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이가 대차게 넘어졌다. 그것도 나 때문에.
원래라면 피아노 학원이 끝나면 집까지 혼자 오게 한다. 학원이 집 바로 앞이기도 하고, 아홉 살 아이를 매번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는 것이 꼭 아이에게 좋은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나는 집에서 기다린다.
그런데 뭐가 터지려면 터지는 법이다. 오늘은 굳이, 굳이 오랜만에 쉬는 남편과 함께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었고, 또 굳이, 굳이 학원 건물 안 카페에서 기다렸다가 데리러 갔다.
아이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신나게 떠들며 나왔고, 나는 소원했던 친구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신호 하나를 놓쳤다. 다음 신호를 기약하며 또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횡단보도를 바라봤을 때, 이번에는 7초라는 숫자가 깜빡거렸다. 어서 건너라며 손짓하는 점멸신호를 보며 나는 뭐에 씌인 사람처럼 “얘들아, 뛰자!”라고 말했다.
5초였다면 포기했겠지만, 7초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4차선 도로라, 7초면 괜찮겠지 싶었다.
그때의 판단이, 나중에 얼마나 큰 후회로 돌아올지는 몰랐다.
여자아이들이 경쟁하듯 신나게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가 친구의 신발에 걸려 갑자기 도로 연석에 얼굴을 세게 부딪히며 넘어졌다. 진짜 대차게 쾅. 순간, 아이가 슬로모션으로 날아가는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넘어지면 무릎부터 닿는데, 연석이 높아 얼굴부터 땅에 닿았다.
“어머!!!”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지만, 이미 아이는 도로에 얼굴을 파묻고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입에서는 피가 흐르고, 손바닥은 까졌으며, 아이는 울고 있었다.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친구 엄마가 다급하게 휴지를 건네주었지만, 뭉텅이로 입에 틀어막은 휴지는 금세 피로 젖었다. 나는 그 순간에도 내 아이를 살피기보다 놀란 아이 친구와 친구 엄마를 향해 “괜찮으니까, 가셔도 돼요. 아우, 별일 아니에요.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진짜, 나란 인간이란.
남편은 당황해서 아이를 번쩍 업고 집으로 뛰어갔다. 엘리베이터에서도 엉엉 우는 아이를 내려놓지 않고 달려들어온 남편은, 집에 도착하자 미지근한 물로 피 묻은 손과 얼굴을 닦아 주었다. 그런데도 입에서 피가 멈추지 않았다.
‘아, 이거 병원 가 봐야겠다.’
입 안쪽에서 피가 나는 상황이라 어디가 다쳤는지 정확히 식별하기도 어려웠다. 단순히 입 안이 터진 건지, 이가 금이 간 건지, 흔들리는 건지, 확실하게 확인해봐야 했다.
가장 가까운 집 앞 치과에 급히 갔지만, 예약 없이 온 우리는 두 시간 정도 기다리라는 답을 받았다. ‘내가 다칠 줄 알고 예약을 했겠냐고.’ 예약한 사람들이 우선인 건 이해하지만, 아이가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데 두 시간이라니, 마냥 기다리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휴지로 입을 막아도 피는 계속 흘렀고, 피를 본 아이의 울음소리는 그러데이션으로 커져만 갔다. 혹시라도 이가 부러졌다면 어쩌나, 영구치인데, 별별 걱정이 들며 초조함이 미친 듯이 올라왔다.
평소 차로 다니던 어린이 치과에 급히 전화했더니, 이런 경우는 외상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진료를 바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피를 많이 흘리는 상황이니, 우선 예약은 못 했더라도 최대한 빨리 오라고 했다.
아, 정말 이렇게 감사할 수가!
남편이 아이를 안고 거의 날다시피 해서 뛰어간 결과, 도보 20분의 거리의 병원에 무려 8분 만에 도착했다. 아홉 살, 거의 30kg 되는 아이를… 그 속도라니. 옆에서 헉헉대며 쫓아가던 나도 죽을 맛이었는데 말이다.
도착해서 입 안을 살피자, 다행히 피는 어느 정도 멈췄고, 데스크에서는 슬쩍 보더니 바로 엑스레이를 찍어주었다. 대기 많기로 유명한 어린이 치과에서 이렇게 신속하게 진료를 받다니, 나는 그 자리에서 평생 충성을 다짐했다. 중학생이 돼도, 고등학생이 돼도, 이 치과를 다닐 것이다. “엄마, 나 이제 어린이 아니야” 해도, 다닐 것이다.
