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의 상태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삐비빅, 중증입니다

by 도토리

언젠가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인간은 ‘가능성의 상태’를 즐긴다고.


언젠가 작가가 되고 싶다던 나였지만, 한 번도 공모전에 작품을 내본 적이 없다. 직장 생활이 바빴고, 아이가 어려 손이 많이 간다는 핑계로, 나는 늘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라는 말속에 숨어 있었다.
시작조차 하지 못한 채, ‘시작하기만 하면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가능성의 상태를 즐긴 것이다.

나에게 ‘쓴다’는 건 늘 그런 일이었다.
어릴 적 담임선생님이 스치듯 말한 한마디.
“너는 책을 참 좋아하는구나. 글을 잘 써서 작가해도 되겠네.”
그 말이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사람은 참 별거 아닌 말 한마디에 인생을 걸기도 한다.
나는 그 말 덕분에 ‘책을 좋아하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 냈다. 믿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각 잡고 쓰면 등단도 할 수 있을 거라는 가상의 인물도 만들어냈다.


어쩌면 그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현실의 비루한 나와 마주하기보단, 언젠가 잘 될 나를 믿으며 사는 게 덜 아팠으니까.

그런데, 살다 보니 어느새 마흔이 가까워졌다.
몸도 마음도 여전히 청춘 같은데, 세상은 나를 ‘어른’으로 규정하고, 아이 역시 나에게 어른의 모습을 기대한다.
나는 아직도 ‘가능성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데,
아이의 반짝이는 눈이 묻는다.

“엄마, 엄마는 내 엄마 말고 원래 꿈이 뭐였어?”

인생은 어찌어찌 길을 잃고도 순탄하게 흘러간다.
열정에 휩싸였던 젊은 날은 가고, 평온하고 무료하며 권태로운 날들만 남았다. 이대로 남편의 은퇴만 기다리며 살기엔, 남은 날들이 퍽 아득하다.

오늘도 이렇게 한가로이 자판을 두드리지만, 마음속에는 폭풍이 인다.
격렬하게 나의 쓸모를 증명하고 싶다.
부유하는 먼지 같은 삶이 아니라, 미루기만 하며 자기 위안을 삼는 삶이 아니라, 양귀자의 『모순』 속 문장처럼,
이제는 내 삶의 방향키를 다시 꼭 쥐고 과감하게 항로를 변경해야 할 때다.



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
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p.22 (양귀자,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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