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무엇을 바랐던 걸까
나는 결혼할 나이가 훌쩍 지났고 매년 친구들이 하나 둘 떠나가고 있었다. 약속이나 한 듯 그렇게 매년 행복하게(일단은 그렇게 보였다) 가는 친구들을 보고 있으니 나의 이성은 흔들렸고 분별력 또한 사라졌다.
그 위험했던 순간,
그때 내 옆에 있었던 사람은 나에게 참 헌신적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다는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순정파였다.
그래, 결혼해 보자. 나도 한번 가보자.
이런 남자라면 살아볼 만하겠다 싶었고
가진 것 하나 없는 사람이었으나 그 사람의 잠재력을 보았기에(어쩌면 믿고 싶었기에) 굶어 죽진 않겠다 싶었다.
그러나 내 바람은 늘 그렇듯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나의 첫 결혼준비는 뉴스에서나 나올법한 기괴한 일로 인해 결혼 2달 전에 파투 났다.
순정파 헌신남이 아닌, 잠재력 또한 하나 없는
천하의 썅개새끼였다.
믿음 뒤에 따라온 배신은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놨고
마음만 찢어놓지... 돈도 잃었다. 아주 많이...
다행이다. 내가 끝냈다.
차갑고 냉정하게 하루 만에 싹 다 정리했다.
모든 곳에 전화를 돌려 취소하고 위약금 정리를 해냈다.
드레스샵과는 심지어 싸웠다.
이것들이 2차 가해야 뭐야. 약관에도 없던 내용으로 나에게 위약금 덤터기를 씌우려 했다.
난 그 와중에도 홈페이지에 쓰여있는 계약내용을 꼼꼼하게 체크했고 (꼭 이런 건 개미똥구멍만 하게 쓴다) 따졌다. 그들은 죄송하다며 담당자가 바뀌어서 그랬다는 개소리를 해댔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플래너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플래너도 나와 함께 아파해주었다.
그 개새끼를 잡아서 죗값을 치르게 하고 싶은데 잡을 수가 없었고 잡자니 의미 없었다.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 없기에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는 것이 내 마음을 더 갉아먹고 있어 그냥 묻어두기로 했다.
그러나 불쑥불쑥 올라오는 분노는 거의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육두문자와 함께 내 입에서 터져 나온다.
이 감정을 언제까지 갖고 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애써 잊으려고 노력은 하지 않는다.
그 일 후로, 약 1년 동안 쥐 죽은 듯이 살아왔다.
그러다 내 인생 첫 독립을 하게 되었다.
난 어쩌면 엄대장님의 제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내 눈앞엔 더 험난한 산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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