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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May 03. 2024

6. 경찰서에서 생긴 일

경찰차도 박아보고, 고소인 조사도 받아보고, 별일이다 참.

교정장치를 이제 막 다 붙이고 매일 시름시름 앓고 있던 중에도 매일 밀물같이 몰려들었던 그 사람과 관련된 일들.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그리고 아무 질문도 분노도 할 수 없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라는 게 고작,

"경찰에 신고하던가." 라니...

응 알았어. 신고할게. 그래서 난 경찰에 신고했다.


살면서 누군가를 경찰에 신고해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방법 또한 전혀 몰랐기에 일단 경찰에 전화해서 내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만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왜 '경찰'이라는 단어는 나같은 선량한(?) 시민에게도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문의만 했을 뿐인데도 내 심장은 벌렁벌렁 뛰더니 그 소리가 내 귀에도 들렸다. 그러나 민원실 직원은 너무나 친절하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차분히 설명해 주셨는데 일단 내가 당한 일을 자세히 적어가서 그걸 토대로 고소가 가능한 사건인지 아닌지를 상담부터 받아보라고 하셨다. 난 하나씩 하나씩 적어가기 시작했다. 쓰다 보니,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울분이 또 차올랐다.


그렇게 적어간 내용이 3장이나 되었다. 경찰서에는 언니가 같이 가주었다. 혹시라도 무시당할까 봐, 기죽을까 봐 자격지심에 똘똘 뭉쳐 겉으로라도 세 보이고 싶어서 검은색 원피스에 킬힐을 신고 경찰서에 방문했다. 그런데 그 같은 생각을 언니도 했다니, 검은색 원피스에 풀메까지 하고 온 언니를 보니 역시 우린 자매인가 보다 생각했다.


경찰서 안에 진입하자 다시 심장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그 아침부터 주차장은 빼곡했고 내 차 하나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그렇게 뱅뱅 돌다가 후진을 하려는데

"쿵쿵쿠우쿵~ 드르르르 ~~언니 어떡해~!!!!!!!!!!!!!!!!!!!!"

아주 막 나온 반짝반짝한 스타렉스의 범퍼를 아주 보기 좋게 박고 쭉 긁었다. 가만히 서있던 차를 내가 가서 박았으니 미칠 노릇이다 정말. 나같은 베스트 드라이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하다니, 정신이 반 나가 있었던 게 분명했다. 난 도망갈 생각도 없었는데 언니는 옆에서,

"야 너 도망가면 '뺑소니'고 여긴 '경찰서'고 넌 '현행범'이 되고 블라블라..."

언니는 저런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면서 "괜찮아 괜찮아"하며 진정시키려 했고 내 앞에서 티 안 내려고 했지만 나 만큼이나 긴장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어쨌든 나는 차주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휴대폰에 내 번호를 남겨놨으니 최소한 '뺑소니'는 아니다 생각하고 일단 경찰서에 들어갔다.


민원실에 들어가니 나이가 좀 있으신 차가운 느낌의 경찰관 한 분이 앉아계셨다. 내가 적어온 것들을 보자고 하셨고, 빼곡한 글씨의 3장을 건네면서 너무 주저리주저리 쓴 건 아닐까, 읽다가 짜증 날 거 같은데 어쩌나, 뭐 이런 걸로 고소를 하냐 하는 건 아닐까,  혼자 오만 생각을 다 하면서 그 앞에 앉아 언니랑 손잡고 침만 꼴깍꼴깍 삼키고 있었다. 그분은 읽으시면서 형광펜으로 긋기도 하시고, 펜으로 뭐라고 적기도 하시고 한참을 보시더니 고소 가능하다고 하셨다. 거짓말로 인해 내가 금전적인 피해를 입은 부분은 법적 처벌이 가능하다고 하시며 모든 자료를 첨부해서 고소장을 작성해 보라고 하셨다. 날 기만하고 내 마음을 찢어놓은 건 법적 처벌이 안되지만 내 돈을 가져간 건 법적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이구나.


