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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May 10. 2024

7. 망각하라.

잊어야 할 일은 빨리 잊어라.

망각하라. 이것은 기술이라기보다 운의 문제에 가깝다. 우리는 잊어야 할 것을 가장 잘 기억하고, 기억해야 할 것은 잘 잊는다. 기억이란 제멋대로여서 가장 필요할 때는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기억은 어리석어서 원하지 않는 곳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고통스러운 일을 떠올릴 때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만, 즐거운 일을 회상하려 하면 게으름을 피운다. 나쁜 일을 당했을 때 필요한 치료제는 그 사건을 잊는 것이다. 좋은 기억을 떠올리는 습관도 꼭 필요하다. 기억은 사람을 천국으로도, 지옥으로도 데려다주기 때문이다. 단, 단순한 일에도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은 굳이 망각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책 '아주 세속적인 지혜' 중에서-


지난주에 ‘경찰서에서 생긴 일’ 글을 쓰고 나서 괜찮을 줄 알았다. 홀가분함의 비슷한 감정이라도, 무거운 짐 잠깐 내려놓는 기분정도는 느껴질 줄 알았다. 그러나 난 그 후, 무기력했고 우울했다. 그 기억이 다시 올라와 나를 갉아먹는 듯했다. 부분 부분의 기억이 다시 조각을 맞춰 그때 그 당시로 돌아가게 했다. 떠올리기 싫은 장면들이 눈앞에 그려지고 그게 싫어 눈을 감으면 머릿속에 가득 그려졌다. 이불도 이리저리 킥해보고 머리를 흔들어 그 그림들을 빼려는데 소용없었다. 하... 뭔가 실수한 것 같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걸어가고 있는데 내 바로 앞에서 한 아주머니가 차를 빼고 계셨다. 그런데 5초 만에 내리시더니 옆 차와 자신의 차를 번갈아가며 이리저리 살펴보시더니 "아 난 몰라~" 하시며 옆 차의 차주에게 전화를 거는 모습에서 하필 내가 경찰서에서 경찰차를 박은 일이 떠올랐다니... 진짜 운도 없다.


사실 내 치아에 붙어있는 이 교정기도 그때 그 느낌, 그 기억을 가끔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 그 시절 내 조카들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때 내 마음이 더욱 고스란히 느껴진다. 조카사랑이 넘치는 이모인지라 조카들이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을 책상에 두고 우울해질 때마다 보곤 했었다.


그런데 아... 날씨까지 안 도와준다. 3일 내내 비라니, 날씨의 영향을 받는 나에겐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연휴 동안 부모님 댁에 머물렀다. 부모님 모시고 여기저기 다니기도 했고, 비가 주룩주룩 오는데도 전망 좋은 카페, 예쁜 레스토랑에 가서 기분도 전환시켜 보았다. 그런데 뭘 해도 안되더라.

얼굴은 웃고 있지만 내 마음이 정말이지... 죽을 맛이다.


사방팔방에 그 기억을 상기시켜 주는 것 천지라고 생각했으나 난 어쩌면 고통스러운 일을 기억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을지도...


책을 폈다. 요즘 읽고 있는 '아주 세속적인 지혜'

세속적이라는 말이 자극적이긴 해도 막상 내용은 그렇게 자극적이지 않으며 귀담아들을 내용이 꽤 있다. 이 책이 내 마음을 알았던 건지 아니면 내 마음이 이런 상태라 저 부분이 확대되어 눈과 마음에 들어온 건지 모르겠으나 지금 나에게 너무 필요한 얘기였다.


나쁜 일을 당했을 때 필요한 치료제는 그 사건을 잊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거라고, 나쁜 기억은 잊으라고,

난 용서할 준비도, 기회도 갖지 못했는데 잊으라니, 너무 불공평하잖아 이건. 그런데 잡고 있을수록 내가 너무 힘들어서 내가 죽겠어서 놓아야겠다 싶다가도, 남들은 잊어버려도 나까지 잊어버리면 이 일이 없던 일처럼 될까 봐 억울해서 다시 부여잡기도 한다. 병이 낫기 위해서는 치료제가 시기적절하게 쓰여야 효과가 좋은 법인데 난 늦은 건지 이른 건지 내 병에는 아직 효과가 없다.


단, 단순한 일에도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은 굳이 망각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간 꽤 잘 살았었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다시 흑화 되어버린 지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덩어리들이 앞으로 살아갈 날까지 뿌옇게 만드는 걸 막아야겠다.

단순함이 필요하다. 행복까진 못 찾더라도 생각을 단순화해 보자. 단순해져야겠다. 정말.

드디어 날씨가 좋아졌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비 온 뒤라 너무 맑고 푸르고 예뻤다.

내 인생도, 비 온 뒤에 더러운 먼지 다 씻겨나가 맑고 푸르고 예뻐진 하늘처럼, 그렇게 예뻐질 거야.

즐거운 일 떠올리는데 게을러지지 마. 행복했던 순간도 많았잖아 너. 그게 널 일으켜줄 거야.

그래도 정 안되면,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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