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센트 성세윤 대리님이시죠? 어서 오세요.”
서비스 팀장은 왜 이제야 찾아왔냐는 듯 반갑게 날 맞이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건 이미 알고 있었고, 내심 하고 싶은 얘기가 있던 것 같았다. 커피를 마시며 몇 마디 담소를 나눈 우리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서비스 팀장은 이메일로 공유했던 질문 리스트를 손가락으로 짚어하며 답하기 시작했다.
“조직 변경을 할 때 저도 반대하진 않았어요. 물론 제 인력을 내보내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죠. 같이 몇 년 동안 굴러먹던 친구들인데 하루아침에 다른 상사를 모시게 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이게 업무다 보니 사람만 따를 순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저희는 제품이 판매된 후가 중요한 서비스 조직인데 사업지원그룹은 업무 성격 상 제품 판매에 우선순위를 둬야 하니까요.”
“사업지원그룹은 여전히 이쪽으로 출근하는 거죠? 사람들도 그대로고요.”
“그렇습니다. 소속은 바뀌었지만 업무는 콜센터에서 봐야 하니까 이쪽으로 출근해요. 그룹장만 하 팀장께서 보낸 사람으로 교체 됐고 나머지 인력들은 그대로죠. 자리도 예전처럼 저희 팀과 바로 옆자리에서 근무한답니다.”
“그럼 특별히 바뀐 건 없겠네요.”
순간 서비스 팀장은 고개를 갸우뚱했고 동공은 눈동자를 다 덮을 정도로 확장됐다.
“바뀐 게 없다니요? 모든 게 바뀐 거죠!”
“네?”
“조직장이 바뀐 거잖아요. 그럼 모든 게 바뀌었다고 봐야죠.”
조직장이 바뀌면 왜 모든 게 바뀌는 거지? 눈동자에 힘을 주고 입을 실룩거렸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무언가 똑 부러지는 답변으로 좀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은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올해 중순쯤 직원들 사이에서 난리가 한번 났어요. 외부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오는데 분위기가 이상한 겁니다. 직원들 모두 모니터만 보고 있고요. 얘길 들어보니 상반기 성과급이 발표됐다더군요. 한데 가만 보니 저희 콜센터 팀원들하고 사업지원그룹 팀원들 분위기가 정반대인 겁니다.”
“아, 성과급이 예상하고 다르게 나왔나 보네요. 조직이 바뀌어서 그런 건가요?”
“맞아요. 조직별로 성과급 체계가 다르니까요. 같은 일을 했는데도 성과급 액수가 달라진 거죠.”
“불만이 많았겠네요. 조직 바뀐 것도 불만일 텐데 성과급까지 안 나왔으면요.”
“아니요. 정 반대예요. 성과급이 예전에 비해 2배 가까이 나왔거든요.”
“네?”
“사업지원그룹은 성과급이 2배로 나왔는데 저희 팀원들은 그대로라 분위기가 이상했던 겁니다. 아무리 봐도
사업지원그룹 팀원들이 예전보다 열심히 일한 건 아니었는데 말이죠.”
도대체 성과급 체계가 어떻게 바뀌었길래 2배로 늘어난 거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실적은 겨우 3% 증가했는데 성과급만 2배가 됐다면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거였다.
나는 바로 성과급 체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조사해 봤다. 서비스 팀장은 사업지원그룹이 서비스 팀에 있을 당시 매출을 기준으로 성과급을 지급했다. 사업 성과를 내기 위해 운영되는 팀이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한다.
반면 홍보를 전담하는 마케팅 팀의 성과급 지급 기준은 파이프라인 크기였다. 판매기회를 얼마나 많이 접수했느냐에 따라 성과를 평가하는 것이다. 나는 마케팅 팀의 평가기준표를 받아 들자마자 이마를 탁하고 쳤다.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됐다. 평가기준이 이렇게 바뀌면 치명적인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매출이 평가기준일 때는 판매기회가 실제 매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능동적으로 판단하면서 접수하게 된다. 그래야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성과급도 높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업지원그룹이 마케팅 팀으로 옮긴 후로는 더 이상 판매기회가 매출로 이어질지 신경 쓸 필요 없었다. 이제는 최대한 많은 판매기회를 접수해 파이프라인을 키우는 것이 높은 성과급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이었다.
게다가 시장확장은 두 가지 문제를 추가로 야기했다. 우선 업무의 편중이 문제 됐다. 기업시장에 비하면 공공분야에서 판매기회를 발굴하는 게 훨씬 쉬웠다. 일일이 전화를 걸어 확인할 필요 없이 시스템 검색을 통해 손쉽게 판매기회를 발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프로젝트 요구조건이나 시기 같은 건 분석해보지도 않고 프로젝트 명이나 사업분야만 보고 판매기회로 등록할 수 있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증가한 판매기회의 대다수는 공공분야 판매기회였다.
두 번째 문제는 업무 역량이었다. 사업지원그룹에서 기업 고객만 상대할 때는 마케팅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고 수시로 걸려오는 문의전화에도 대응해야 했다. 그 와중에 시간을 할애해 콜드콜을 하는 등 신규 캠페인마다 동원되어 궂은일은 다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판매기회를 분석하고 매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판단하는 안목이 생겼다. 하지만 공공분야에 집중하면서 그런 안목은 자연스레 퇴화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체계로 일 년이 지나고 나니 파이프라인 크기는 3배로 커졌지만, 추가 매출로 이어질 수 있는 판매기회는 크게 늘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진행이 더디거나 아예 멈춰버린 판매기회들도 허다했다.