다행히 잇몸에 상처와 피멍만 있을 뿐, 치아는 흔들리지 않고 금도 가지 않았다. 얼마나 다행인지. 아이도, 우리도 놀란 마음을 달래며 안심해했다.
미안한 마음에 같은 건물 서점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읽으면서 써먹는’ 시리즈를 하나 사주고, 겸사겸사 수학 문제집도 하나 샀다. 남편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이 와중에 문제집을 사고 싶어?"
"아니, 집에 있는 거 다 풀었으니까, 온 김에…" 머쓱함에 웃음이 나왔다.
아이는 너무 많이 울어서 배가 고픈지, 도저히 배고픈 상태로 집까지 걸어갈 수 없다며 떼를 썼다. 그도 그럴 것이, 시계는 이미 7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저녁 준비도 늦은 상황이었다. 결국 아이가 사달라는 이삭토스트를 사 주었다.
퉁퉁 부은 얼굴로 제일 비싼 토스트를 골라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를 보며, 또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런데 나의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이의 불행도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엄마가 빨리 가서 손 씻겨주고 토스트 줄게.” 하며 도어록을 열다가, 바로 옆 아이를 못 보고 팔꿈치로 또 한 번 얼굴을 가격한 거다. 아이는 다친 입술이 또 맞았다며 울고 불고. 남편은 또 경악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 나 오늘 정말 미쳤나 보다.."
엄마는 왜 이렇게 사고뭉치일까. 사십을 바라보면서도, 왜 여전히 이렇게 덜렁대고 사고만 치는 걸까.
횡단보도에서 넘어졌던 일은 엄마 탓도 아닌데, 왜 그렇게 자책하냐고? 아니다, 늘 나다. 늘 내가 문제였다.
아이가 네 살 때, “엄마, 더 높이 밀어줘!”라는 말에 그네를 힘차게 밀어주다, 아이가 모래바닥에 꽂힌 적이 있다. 아이는 말 그대로 날았고, 나무 심듯 바닥에 꽂혔다. 그 후 아이는 1년 동안 그네만 보면 무서워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아이가 다섯 살 때는 공원 운동기구에서 아이를 세워 빙글빙글 돌리다가, "더 세게 해 줘!"라는 아이의 요구에 "오케이!!" 하고 힘 조절을 못해서 스피드를 높이다가, 아이가 날아가 얼굴이 다 갈린 적이 있다.
어디 이뿐일까? 이제 시작이다.
아이가 여섯 살 때는, 손을 잡고 점멸 신호등을 급히 건너다가 아파트 계단에서 넘어지게 했다. 그 신호등이 바로 오늘의 신호등 되시겠다.
아이가 일곱 살 때는, 눈이 많이 오는 날 놀이터에 누워 있는 아이의 두 다리를 들고 "엄마 썰매다!" 하며 끌어주다가 나무에 머리를 박게 한 적도 있다.
오늘 아이의 입술은 부풀고, 광대뼈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방금 격투기를 끝낸 선수의 얼굴 같았다. 잇몸은 검게 변했고, 침을 삼키기도 힘들어 발음도 뭉개졌다. 밥 대신 사 온 토스트를 먹으려 해도 입술이 찢어져 빵 안 내용물이 줄줄 흐르고, 우유를 마시는 모습도 눈물겨워 급하게 빨대를 가져다주었다.
그 와중에 내일 학교에서 ‘우리 엄마 때문에 넘어졌어’라고 말하지 않기를 간곡히 부탁하며,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철없고 못난 엄마를 만나 매번 다치는 우리 딸. 제법 익숙해 보이기까지 하다. 착한 딸은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다.
"엄마가 진짜 미안해. 신호등 10초 남았으면, 절대 건너면 안 되는데, 마음이 급했나 봐. 매번 엄마 때문에 다쳐서 어떻게 해. 엄마는 엄마 자격도 없는 것 같아. 자식을 지켜주지 않고 매번 다치게 하잖아"
"왜 엄마가 미안해? 내가 넘어진 건데. 건너라고 한 건 엄마지만, 내가 그 말을 안 들을 수도 있었잖아. 엄마 때문이 아니야. 그리고 사랑을 많이 주는데 엄마 자격이 충분하지." 라며 잘 열리지 않는 입으로 웅얼거리며 대답한다.
'아, 나는 쓰레기야.'
오늘 배운 것이 있다.
이 아이에게 나는 재난, 그 자체다. 병 주고 약 주는 엄마, 바로 나다.
정말이지 나는 사고뭉치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