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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Apr 26. 2024

5. 파혼의 아픔을 더한 고통으로 잠시 잊었다.

아픔은 더 극한 아픔으로 잊어야 돼. 메롱 아랫니가 그걸 해냈다.

파혼의 후폭풍은 생각보다 강했다.

일단은 재정적인 부분을 일사천리로 해결해야 했다.

모든 업체에 전화를 돌려

"제가 결혼이 취소되어서요.

위약금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려주세요."

라는 말을 오전 내 앵무새처럼 해댔다. 처리하던 중 난 모든 계약이 '내 이름'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계약금과 완납 역시 내가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애당초 나랑 결혼할 생각이 없었을 테고, 막판에 깔끔하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로 도망가야 했었을 테니까. 신혼여행 가겠다고 샀던 비행기티켓은 다행히 내 것만 취소하면 됐다. 그것 역시 내 것만 샀었으니까... 난 대체 왜 그랬을까? 나에게 그는 존재했으나 허상이었고 이 세상에 여전히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고 있다. 법으로도 처리할 수 없었던 그를, 그때를 생각하니 속이 갑자기 또 울렁거린다...


그렇게 오전 내 전화를 돌리면서 일도 해야 했다. 일이 너무 하기 싫었는데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날 감싸고 있던 무거운 공기가 잠시나마 걷힌 기분이 들었다. 역시 노동은 인간의 삶에서 고통이기도 하지만 필수적이다. 그렇게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나니 어느새 어둑한 밤이 되었고 무거운 공기가 날 다시 감쌌다. 실감이 안 났던 건지 아니면 애써 현실을 부정하고 회피하려고 했던 건지 그때의 내 마음을 난 아직도 모르겠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플래너와 통화하면서 울었던 게 다였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노트북을 켜고 난 오늘 한 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언니가 퇴근하고 우리 집에 들렀다.


우리 언니, 우린 어릴 때 정말 무섭게 싸우면서 컸다. 성향과 기질이 너무 다른 우리는 잘 놀다가도 금세 으르렁대며 남자들 못지않게 치고받고 싸웠다. 그러나 내 키가 언니를 넘어설 무렵 힘도 더 세지면서 언니는 그제야 날 위협적인 존재로 느끼기 시작했고 우리의 몸싸움은 비로소 멈추게 되었다. 그런 싸움이 있었기에 우린 서로를 어느 정도 잘 파악하고 있고 그것이 기반이 되어 지금은 누구보다 끈끈한 우애를 보이는 둘도 없는 친구 같은 자매가 되었다.


언니는 이 결혼을 계속 반대해 왔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결국 일이 이렇게 터지고 말았다. 그러나 언닌 지금까지 한 번도 "왜 그랬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언닌 터진 일을 수습하고 정리하고 내가 다른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조카들을 내세워 평일엔 영상통화를, 휴일엔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빡세게 굴렸다. 그리고 바로 이 것. 내게 ‘교정’을 제안했다.


퇴근하고 온 언니는 배고프다고 배달음식 하나 시켜 먹자며 뭐 먹고 싶은지 물어보기도 전에 자기 먹고 싶은 걸 주문했다. 그리고 가벼운 수다 뒤에 무겁게 꺼낸 한마디,


“… 오늘 고생했어."


그 한마디에 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아마 그날 내가 눈물을 꾹 참고 있었나 보다. 엄마가 그때 옆에 없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 우는 걸 봤다면 아마 엄마도 무너졌으리라... 무뚝뚝한 아빠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 채 내 옆에 묵묵히 계셨는데 내가 우는 걸 보시며 그저 등만 토닥토닥 두드려주셨다. 언니는 애써 눈물을 참으려고 했다. 언니 목소리가 많이 떨리는 걸 듣고 알 수 있었다.


"그래 울어. 너 울고 싶을 때까지 계속 울고 털어내자."

그리고 한참 후 덧붙여하는 말,


"교정하자. 니 아랫니가 자꾸 보이는 게 교정하라는 뜻인가 보다. “


'뭐라고? 내 아랫니가 보인다고?' 어이가 없다가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린 그렇게 같이 웃어버렸다.


