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감리제
허가권자와 민원인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상황에 따라 ‘갑’과 ‘을’의 위치가 바뀌며 서로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관계다.
최근 대통령은 산업재해 사망사고에 대해 엄벌을 강조하고 있다.
건설산업을 선진화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그러나 현장 관계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이 돈 받고 내 업을 걸 수 있느냐"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사람이 죽었는데 ‘고작 그 돈’이란 말이 나올 수 있을까.
공공건축물뿐 아니라 민간건축물까지 공공이 명확하게 통제하는 구조가 마련된다면, 안전불감증도 줄고 사망사고 역시 감소할 것이라고 믿는다.
현재 허가권자 지정 감리제는 소극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거기에 ‘역량 있는 건축사’라는 기묘한 예외 조항을 만들어 제도의 취지를 희석시키고 있다.
현상공모에 입상한 건축사라면 이 제도를 피해 갈 수 있다는 규정이다.
결국 스스로 건축사 등급을 나누어 기득권을 보호하는 셈이다.
공정한 감리의 첫걸음은 건축주와 감리자의 분리다.
두 관계가 ‘갑’과 ‘을’로 묶인 상태에서는 공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건설사와 감리자의 유착보다 더 빈번한 문제는 건축주의 변심이나 건설사 설득에 의한 무리한 설계변경이다.
허가권자 지정 감리제는 원래 건축주와 감리자를 원천적으로 분리하려는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예외 조항으로 인해 사실상 무력화됐다.
‘역량 있는 건축사’라는 명칭은 삭제되어야 한다.
공공성과 강제성을 부여한 ‘공공 감리제’로 확대 시행하는 것이 옳다.
공공 감리제란, 공공이 지정한 감리자가 막강한 권한과 함께 엄중한 책임을 지는 제도다.
처벌 강화만으로는 산업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
학생을 체벌하던 시대가 끝났듯,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강제할 때 비로소 변화가 온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감리자는 영업을 하지 않아도 무작위 추천을 통해 수주가 가능하다.
건축주와의 이해관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눈치 보지 않고 소임을 다할 수 있다.
상주·비상주로 나누는 현재의 구분도 필요 없다.
감리는 공공기관이 지정한 인력이 현장에서 상주하는 개념이어야 한다.
지역별 공공 감리 센터를 설치해 수시로 지원과 감시를 하고, 필요하면 2중·3중의 감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기업의 자정능력만으로는 산업 환경이 달라지지 않는다.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조직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고, 스스로 그 선을 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