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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실 Oct 22. 2024

울음을 터뜨린 장소에 보물이 있다

낭만의 도시 'Porto(이하 포르투)'다. 포르투는 포르투갈길을 걸으면서 하루 이상 꼭 머물기로 계획했던 도시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루트 중 하나인 포르투갈길에서 출발 지점인 리스본과 도착지인 산티아고 대성당의 딱 중간 지점에 위치해있다. 이 도시를 알게 된 건 몇 년 전, 예술 공간을 운영하는 유란 언니로부터다. 도시에 흐르는 큰 강과 몽환적인 노을빛, 그리고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빨간 지붕들이 담긴 사진을 여러 장 보며 포르투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포르토가 포르투갈의 준말, 즉 나라 전체를 뜻하는 줄 알았다.)


내게 설명해준 도시의 특성이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도시를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는 언니의 눈빛이 긴 여운으로 남았다. 사랑에 빠진 눈빛 덕분에 도시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다. 무튼 이름만 알고 있던 도시 덕분에 포르투갈이라는 나라에 대한 내적 친근감이 있었고, 순례길 루트를 고를 때 이 길로 마음이 기울었던 것에도 그런 친근감의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걸으면서 순례자들을 통해 재밌는 소식을 하나 듣게 되었다. 내가 머물 이틀 동안 포르투갈 국가의 큰 행사인 성 요한 대축제 기간이라는 것! 이런 여행자의 행운이 있나.


그런데 기대했던 포르투에서의 시간은 기쁘지가 않았다. 설명하기 어려운 슬픔이 자꾸 마음 속에 고여있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살살 달래 대성당으로 향했다. 대성당 마당 앞에서 뜨거운 볕에 얼굴이 새카맣게 탄 첼로리스트 연주를 들으며 일기장을 꺼냈다. 뭐라도 토해내면 답답한 마음이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두서 없는 마음의 상황을 활자로 옮겼다. 펜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을 노래하고 만져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순례길 13일차, 처음으로 맥없이 눈물샘이 터졌다. 왜 눈물이 흐르는지 나조차도 영문을 모르겠다. 그냥 흐르는 대로 두고 계속 일기장을 채웠다.



2024년 6월 23일 일요일

왜 인지는 모르겠다. 어제부터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다. 아름다운 낭만의 도시 포르토까지 와서 왜 즐기지 못하는 걸까. 나는 지금 나에게 잘 집중하고 있는 게 맞을까. 영어를 못해서 속상한 걸까. 외로운가? 두려운가? 무엇이 내 마음을 슬프게 하는 걸까. 나는 왜 여기에 왔을까. 왜 이 길을 걷고 있을까. (...) 순례길의 여정이, 지금 들리는 첼로곡이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해서 흐르는 눈물일까. (저 아저씨 선곡 진짜 미쳤네) 연금술사에서 눈물이 터뜨리는 장소를 그냥 지나치지 말랬는데, 여기에 내 보물이 있는 걸까. 오늘 대성당에서 미사 한 번 드려볼까. 내가 울음을 터뜨린 장소를 그냥 지나치면 안 되니까.


- 순례길 일기 중에서



아주 오랜만에 미사를 드렸다. 미사를 드리면서도 많이 울었다. 콧물, 눈물 쏙 빼며 아이처럼 울어본 적이 얼마만인지. 그렇게 울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아직까지도 그 울음의 의미를 정확히는 모르겠다. 일기장에 쓴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휘몰아쳤던 것 같다. 이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행복감, 마음을 만져주는 것 같은 황홀한 음악 소리, 순례길이 끝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 퇴사 후 밀려오는 막연한 불안함 등.


그래서 나는 울음을 터뜨린 곳에서 보물을 찾았을까?


그렇다. 순례길을 마치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쏟아낸 감정이 좋아보이는 것이든 아니든 간에 온갖 감정과 상황 속에 서있는 자신을 투명하게 마주한 것이 나에게는 보물이었다. 나의 상태를 가만 쳐다볼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이 정말로 보물이었음을 느끼고 있다.



네가 울음을 터뜨리게 될 장소를
그냥 지나치지마.

그 자리가 바로 내가 있는 곳이고,
네 보물이 있는 곳이니까.

- 파울로 코엘료,《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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