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의 세계는 다양하다.
나와 너무 다른 사람들을 이렇게나 많이 만나게 되다니. 놀라울 정도다.
남자들이 군대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인간군상이 있듯, 여자들은 육아를 하며 비로소 정말 다양한 유형의 여자들을 만나게 된다.
회사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비슷한 background의 사람들이 면접을 통해 입사하게 되기 때문에, 그리고 회사에서 추구하는 인재상이 어느정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회사에서 간혹 정말 이상한 사람을 만나게 되기도 하지만, 그 사람은 적당히 선을 긋고 무시하면 그만이다. 회사라는 곳에서는 결국 '일'을 잘하고 적당한 처신을 하기만 하면 장땡인 곳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아이를 통해 만나게 되는 엄마들은 다르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내 새끼'와 아이의 친구들이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거리를 두고 냉정하게만 대할 수가 없다. 아무리 느낌이 비슷해도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왔을거라고 쉽게 판단해서는 안된다. 다양한 곳에서 나고 자랐고 그만큼의 다양한 삶이 있다. 서로 다른 경험들을 하다가 우연히 같은 시기에 아이를 낳고 같은 동네에서 그 아이를 키우게 되었다는 공통점 빼고는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기 때문에, 서로 조심해야하고 그만큼 거리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약 2년 전,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게 되면서 알게 된 동네 엄마가 있다. 나보다 나이가 9살이나 많았다. 무리에 어울려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그 안에서의 대장 노릇을 자연스럽게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야 나이가 가장 그 모임에서 많기도 했지만 그 엄마가 엄마들을 잘 '모으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적당한 리더십도 있었고 잘 챙겨주는 사람이었기에 누구나 잘 따랐던 것 같다.
아이가 하원하고 나서 동네 친구들과 놀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나는 무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나의 실수라면 실수였다.)
서로 공동 육아와 아이의 사회성 키우기를 목적으로 만나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던 것도 잠시, 가끔 '선을 넘는' 것 같은 말과 행동을 보이는 것 같았고, 무리에서 가장 어리다는 이유로 서로 친해지기도 전에 그 무리의 모든 '언니'들이 나에게 반말을 하기 시작했을 땐, '이게 맞나?' 싶었다.
신경쓰기 시작하니 신경 쓰이는 것이 한 둘이 아니었다.
나의 아이가 유치원에서 유독 키즈노트 사진에 많이 잡히던 어느 날에는 질투심이 섞인 말투로 불평을 한다던지, 자리에 없는 다른 엄마가 첫째와 둘째를 차별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은근하게 뒷담화를 한다던지, 자기는 평생 일을 해본 적이 없어서 나와 같은 워킹맘 앞에서 주눅이 든다는 식으로 말을 한다던지, 내가 좋아하는 다른 엄마를 계속 은연중에 까내린다던지, 은근히 우리 집 재정상황을 떠보면서 누가 우위에 있는지 판단하려 한다던지... 굳이 몰라도 될, 느끼지 않아도 될 부정적인 감정들이 하루를 지배하기 시작했는데... 조금씩 이런 것들이 누적이 되면서 내 생활에 적잖은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였고 그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우리 남편이나 아이에게까지 닿았던 것이다.
'공동 육아'라는 명목 하에 만들어진 엄마들 모임이 어느 순간부터 ‘여왕벌 놀이'로 전락하고, 여자들 무리 속에서 인정받으려 허튼 짓을 하다보니 정작 '우리 아이'를 제대로 바라봐주지를 못했던 것 같다. 나조차도 ’나‘를 외면하는 시간들이었던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결심했다. 그 모임에 굳이 내가 속해 있을 이유가 없겠다고.
적당히 좋게 둘러댄 후 더 이상 그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1:1로 만났을 때에는 좋은 관계여도, 꼭 모임이 되면 이상하게 변질되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아이를 통해 만난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내가 굳이 그 엄마들한테 '잘 보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 엄마들이 진정한 친구가 될것도 아니고, 그저 아이를 통해 알게된 이웃일뿐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나와 내 가족이라는 것을... 어리석게도 몇 달 간의 경험을 통해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건강한 엄마들 관계는 다음과 같은 관계이다:
1. 가급적이면 서로 존대한다. 반말을 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선을 넘을 수가 있다. 그 어떤 순간에도 경우를 지켜야 하고, 엄마들 사이에 서열이 존재해서는 안된다.
2. 뒷담화와 편가르기 금지. 이게 시작되는 관계라면 그 관계는 결국 파국을 맞을 것이다. 습관적으로 타인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과는 거리두기가 가장 좋다. (뒷담화는 남편에게만...)
3. 배려와 존중은 기본이다.
4. 서로의 의견을 묻는 관계가 좋다. 대화를 나눌 때 한 사람만 계속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듣는 사람이 피곤해지고 서로에게 유익한 시간이 못된다. 서로 경청하는 태도가 있어야한다.
그리고 다음의 조언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1. 아이도 중요하지만, 내가 불편함을 감수해가면서까지 아이 위주로 시간을 보낼 필요는 없다. 하원 전까지 아이는 충분히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잘 지낸다.
2. 빠른 시간 안에 갑자기 친해지고 가까워지는 관계는 없다. 천천히 가까워지는 관계가 오히려 더 돈독할 수 있다.
3. 홀로서기가 잘 되는 엄마일수록 성숙한 엄마일 가능성이 크다. 자꾸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하고 내 편을 만들고 싶어하는 엄마는 불안이 크거나 자존감이 너무 낮아 피곤할 수 있다.
4. 아이의 친구는 아이가 만드는 것이다. 결국 내 아이와 비슷한 성향의 아이와 친해진다. 나와 아이와의 관계가 건강하다면, 아이도 건강한 또래 관계들을 맺어 나갈 것이다. 아이를 믿고 기회를 주어야 어이도 그 믿음 안에서 성장한다.
5.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비슷한 성향의 동네 엄마 1-2명만 있어도 충분하다. 굳이 모임이나 무리에 낄 필요는 없다. 육아 정보나 교육 정보 등 요즘은 온라인에서도 충분히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 너무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