난 상담을 다 마치고 나오기 전에, 주차하다 차를 박은 얘기를 전달하며 차주가 전화를 받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해성사를 했다. 그랬더니 그분은 혹시 어디에 서있던 스타렉스인지를 물어보더니,

"아~ 그거 우리 이번에 새로 뽑은 찬데, 아이고... 하필 그걸 박으셨네. 허허. 지금 출동 나가서 전화 못 받을 거예요. 일단 연락처 주고 가세요. 뭐... 부서져서 떨어진 것만 아니면 뭐 보험처리 알아서 할 거예요. 걱정 마시고 연락드릴게요."

내가 수많은 차 중에 하필 경찰차를 박았구나. 다행히 보험처리에 매우 '쿨한' 경찰차를 박은건 행운이었던 건가. 경찰서에서는 나의 과실에 대한 보험처리 연락을 하지 않았다. 감사했다.


고소장이라는 걸 태어나서 처음으로 써보았다. 시간 순서대로 모든 일을 정리했고, 그 사건에 맞는 모든 자료들을 첨부했고, 법적 증거로 효력이 있을 만한 것들은 모두 다 갖다 붙였다. 퇴근 후 노트북을 켜고 쓰기 시작했고 다 쓰고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반이 되었다. 집중력 하나는 끝내주는 것 같다. 나중에 그 고소장을 본 경찰관은 너무 잘 써서 따로 보완할게 거의 없다고 칭찬 아닌 칭찬을 해주었다. 대체 왜 난 이것에 뿌듯함을 느꼈던 것일까.


다 작성된 고소장은 관할 경찰서로 접수가 되었고 고소인 조사를 위해 참석해 달라고 연락을 받았다.

아 그게 드라마에서나 봤던 경찰은 컴퓨터 앞에 앉아 내 말을 하나하나 타이핑하고 나는 그 앞에서 질문에 대답하고 그런 거 하는구나 싶었다. 심장이 또 벌렁대기 시작했다. 내가 이런 일을 지금 왜 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무엇을 어디서부터 잘못했을까, 자책과 원망이 뒤섞여 나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었다.


이번에는 부모님이 함께 가 주셨다. 아 이 무슨 불효가 다 있냐... 대체 이게 무슨 불효냐... 죽고 싶었다.

담당 경찰관은 매우 젊은 분이었다. 난 사실 젊은 분이길 바랐었다. 그럼 뭔가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난 모든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고소장 쓸 때는 안 나던 기억도 그곳에 가니 거짓말처럼 선명하게 떠올랐고 대답을 더 잘할 수 있었다.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들에 나조차도 어이가 없어 나도 모르게 그만,


제가요... 진짜.... 멍청했고....
한심했고.... 바보였어요…


하며 꾹 억누르고 있었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엄마는 옆에서 강하게 버텨주셨으나 내 등을 쓸어 담으며 눈물을 훔치셨다. 그런 우리 모녀를 보며 그분은 말씀하셨다.


"저는 너무 속상할 때가요, 나쁜 짓은 가해자가 다 했는데 피해자분들이 자책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정말 마음이 아파요. 진짜 그러지 마세요. 자책하지 마세요. 이 사람이 나쁜 거예요."


그 말 한마디가 정말 그간 겪었던 고통에 큰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내가 정말 바보였다는 자책은 없어지지 않는다.


후에 경찰은 그의 부모를 만났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내 존재를 모르고 있다고 했다.

당연했다. 내가 만났던 그의 부모라는 사람들이 그가 고용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도

'교정장치를 이제 막 다 붙이고 매일 시름시름 앓고 있던 중에도 매일 밀물같이 몰려들었던 그 사람과 관련된 일들' 중 하나였으니까 말이다.

그의 가짜 부모는 내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며 내가 정성스레 준비해 간 선물들을 웃으며 가져갔었고

그의 진짜 부모는 자신의 아들이 이렇게 한 여자의 인생을 쑥대밭 만들어 놨다는데 사과도, 연락도 없었다.


2022년 8월 그 뜨거운 여름

내 인생은 화재가 난 것처럼 뜨겁다 못해 다 타버렸지만

늘 그렇듯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렀고

잿더미도 그 시간에 따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2023년 2월 그 추운 겨울,

관할 경찰서로부터 차가운 우편물 하나를 받았다.


[주요 내용]

피의자 소재발견 시까지 수사중지(피의자중지-지명통보) 결정하였음을 안내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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