라온 남편의 당시 무용담을 농담처럼 말하지만,,, 짐을 챙길 새도 없이 분유가 담긴 젖병 몇 개, 신생아 기저귀 몇 장만 배급(?) 받아 생후 4일 된 신생아를 데리고 쫓겨나듯 집으로 향하던 그 새벽은 공포 자체였다. 신생아를 맞을 아무 준비 없는 집안에서 밤낮을 뜬 눈으로 지샌 초보 아빠엄마는 전우애를 쌓으며 살이 말라갔다. 산후 몸조리는커녕 2.9kg 작게 태어난 아기마저도 1주 후 검진에 체중이 더 빠져있었지. 서툰 부모의 난리통 속에서 너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속이 상해 혼자 꺽꺽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욱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라는 밈(meme)을 처음 보고는 껄껄 웃음이 났다. 격한 공감까진 아니지만 기발하고 재치 있게 활용되는 밈을 보며 속 시원한 쾌감을 느꼈다. 얼마 전부터 난 지인들에게 퇴사하면 해조류처럼 살 거라고 농담처럼 말한다. 숨쉬기도 귀찮으니 물의 흐름에 따라 살랑살랑 몸을 흔드는 유연한 해조류의 삶을 살 거라고. 수면에 철썩대는 파도의 영향도 거의 없는 고요한 저 바다 밑에 몸을 고정한 영혼 없는 해조류 말이다. 아, 근데 내가 만든 해초 숲에 조개들이 딱 붙어 집을 짓고 살면, 물고기가 떼로 놀러와 몸을 숨기고 술래잡기하며 귀찮게 하면 어쩌지.
“진아는 닭(띠)인데 아침에 태어나서 가만있지 못하고 바쁜 거지, 저녁에 태어났으면 꾸벅꾸벅 한자리에 얌전히 앉아 졸기만 했을걸.” 어린 시절 유독 친할머니와의 추억이 많은 내가 할머니 품에서 많이 들었던 말씀이다. ‘아침 닭’인 내가 정말 해조류의 삶을 꿈꾸고 있긴 한 걸까 의구심도 든다. 어쩌면 진심이 아닌, 재미 없는 이 농담을 여러 번 내뱉는 것은 나만이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위로의 말이기 때문일지도. 깊은 바닷속 줄기를 긴 팔처럼 쭉 뻗어 사방으로 허우적거리는, 내 얼굴을 한 해조류를 짧게 상상해본다. 매번 질리지도 않는지 저녁 메뉴로 또 미역국을 주문하는 아이의 말에 미역을 불린다. 깊고 뽀얀 국물을 내는 비법인 양파 한 알을 통으로 넣어 냄비에서 한참 푹푹 끓고 있는 미역국을 보며 깨닫는다. 내가 꿈꾸는 해조류는 이렇게 삶 가까이 있다.
January 15,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