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수 없다면 길들이기로
나를 키운 건 바람이 아니라 불안이었다. 어릴 적부터 불안이 심해서 온갖 것에 겁을 내었다. 버스로 다섯 시간이나 걸리는 외갓집에 가기 전 일주일 동안은 밤마다 차사고가 나는 꿈도 꾸었다. 횡단보도를 혼자 건너는 것도 나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과업이어서 혼자 횡단보도를 건너고 나면 거의 심장마비가 일어날 지경이었다.
불안의 절정은 사랑을 시작하면서였다. 내 안의 불안은 타인의 감정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더듬으며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잠식했다. 지금 생각하면, 과연 그들이 나를 불안에 떨게 할 만한 사람들이었나 의심스럽지만, 아무튼 그때의 불안은 나의 자존감을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 버렸었다.
나는 왜 그렇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불안했던가. 심리학계에서는 고맙게도 똑똑하고 지능이 높을수록 불안감이 높다고 한다. 주변의 공포와 알람에 촉수를 예민하게 세우고 예민한(alert ) 상태 속에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불안은 호랑이의 발톱이나 사자의 이빨 같은 물리적 무기가 없던 인간이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비밀 병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얼마간의 불안이 오늘의 나를 키웠다는 사실에 인정한다. 빈곤해질까 봐 죽기 살기로 일을 하고 ‘주류’에서 벗어날까 봐 최선을 다했다. 운동을 하고 홀로 공부를 하고, 그리고 마음을 챙기기 위해 산책을 하곤 했다. 세수도 하지 않고 아침마다 두세 시간씩 산책하며 억울하고 슬픈 구경희를 달래고 얼러서 새 힘을 채워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숭고한 산책길에, 혼자 오셨어요? 라며 들이대는 사람을 만나면 참 곤난하고 곤난했다.
불안은 해소되지 않는다. 호모 사피엔스로 존재하는 한 크고 작은 불안은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불안과 사이좋게 동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쪼개어 잘게 구분하고, 사소하고 구체적인 일을 구현함으로써 심리적으로 위안받는 것이 효과가 크다. 하나의 불안에 실타래처럼 엉켜 들어가는 것이 최악이다. 설거지를 ‘완성’ 한 후 말간 그릇을 보는 것도, 다림질을 한 말끔한 옷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되었었다. 무엇보다 걷거나 달리고, 때론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던 빡신 운동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욕망하는 한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