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 Apr 05. 2024

2. 독립

반쪽짜리 독립, 짠내 나는 독립, 그렇지만 날 조금은 크게 해 준 독립

나에게 독립이란

사랑하는 남자와 아름다운 결실을 맺어 가족들의 축복 속에서 부모님과 헤어져 예쁜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결혼해서 나가는 것.

그런데 그 꿈은 27살부터 37살까지 10년 동안 이루어지지 않았고 37살에 만난 남자와 드디어 결실을 맺나 싶었으나 뒤통수를 세게 가격 당한 뒤 40살에 혼자 처절하게 나오는 그림이 되었다.

원래 인생이란 자신의 바람과는 정반대가 되어야 제 맛인 건가. 대체로 그래왔다.

신혼집을 알아볼 때와는 사뭇 다른 감정으로 부동산에 갔다. 그래도 나의 첫 집인데 어디 한번 잘 보자.


나의 기도제목은,

1. 가격 착한 좋은 동네, 세대수 많고 주변에 학교가 많을 것.

2. 마음씨 좋은 부동산 사장님

3. 시원시원한 집주인

4. 동정심 많은 은행원

이 4가지가 전부였다. 아 하나를 더 넣을걸…

‘올수리 된 집’


하나님은 내가 바라는 딱 4가지를 모두 허락하셨고 차마 생각지도 못했던 마지막 하나, 수리가 거의 안된 집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은 정확하셨다.

세입자가 살고 있는 동안 집을 보았을 때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 살림이 너무 많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제대로 막 이곳저곳 보는 게 되게 실례 같았다.)

무엇보다 이 집의 가격이 다른 곳에 비해 낮았기 때문에 아마도 내 눈엔 다 좋아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아파트는 30년 전 언덕 최상단에 지어진, 칼바람과 강렬한 햇빛 그리고 비와 눈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창 하나 없는 날 것 그 자체의 복도식 구조이자, 지하주차장은 고사하고 주차공간 부족으로 인해 이중주차는 물론 그를 넘어선 난해한 주차가 즐비해 갑갑함을 주면서도,

일주일에 한 번은 장이 서 아파트 주민들을 한자리에서 많이 만날 수 있는 정 많고 구수한 느낌 가득한 그런 아파트였다.

그에 반해 우리 주변은 이제 막 들어선 브랜드 아파트들이 줄지어 멋진 조경과 밤에 피어나는 예쁜 조명들로 그들의 세련됨을 더욱 내세우고 있다 보니, 같은 동네 다른 느낌,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느낌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이사한 후 한참이 지나서야 나의 집에 첫 방문 한 어린 조카는

"이모! 나 이런 아파트 진짜 와보고 싶었어!"

이 말을 들으니 조카가 나의 첫 집을 맘에 들어하는 거 같아 내심 뿌듯했다.

"그.. '안녕 자두야' 만화에 나오는 아파트가 이렇게 생겼는데 만화에서만 봤거든! 오 신기해!"

('안녕 자두야'는 1997년 처음 연재되었던 만화이다.)

이건 무조건 내 집에게 보내는 찬사라고 생각하며,

우리 조카의 작은 소원 풀이를 해준 뿌듯함만 남기고 복잡 미묘한 감정을 끝냈다.



'그래. 내가 돈이 풍족했다면 저 아파트 저 집으로 갔겠지...'

'그래. 이 정도면 첫 집으로 너무 훌륭하다! 감사한 마음품고 잘 살아보자!' 하고 바로 가계약을 해버렸다.


첫 독립은 스스로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마저 있던 돈까지 잃었던 터라

이 나이에 가족과 은행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내가 참 한심했고 짠했고 지질했고 면목없고 죄송했다.

특히 은행과의 대출전쟁은 소액을 벌고 있던 자영업자인 나에게 참 냉정했다. 소상공인도 은행에서 당당해지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며 국민청원글을 쓰려했지만 쓰지 않았다. 그러나 N은행에서 근면성실하며 공감능력이 뛰어난 계장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분의 노고에 큰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 대출이라는 게 은행원의 재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4번의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도 있으니 이 세상 아직 살만하구나' 하며 뜨거운 여름날 길 한복판에서 난, 아주 서럽게 울었다. 그 시기의 난, 툭 하고 건드리면 퍽 하고 울던 내 인생 흑화 절정의 시기라 사소한 일에도 내 눈은 늘 축축했고 내 마음은 늘 서러웠다.

그렇게 쉽지 않게 아니, 매우 어렵게 그 집을 계약했다.

여전히 난 물가에 내놓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부모님 품에서만 자란 어린아이 같았다.


나의 고생길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이사 나간 후 빈집에 들어갔을 때 이게 내가 봤던 집인가 싶었다. 같은 집 맞아? 벽지가, 싱크대가, 문들이, 바닥이, 화장실이, 베란다가… 원래 이랬었어? 이 수많은 곰팡이는 무엇이며... 그리고 왜 샤워기랑 이런 게 없는 거지? 이사 갈 땐 이런 것도 떼어가는 건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땐 이런 집이 아니었다고…


어디서부터 손봐야 하지?

그래도 그간 YouTube, 오늘의 집 등을 통해 이런저런 셀프 인테리어를 공부하면서 이론은 빠삭했던 터라 뭔지 모를 자신감이 생겨났고 이 집을 바꿔보겠다는 의지가 타올랐다.

일단 도배부터 시작하자.

이건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하고 업체 선정 후 미팅을 가진 뒤 벽지를 골라 날짜를 맞추고 계약금을 넣었다.

어른이 된 거 같았다.

기분이 좋아졌다.

집이 곧 예뻐질 거야.


그러나 여전히 나의 바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또 한 번 깨닫게 해 준 전화.


고객님, 도배가 어렵겠는데요.

천장이 내려앉았어요


이건 무슨 말이지…?



이전 01화 1. 파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