내 아랫니,

그렇다. 난 가운데 아랫니 하나가 매년 쑥쑥 자라는 성장기에 있는 아이처럼 매년 앞으로 쑥쑥 튀어나오고 있었다. 아랫니라 내가 일부러 보여주지 않는 한 다른 사람들에게 잘 안 보여서 내가 교정하고 싶다고 하면 모두,

"에이~ 니가 무슨 교정이야~ 그 정도면 안 해도 돼~"

라며 고생하지 말고 그냥 생긴 대로 살라고 했다. 그러나 내 메롱하고 있는 아랫니를 보여주면 정말 열이면 열.

"어머!!!" 이 반응. 교정을 하긴 해야 했다.


언니가 말하는 그 아랫니가 바로 이것이고 내가 고개를 숙이며 입 벌리고 엉엉 울고 있는 모습에서 하필 이 아랫니가 또렷하게 보였단다. 그 와중에 이 아랫니가 언니 눈에 들어온 게 아무래도 정말 교정하라는 계시인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소름 돋는 건 엄마랑 언니랑 서로 의견을 나눈 것도 아닌데 엄마도 그 다음날 나에게 조심스럽게 제안을 하셨다.

"아랫니 그거 교정해 보는 건 어때?"


이런 한마음 한뜻이 또 있을까? 이건 정말 해야 하는 것이었다. 언니와 엄마는 내 신경과 마음을 이렇게라도 다른 곳에 두길 원했으리라... 나도 그 기대로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교정이 시작되었다. 사실 이 아랫니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점점 앞으로 나오다 보니 양 옆의 이가 서로 사이좋게 붙어버려 정말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 아랫니와 토끼 같은 앞니 때문에 난 늘 교정이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매년 곧 결혼할 것만 같은 나의 비루한 촉때문에 교정을 매번 미루었고 그게 이 지경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어버리니 내 생애엔 당분간 결혼의 '결'도 없을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바로 내 치아 위아래에 철도를 깔았다.


교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웠다. 장치를 붙이고 그 장치가 내 입안을 다 찢어놓으니 이건 물도 못 마시는 고통이었다. 겨우 진정이 되니 와이어의 쉴 틈 없는 조임 공격이 정말 어마어마해서 라면의 그 부드러운 면발도 다 가위로 잘라먹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4kg이 훅 빠져버려 본의 아니게 다이어트에 성공을 했고, 거울을 보면 '내 입에 장치'가 잘 붙어있나 '메롱 아랫니'가 어떻게 좀 잘 들어가고 있나 확인하기 바빴으며, 매일 교정 통증으로 파혼의 아픔을 느낄 ‘여유’가 없다는 장점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장점은 아니지만 먹방을 보면 체기를 느끼던 내가 매일 쯔양의 콘텐츠를 보며 대리만족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게 시작한 교정이 벌써 1년 9개월째이다.

그간 4개의 멀쩡한 치아를 뽑았고, 잇몸에 4개의 스크루를 박았다. 그 스크루는 오늘도 내 잇몸을 마구 찢어놓고 있다... 정말 삶의 질이 떨어지는 기분이다.

난 2년 반이면 끝나겠지? 기대를 하며 원장님께 물었다.

"저 올해는 끝나겠죠?"

"음... 왜 그렇게 생각해요?"

"올해 마지막 달이 2년 반 되는데... 아니에요?"

"뭐 지금까지는 잘 진행되고 있는데 올해는 안 끝날 건데... 내년 초까지는 할거 같은데..."

"안돼요... 진짜 삶의 질이 떨어지는 거 같아요."

"에이 뭐 그렇게까지. 무슨 교정으로 삶의 질까지 떨어지나 허허."

“원장님은 교정 안 해보셨잖아요.”라고 내 마음이 말하는 줄 알았는데 그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어진 우리의 어색한 웃음…


원장님은 내가 교정시작할 때 그러셨다.

"40이 되면 사람도 말 잘 안 듣잖아요. 치아도 그렇다?"

라는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내게 하셨었다.

"2년 반 정도면 되지 않을까? 근데 40대는 보통 2년 반은 넘더라고. 허허"

라며 또 웃기지도 않은 농담 같은 사실을 말씀하셨다.

'전 39세라고요. 40대가 아니라고요'라고 내 마음이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난 30대에 시작한 교정을 40대까지 하고 있다.

언니는 내가 교정통증이 너무 심할 때나 정기치료 후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올 때마다 피겨여왕 김연아의 교정 전후 사진을 보여준다.

"힘내라. 이뻐질지어다!" 메시지와 함께.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사진은 정말 나에게 힘을 준다는 것.


교정이 끝나는 날,

내 모든 아픔도 끝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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