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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실 Aug 08. 2022

몸에대해 말하다.

그 간절하고 숭고한 덩어리.


<브레이킹 베드> < 오자크><영 월랜더> <죄인> 같은 범죄수사물을 좋아한다. 요즘은 <블랙리스트>를 본다. 여성 요원들의 근육 가득한 등이 섹시한 남성의 것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몸>의 선에 감탄하곤 한다. 평생 내 몸도 제대로 못 살피고 살아왔다. 벌거벗은 몸을 보는 것은 금기였으며 목욕을 하고 나서도 몸이 마르기도 전에 옷부터 갖춰 입는 것이 습관이었다. 추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몸에 관심을 가진 것은 장난 삼아 그리던 인물화를 그리면서부터이다. 그래 봤자 채 열 번도 안 되는 경험이었지만 제각각의 사연이 담긴 얼굴을 그리는 맛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타인의 신체를 대놓고 살피다 보니 육체의 선을 그리는 일이 참으로 탐미적인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인체 드로잉이 다르게 보였다. ‘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36,24,36라는 수치에 갇힌 몸이 아니라 삶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살아낸 몸들, 처진 뱃살과 무너지고 녹아내린 인체조차 각별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그때쯤 나는 내 몸과 화해했던 것 같다.


깡마른 몸, 살집이 두꺼운 몸, 처진 가슴, 작은 가슴, 근육이 없는 헐렁한 허벅지, 탄탄한 엉덩이, 잔근육이 촘촘한 팔, 물컹한 삼두, 등. 100명이 100개의 사연을 가지듯 100개의 몸은 제 나름의 형체를 뽐낸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나는 이제야 남들보다 튼튼한 허벅지와 팔을 사랑하게 되었다. 허리 24, 25가 아니라면 부끄러워해야 하는 사회에서 자란 희생자라고 할 수 있겠다.


루시안 프로이트, 제니 샤빌, 그리고 뭉크. 몸을 주로 그린 화가들이다. 프로이트의 누드는 적나라하기로 유명하다. 사방으로 벌리고 잠든 몸을 보면 야하다기보다 안쓰러운 감정이 든다. 가식과 위선 없는 자세에서 무방비로 누워있는 사람을 보면 ‘사느라 고생 많다’라는 위로가 떠오른다. 제니 샤빌의 몸뚱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기 앞의 생에 나오는 ‘로자 아줌마’를 상상하게 된다. 그녀가 저렇게 생겼을까 하는 잠깐의 상상. 몸은 죄가 없다. 뭉크의 누드는 주로 남녀가 키스를 하거나 포옹을 하는 모습이다. 뭉크는 오랫동안 심신이 편치 않았다고 한다. 환영과 환청에 시달리며 힘들게 그린 그림이 그 유명한 <절규>라고 한다. 그러나 그의 누드는 그가 꿈꾸는 사랑하는 연인들의 모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의 누드화가 간절하고 애절하게 느껴진다.


자연스레 나이 들어가는 외모조차 멋스럽다고 생각하는 내가 딱 한 가지 싫어하는 ‘몸’이 있다. 바로 인공적인 모습이다. 본인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어쨌든 나에게 인공적인 ‘성형’한 얼굴과 몸은 매력적이지 않다. 미세한 성형도 알아봐 지는데 나도 환장하겠다.


내가 좋아하는 몸은 적당하게 처진 가슴, 헐렁하지 않을 정도의 근육이 잡힌 팔다리, 탄탄한 전완근이 있는 팔, 심각한 잡티는 없는 얼굴, 짜증스러운 주름은 없는 얼굴. 거기에 더욱 바란다면 가운데 홈이 분명한 등을 추가하겠다. 내 나이의 몸과 얼굴은 마음과 태도의 반영이라고 한다. 타고난 아름다움을 믿고 멋대로 살았다면 슬슬 무너질 나이이다. 공평한 하늘의 이치라고 생각한다.


몸을 만드는 것은 나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몸에 대해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겠다.




****뭉크/ 제니 샤빌/ 루시안 프로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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