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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Apr 12. 2024

3. 도배사가 도망갔다

도배부터가 어려웠던 집, 그 집이 내가 사는 집.

도배 업체를 선정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숨고를 이용했고 견적을 받은 후 고객들의 후기와 가격을 비교하여 제일 합리적이고 괜찮아 보이는 업체를 선정하고 난 그저 기본 중의 기본인 벽지를 선택하면 끝. 그다음부턴 내가 할 일은 없다. 이게 맞는 것이다.

업체는 사전 미팅을 위해 내가 있는 곳까지 벽지 샘플을 들고 와준다고 했다. 친절했고 야무진 느낌이었다.

그러나 샘플벽지를 들고 오신 분은 내가 질문하지 않는 한 절대 먼저 말을 하는 법이 없었고

드릴 게 없어 요구르트를 드렸는데 요구르트를 집어 든 팔에 가득한 문신으로 연내 나를 졸게 만드셨다.

그러나 뭐, 일만 잘하면 된다. 무뚝뚝하셨지만 일은 잘하실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때 난,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내 느낌은 늘 반대로 가는 걸 망각하지 말았어야 했다.


도배 날, 나는 부모님 집에서 새벽같이 일어나 내가 이사 갈 집으로 향했다.

약속 10분 전에 도착한 나는 다시 한번 집을 들여다보며 한숨이 나왔지만 도배하고 나면 예뻐질 거야라고

나 스스로에게 내내 주문을 걸었다.

그렇게 30분이 지났다. 그들은 오지 않았다.  

얼마 후 차가 너무 막혀 늦을 거 같아 죄송하다며 정말 하나도 죄송해하지 않는 느낌 가득한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난 바로 알았다. 늦잠 잔 목소리였다.

그래, 일만 잘하면 돼. 오늘 저녁에 와보면 이 집은 조금은 예뻐져 있을 거야.

나는 교회를 가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비밀번호를 알려드리고 집을 나왔다.


그렇게 3시간 여 지났을 때 전화를 받았다.

"고객님, 아무래도 도배가 어려울 거 같은데요... 이게 벽지를 뜯어내는데 천장이 같이 떨어져서..."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사진을 좀 보여주시겠어요?"

사진을 보면서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어쨌든 도배업체는 오늘 불가능하다며 철수했다.

교회 일정이 빠듯하다 보니 가보지도 못해 마음이 답답했고, 천장을 수리해야만 도배를 할 수 있다고 하니 서둘러 천장 수리업체를 알아보았다. 거의 모든 업체로부터 견적이 얼마 안 되는 작업이니 동네에서 알아보라는 거절의 답변을 듣게 되었고, 집을 다 뜯어낼 견적을 내밀며 수락한 곳에게도 난 그저 세입자 나부랭이일 뿐이라고 하니 다시 거절의 답변을 듣게 되었다. 수많은 통화 끝에 다행히도 바로 다음날 해줄 수 있다는 정말 좋은 인테리어업체 사장님을 만날 수 있었다. 견적을 냈고 자, 이제 집주인과 상의를 할 차례이다.


나의 기도제목 3번, 시원시원한 집주인.

우린 계약하는 날 처음 만났다. 아주 고우시고 상냥한 50대 아주머니셨다.

우린 임대인, 임차인으로서 서로를 마음에 들어 하며 분위기가 참 좋았다.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기분 좋은 소개팅처럼 말이다.

그러나 집수리 문제를 상의하는 동안에 그때의 느낌은 사라져 갔다.

돈이다. 세상은 돈이 원수가 되는 일이 참 많다.

일요일이라 업체를 알아보기도 힘들었는데 가격이 좀 비싼 거 같다며 더 알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더니 급기야는 혹시 이거 도배 업체의 과실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마음이 답답해져 왔다. 천장을 수리해야 도배를 하고 도배를 해야 짐을 들여놓는 임차인의 계획이라는 것이 있는데 말이다. 그러면 직접 알아보시겠냐고 하니 손사래 치시며 그건 또 아니라고 하시고 이 업체가 내가 알아본 최저가였다고 하니 마지못한 목소리로 그럼 진행하라고 하셨다.

수리가 다 끝난 후 또다시 사장님과 가격조정을 시도하는 거 보니, 시원시원한 성격은 아니었던 걸로...


그날 저녁에 집을 가보았다.

거실 한가운데에 구겨져 있는 종이영수증, 배달의민족 중국집, 많이도 먹었다 참.

2-3시간 늦게 와서 천장 하나 뜯어보고 심란해지니 "아~ 날도 더운데 오늘 접자!" 했을 것이고,

그래도 배가 고프니 점심은 먹고 가겠다고 "짜장면 시켜" 했을 것이고,

배달시켰으면 깔끔하게 먹고 나갈 것이지 그 영수증을, 그것도 구겨서 바닥에 버리고 “야 가자!” 했을 그 사람들을 생각하니 난 정말 어지간히도 사람 보는 눈이 없구나 싶었다.

그래도 이미 계약금을 다 낸 상태라 다시 도배 날짜를 잡기 위해 이 악물고 그들에게 전화했다.

"아... 저희가 예약이 꽉 차서요. 2주 뒤에나 가능할 것 같은데요."

‘예약 꽉 찬 거 거짓말이지? 그냥 하기 싫은 거지?’ 내 마음이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2주 뒤에도 또 미루었다. 작업 중 사다리에서 떨어져 팔을 다쳐 응급실에 가야 한다는 이유였다.

‘사다리는 높지 않던데... 팔에 금이 갔다고? 아닐걸. 그건 혹시 당신의 육중한 몸매 때문은 아니었을까?’ 내 마음이 모든 걸 부정했다. 사람이 다쳤다고 하니 뭐라 할 수도 없고 잘 치료받으시라는 말과 함께 그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우리집 구석구석을 뜯어놓고 전등은 다 분해하고 수많은 벽지와 그 문제의 사다리를 던져놓은 채… 그렇게 도망갔다.

며칠 뒤 복도에 두면 나중에 찾아가겠다는 문자를 받았고 난 낑낑대고 그것들을 복도에 옮겨 놓았다.

호구가 된 기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부동산 사장님의 소개로 도망간 그들의 견적보다 돈을 훨씬 더 주고 도배를 할 수 있었고, 우리 집을 도배해 주신 사장님은 그들에 대한 나의 설명을 들으시더니 아무래도 나와의 초반 견적보다 더 힘든 작업이 예상되니 도망간 거 같다고 하셨다.

아무래도 도망간 거 같다는 내 예상이 맞았다. 차라리 돈을 더 달라고 하면 될 것을 그들은 그럴 배짱도 없었던 건지 아니면 그저 싼 게 비지떡이었던 건지 아님 둘 다였던 건지 다 모르겠다. 뭐가 진실인지.

어쨌든 이 집은, 도배부터가 갑갑한 집이었던 건 진실이었다.


난,

가구, 가전 등 모든 배송 날짜를 미루는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난,

집에 언제 들어가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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