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도 괜찮다고 말해줘요

살 때문에 괴로운 나에게

by 도토리

사람 만나는 게 부담스럽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오히려 그게 내 에너지였다. I의 성향이긴 하지만, 사람 자체를 좋아했고 관종끼도 좀 있어서, 대학 시절엔 인문대 학생회 부회장을 한 적도 있었다. 새내기들과 떠나는 새터를 4년 내내 따라 가서, 온 인문대 과를 다 돌면서 술을 받아 먹고 다녔으니, E 성향에 가까웠던 좀 이상한 I 였던 듯 하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입덧이 너무 심해 직장을 그만둔 뒤로는 집에만 있는 날이 많아졌다. 입덧으로 8kg이 빠지고 죽을 것 같던 시간이 지나자, 이번엔 먹덧이 시작됐다. 15kg이 쪘다. 첫 아이를 임신했으니 먹고 싶은 것도 많았고, 자상한 남편 덕에 쉴 새 없이 먹었다. 그렇게 살은 급속도로 찌기 시작했다.


겁이 많아서 제왕절개를 택했는데, 예정일보다 빨리 양수가 터졌다. 하필 그날 밤, 구운 달걀을 네 개나 먹은 터라 새벽 두 시에 병원에 도착했지만 금식이 안 돼서 수술은 아침 열 시에야 가능했다. 상관은 없겠지만, 아홉 살인데도 알러지로 인해 아직 계란을 먹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 그 때 두개 정도만 먹을걸, 뱃속에서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 싶어 죄책감이 든다.


그렇게 먹던 기세는 출산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기력은 없는데, 아기는 자지도 않고 계속 울었다. 어쩔 줄 몰라 불 꺼진 거실을 서성이던 새벽, 단지 안으로 들어오는 쓰레기차 소리를 들으며 엉엉 울었다. 도와줄 친정엄마도, 시어머니도 없었다. 정말, 그냥 엉엉 울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하루 종일 샤워는커녕, 용변도 아이를 안은 채로 봤다. 처음이라 아이가 조금만 울어도 안아서 달랬고, 예민한 아이는 기저귀가 살짝 젖기만 해도 울어댔다. 하루에도 열댓 번씩 기저귀를 갈다 보니 허리가 나가버렸다.


남편이 퇴근해 오는 저녁 시간에야 겨우 한 끼를 먹을 수 있었는데, 스트레스는 쌓이고, 아이는 아빠보다 엄마에게만 안기려 했다. 결국 일찍 단유를 하고 치킨에 맥주를 마셨다. 지금은 술 한 잔도 못 마시지만, 그땐 먹다 보면 또 먹어지더라. 불규칙한 식사와 잦은 맥주 덕에, 몸무게는 만삭 때를 훌쩍 넘겨버렸다.


아이 여섯 살 무렵,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응급실에 갔다가 담낭에 담석이 가득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결국 쓸개를 떼어냈다. 떼어도 상관 없는 장기라고는 했지만, 이상하게 내 일부분이 떨어져나간 느낌이 들었다. 아이는 장난스럽게 에이트의 '심장이 없어'를 “엄마는 쓸개가 없어~”로 개사해 부르기도 했다. 젊은 나이에 쓸개까지 뗐으면 그때라도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 그게 참 어렵더라.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단둘이 살며 라면과 햄으로 끼니를 때웠던 나에게 ‘건강한 식사’는 낯선 개념이었다. 방법도, 의지도 없었다.


그게 지금의 나다.


한때는 동네 엄마들과 복싱장을 다니며 6개월 동안 8kg을 뺐다. 근육이 잘 붙는 체질이라 체지방이 많이 줄었는데, 아이 방학이 되면서 그만두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리바운스로 10kg이 다시 쪘다.


그게 내가 점점 더 I 성향으로 기울게 된 이유다.


살이 찌니 사람을 만나기가 싫었다. 대학 동기의 결혼식에도 가지 못했고, 선후배들이 모인 자리엔 축의금만 전했다. CC였던 선배에게도 소위 ‘애 낳고 퍼진’ 내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자신감이 완전히 사라진 기분이었다.


삶은 무료했다. 흥미롭지도 않은 유튜브 영상을 습관처럼 보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드라마도, 영화도 재미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울증의 초입쯤에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을 피하고, 아이가 유치원에 가면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다. 움직이지 않으니 살은 더 쪘고, 몸은 부었고, 스트레스는 커졌다. 결국 다시 먹었다.


‘살’이라는 단어는 참 귀여운데, 왜 나는 살 때문에 이렇게 괴로울까. 머리로는 안다. 의지로, 건강한 식단으로 빼면 된다는 걸.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쇼핑몰의 예쁜 옷들을 본다. 입을 수 없는 옷들. 그럴 때마다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


사람들 모임도, 아이 친구 엄마들끼리 만나자는 약속도, 아이 학교 행사도 가기 싫다. 아이가 혹시 나를 부끄러워할까 걱정되기도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직 모르겠다. 언젠가 다시 ‘나’로 돌아가는 날이 오길 바랐지만, 어쩌면 이게 나일지도 모른다.


우울감에 휩싸여 사람들을 피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이라도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연습을 해 보려 한다.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아이를 사랑하듯 나를 사랑하고, 아이를 대하듯 나를 대해주면 되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이렁 나인 채로도 괜찮다는 걸 조금씩 배워가겠지.

지금의 나 자체만으로 가치있다고 느끼는 순간.


나는 알고, 또 믿는다. 그 순간은 전적으로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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