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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파랑 Feb 12. 2024

노란 미모사 한 다발과 Art de Vivre에 대하여

친구와 커피 한 잔을 마시러 가는 길이었다. 전 날 최종 면접을 봤던 곳에서 부정적인 답변을 들었고 그 소식을 들은 친구가 커피나 하자고 해서 평소 좋아하던 동네로 갔다. 울적한 마음에 빠져 있지 않기 위해 센 강을 끼고 30분 정도 자전거를 탔고 좋아하는 골목을 10분 정도 더 걸어 카페에 도착했다. 1월 19일이었다. 가는 길에 꽃집에서 올해 첫 미모사를 발견했다. 미모사는 칙칙한 파리의 1월과 2월을 밝히는 노란 꽃으로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를 함께 버텨주는 친구 같은 존재다. 그래서 미모사를 떠올리면 어딘가 애틋한 마음이 든다. 다양한 색깔의 꽃으로 뒤덮일 봄으로 넘어가기 전 온통 회색빛인 도시에서 과도기 같은 시기를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존재라 그럴 것이다. 늘 미모사를 한 다발 사서 화병에 꽂아두면 마치 노란 조명을 하나 더 산 것처럼 집 안이 환해졌고 한참을 그것에 기대 봄을 기다리곤 했다.


카페에 가서 친구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요새 어떤 글을 쓸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토로했다. 사실은 글을 쓰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고. 6년 전 프랑스에 처음 살기 시작할 때는 일상이 온통 영감으로 가득 찼다. 도시를 20분만 걸어도 쓰고 싶은 말이 넘쳐 났기 때문이다. 새로 친구를 사귈 때마다 느낀 생각과 경험의 차이는 내 세계를 야금야금 확장했고 그것은 또 다른 글감이 되었다. 그래서 여태까지는 내가 경험한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혹은 이런 인생도 있다는 것을 공유하고 싶다는 열정이 주로 글을 쓰는 이유가 되었다면 이 도시에 익숙해져 가는 동안 많은 것들이 더 이상 새롭지 않아졌고 더 이상은 대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권태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글을 아예 안 쓰기엔 정체성이 흔들리는 느낌이고 또 자발적 생산성은 유효기간이 끝났다는 게 최대의 딜레마였다.



이런 고민을 한참 듣고 있던 친구가 그냥 미모사에 대해 써보는 건 어때?라는 말을 툭 던졌고 집에 오는 길에 그것에 대해 한참 생각했다. 미모사에 대해 이야기하긴 너무 시시하지 않나… 의심을 하다가 그것을 조금 더 확장해 미모사처럼 일상을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에 대해 써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러다 떠오른 게 프랑스에서 흔한 Art de Vivre라는 표현이었다. Art는 영어와 동일하게 예술, Vivre는 살다는 의미의 동사로 직역하자면 산다는 것의 예술성이라는 의미다. 이 표현은 프랑스 문화 전체에 깊숙이 녹아 있으며 프랑스인의 삶의 태도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곳에 사는 내내 내가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어 직, 간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준 말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 말하는 삶의 예술성은 다음과 같다. 우아하게 옷 입기, 로컬 제품을 소비하기, 비판적인 시선을 갖기,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그 의견을 변호하기, 카페의 테라스에서 다양한 주제로 토론하기, 공공장소나 지하철에서 책 읽기, 좋은 와인을 마시며 파티하기,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 먹기. 이런 걸 바탕으로 삶을 좋아하는 나만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가장 힘들고 음울한 시기에 인생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들에 대한 글을 쓰다니 모순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오히려 이 브런치를 연재하며 인생의 기쁨과 즐거움을 탐색해 볼 수도 있겠다는 것이 이상한 희망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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