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그렇다고 걱정은 마.

나는 잘 지내니까, 다만 써야만 했던 얘기가 있었을 뿐이야. 가을이잖아.

by 봄의파랑

가끔 꿈을 꾼다. 타지에서 혼자 살면서 꾸는 꿈은 치명적일 때가 많다. 당장 볼 수 없는 사람들이 꿈에 나오면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끔찍하게 외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꼭 그 꿈속의 내가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다는 게 나를 슬프게 한다. 눈을 뜨면 산산이 흩어질 조각들이 쓸려가고 나면 마지막까지 남는 건 허전한 마음뿐이다. 며칠 전에는 끝났다고 생각한 관계도 상당히 멀쩡하고, 심지어는 온전한 형태로 꿈에 나왔고 꿈에서 깼을 때는 현실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정리되지 않은 채 마음 한 구석에 던져버린 마음도 결국에는 꿈이 되어버리고 마는 건지.

잘 지내고 있다. 너무 바빠서 딴생각을 할 틈도 없이. 눈 앞에 닥치는 일을 하나하나 해결하고 나면 무언가를 생각하기엔 너무 늦어버린 시각, 하루는 이미 끝에 닿아 있다. 생존 본능은 어서 푹 자라하고 나는 매번 살기 위해 잠에 들고, 살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운동을 한다. 너무 효율적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그 질서를 헝크러트리고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말들을 잔뜩 내뱉고 싶어 진다. 울 것 같은 기분이 들고, 한창을 그러고 있다 보면 응어리졌던 마음도 깔끔하게 덜어내 진다. 그래서 이 글은 쓸데없는 숨을 쉬어보기 위한 약간의 발악.

27CB4150-D67E-4FEA-881C-D9CD4D9F04FB.JPG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에게는 두 가지 층위의 서로 다른 내가 있다. 하나는 사교적이고 명랑하고 밝은 나.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고, 일에 욕심이 있고 주어진 일들을 야무지게 해 나가는 나. 첫 번째 자아는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산다. 다른 하나는 나약하고 예민하고, 감정적인 나. 조용히 혼자 심연으로 파고 들어가는 걸 좋아하고 날씨와 공기 같은 사소한 자극에도 마음이 들쑥날쑥하는 나. 두 번째 자아는 글쎄, 뭘 하고 싶어 하지? 마음 가는 대로 글 쓰기?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그 자아는 목적의식조차 뚜렷하지 않지만, 그래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그리고 아마 나는 이 위태로운 자아도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날 첫 번째 자아에 가까운 모습으로 생각하지만 두 번째 자아도 있음을 알아달라고 소리치고 싶은 기분을 종종 느끼기 때문이다.

결국 그 둘이 모두 있어야 비로소 나 자신이 완성된다. 그래서 일상이 어느 한쪽으로 쏠려간다 싶으면 다른 쪽에 대한 갈망이 강해진다. 그러니까 프랑스 경영학교에서 석사 첫 학기를 보내고 있는 나는(첫 번째 자아가 과로하는 요즘) 두 번째 자아를 잃을까 두려웠고 정작 쓰려고 준비 중이었지만 시작할 엄두를 못 내던 학교 생활의 많은 이야기들을 제쳐둔 채 마음 가는 대로 글을 써버리고 만다. 좀 더 솔직하게는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각보다 커져서 쓸 수밖에 없었다. 그건 좀 가련한 얘기긴 한데.

D0B3C6E7-E489-4F42-9947-73A6CAFE00A6-77653E7D-22FC-460C-8E39-87CF5D61662C.JPG

오늘은 하루 종일 집에 있었는데 대뜸 이메일 알람이 울렸다. 지난 학기, 내가 정말 좋아했지만 학교가 폐쇄되는 바람에 온라인으로 더 많이 만날 수밖에 없었던 프랑스어 교수님이었다. 학기는 잘 시작했는지, 공부는 어떤지, 내 소식을 듣고 싶어서 메일을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메일을 단숨에 읽고 쌓여있던 근황을 주절주절 떠들어가며 답장을 보냈다. 마치 키다리 아저씨한테 편지를 쓰는 주디가 된 기분으로.

바야흐로, 가을이다. 때론 멋스러운 문장을 쓰고 싶어 진다. 알베르 까뮈는 이런 문장을 남겼다. « 가을은 두 번째 봄이다. 나뭇잎 하나하나가 꽃인 계절. L'automne est un deuxième printemps où chaque feuille est une fleur. » 이런 나도 사랑해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 몸은 힘들어도 살아있는 기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