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
돌이켜보면, 나는 관계에 능숙한 사람이 아니다. 겉으로는 금방 친해지고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 속을 들키기 싫어서 딱 그만큼만 거리를 두며 살아왔다. 먼저 연락하지 않고, 오면 받는 정도로만. 그러니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 친구들과, 대학교를 졸업하면 대학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건 예정된 일이었다. 돌아보면, 아마 그때부터 이미 인연의 ‘계절감’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같이 자취하던 동기에게서 편지가 왔을 때 그 흐름은 더 분명해졌다. 반가워서 뜯었는데, 내용은 전부 비난이었다. 나에게 맞춰주느라 힘들었고, 다시는 보지 말자는 이야기. 그때 알았다. 사람은 내 앞에서 웃다가도 뒤에서는 전혀 다른 마음을 품을 수 있다는 걸. 그 일을 겪고 난 뒤로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깊은 마음을 내어주지 않기로 했다. 그 결심은 상처라기보다 자각과 확신에 가까웠다. 깊은 관계는 나와 맞지 않는다는.
취업은 망했고, 공무원 시험은 질질 끌다 떨어지고, 작은 NGO에 들어가 일하면서 주말도 없이 살았다. 교회 출석은 인사고과에 반영되었고, 월급을 받아도 십일조라며 다시 걷어갔으며, 점심시간엔 찬양 연습을 하거나, 회사 차 안에서 쪽잠을 자야 했다. 그 시절의 나는 내 몸 하나 부여잡기도 벅찼다. 누군가와 우정을 쌓고, 시간을 나누고, 서로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건 사치라 여겨졌다. 그 시절 나는 생존이 먼저였고, 관계는 그 뒤였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아버지와의 갈등에도 지쳐갔다. 굳이 집에서 제일 먼 대학교를 골라서 간 건데, 초라한 패잔병으로 돌아와야 했으니까. 그 끝에 무작정 집을 나와 원룸을 얻고, 소개받은 남자와 세 번 만나고 결혼을 결심했다. 착했고 바르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결혼식 날, 내 친구는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시댁 식구들의 인연만 식장을 채웠다. 텅 빈 신부 친구석을 보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그들과 나는 이미 다른 물길을 걷고 있었고, 억지로 이어 붙일 이유가 없었다.
아이를 낳고,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온 지 벌써 5년이 흘렀다. 이 동네에서 만난 엄마들과도 시절인연이 많았다. 유치원 시절 가장 가까웠던 엄마와는 어느 순간 대화가 어긋났고, 지금은 단지에서 마주쳐도 못 본 척 지나간다. 친자매처럼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엄마가 어느 날부터 안부 대신 네트워크 마케팅 홍보 카톡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우리의 인연의 시절이 끝났다는 것을 고요하게 알았다. 이제 사소한 연락에도 목적을 의심해야 한다는 것을. 더 이상 억지로 감정을 소모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에 오히려 안도했다.
사람들은 묻는다. “너무 매몰찬 거 아니냐”라고. 솔직히 죄책감이 아주 없지는 않다. 내가 그 사람 손을 놓아버린 것 같은 느낌.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들도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틀었을 뿐이다. 각자 선택한 물길이 다르면 인연이 끝나는 게 자연스럽다. 억지로 붙잡으면 서로 손목만 아프다.
엄마들 관계도 그렇다. 아무리 친해도 아이들이 틀어지거나, 내가 상대 아이에게 “친구를 때리면 안 돼”라고 한마디만 해도 관계는 바로 금이 간다. 모든 엄마가 ‘마음을 나눠 아이들을 함께 키우자’는 태도를 가진 건 아니었다. 결국 ‘엄마들 인연’도 오래 붙잡을 게 아니라는 걸 배웠다.
그런데 내가 예전과 달라진 건, 이 거리 두기의 이유가 더 이상 과거의 상처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하루를 조각조각 이어 붙이며 살다 보니 어느 순간 알게 됐다. 사람 사이에는 계절이 있다는 것을. 어떤 인연은 그 시절의 온도와 리듬, 그때만 가능했던 마음으로 이어지고, 그 계절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다른 자리로 흘러간다는 걸.
어떤 친구는 그 시절 내 옆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요란하게 웃고 울던 때, 내 말 한마디를 끝까지 들어주던 사람. 지금은 근황조차 모르지만, 이상하게도 미련이 없다. 그 시절이 우리의 수확기였고, 그걸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인연은 잠깐 스쳐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서야 그 사람이 남기고 간 마음 한 조각이 내 삶 어딘가에 깊이 박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들은 오래 머무르지 않았지만, 정확한 순간에 내 옆에 있었다. 그런 인연은 가벼운 게 아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영원’이라는 말보다 ‘그때 충분했어’라는 말을 더 믿게 된다.
누군가와 오래가는 것도 멋진 일이지만, 한 시절이라도 서로에게 제대로 머물러준 관계는 그것만으로 충분히 귀하다.
나는 이제 내 방식대로 산다. 사람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나도 그들에게 기대지 않는다. 서로 필요한 만큼 머물고, 필요 없으면 흘러가고, 그것에 과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 겉으로는 삭막해 보일지 몰라도, 내 안에서는 오히려 평온하다. 실망도, 과한 기대도 없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지나온 관계들이 모두 상처였던 게 아니라, 그 시절의 인연이었을 뿐이라는 것.
나와 함께 흐르다가 제 갈 길로 흘러간 물결들.
그걸 허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게 정직하다고 믿는다.
억지로 이어 붙인 관계보다, 서로의 물결을 인정하고 보내주는 순간이 더 단단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마음속에서 작은 인사를 건넨다.
“안녕! 그때의 우리, 참 좋았지? 어디에서든, 어떤 모습으로든, 행복하게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