마케팅 팀의 성과지표는 파이프라인을 키우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일에 집중했을 뿐이고, 영업 팀의 성과지표는 계약을 체결하는 것인데 그게 안돼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문제의 핵심에는 공공분야로의 시장확장이라는 외부적 변화와 사업지원그룹의 평가기준 변경이라는 내부적 변화가 있었지만 나는 영업 팀장과 마케팅 팀장의 주장에만 사로잡혀 근인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답은 ‘성과지표’였다. 틀어진 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선 무엇보다 성과지표를 개선해야 했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었다. 사업지원그룹 전원에게 매출을 성과지표로 부여하거나, 사업지원그룹을 둘로 쪼개 기업시장과 공공분야를 나눠 관리해도 됐다.
나는 새로운 성과 관리안에 대해 3가지 옵션을 만들고 각 옵션 별 장단점을 도출해 기록했다. 며칠간 논리를 조금 더 탄탄히 만든 후 하 팀장, 김 팀장과 사업지원 그룹장을 찾아가 시장확장과 조직개편이 현 상황에 대한 근인이란 점을 설명했다.
그리고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선 성과지표를 개선하고 사업지원그룹이 예전처럼 마케팅 팀과 영업 팀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는 말도 보탰다. 팀장들은 그제야 적개심을 누그러 뜨리며 협력하자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일주일 뒤 마케팅 팀과 영업 팀 사이 워크숍이 열렸다. 나는 현 상황에 대한 분석결과를 발표했다. 시장 확장을 위해 조직변경을 하며 성과지표를 바꾼 게 문제의 근인이란 내용이었다. 그리곤 마케팅 팀과 영업 팀 사이 사업지원그룹의 업무목표와 성과지표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 중엔 나로선 절대 알 수 없는 디테일에 대한 언급도 있었고, 오히려 내가 아웃사이더이기 때문에 더 객관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반나절이 걸린 토론 끝에 결론은 났다. 마케팅 팀 사업지원그룹 팀원에겐 예전처럼 매출을 기준으로 한 성과지표를 추가하기로 했다. 그리고 기업시장과 공공분야 담당을 조직적으로 나누진 않았지만 지원자에 한 해 특정 시장을 전담할 수 있게 했다. 지원자는 성과에 따라 영업사원으로 발탁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했다. 실적에 따라 커리어를 키우며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한 것이다.
영업 팀에도 변화는 있었다. 영업 팀장은 공공분야 영업활동이 기업시장에서와는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며 공공분야 전문 영업그룹을 만들기로 했다. 이번 논의를 계기로 그동안 미흡했던 공공분야 성과를 보완해 보겠다는 의도였다.
워크숍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나는 작업했던 모든 결과물을 시큐테크사 담당에게 넘기고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3주간 짧은 프로젝트였지만 생애 처음 리딩해본 프로젝트라 그런지 감회는 남달랐다. 마지막 날 시큐테크 본사에서 만난 하 팀장과 김 팀장은 컨설턴트가 역시 인사이트가 있다며 날 치켜세웠다.
하지만 그 인사이트가 나 자신의 것이 아니란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이주완 대표의 조언이 없었다면 어림없는 일이었다. 돌이켜 보면 이주완 대표는 이미 프로젝트 답을 알고 있던 것 같았다. 마케팅 팀장과 영업 팀장의 말에 옥죄여 있던 내 목덜미를 끌어올려 시장 상황을 볼 수 있게 해 줬고, 그리곤 다시 그들 사이를 투사해 내부 구조를 볼 수 있게 했다.
그렇다. 사실상 이 대표가 나에게 답을 알려준 거나 다름없었다. 시큐테크 대표와 지인이라고 했으니 아마도 프로젝트가 시작하기 전부터 대략적인 상황은 알고 있었을 거고 답에 대한 가설도 이미 세워놨었을 것이다.
어떻게 답을 미리 알고 있었을까? 그리고 답을 알고 있다면 굳이 나를 프로젝트에 배정한 이유는 뭐였을까?
생각해 보니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바로 1년 전 이맘때 임정혁 부장과 대한통신 프로젝트 킥오프 자료를 준비하면서였다. 그때 임 부장은 마치 모든 답을 미리 알고 있던 것처럼 술술 ‘고객 제공가치 혁신’의 의미가 뭔지 해석해 냈다. 그때 그도 미리 답을 알고 있던 걸까? 컨설턴트라면 모름지기 무엇이든 알고 있어야 하는 건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때마침 이 대표가 나를 불렀다.
“프로젝트는 잘 마무리 됐다면서요. 시큐테크 대표이사가 흡족해하더군요. 보고서는 저도 봤는데 깔끔히 정리하셨어요. 수고했습니다.”
나는 얘기를 꺼낼 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대표님.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건가요? 프로젝트 답 말이에요.”
“답을 알다니요? 그건 무슨 얘기죠?”
이 대표는 수수께끼를 내는 선생님처럼 시치미를 떼며 미소 지었다.
“결국 성과지표를 바꿔야 한다는 사실 말이에요. 이미 알고 계셔서 시장변화에 대해 얘기해 주시고 조직 구조
를 보라고 하셨던 것 아닌가요?”
“후훗. 전 얘기드렸다시피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미리 알고 있었다는 건 불가능해요.”
“하지만—”
“성과지표가 답이라는 건 대리님이 분석을 통해 찾아낸 거예요. 마케팅 팀과 영업 팀 사이에서 끈질기게 질문하고 분석해서 얻은 결과지 제가 알고 있던 건 아닙니다.
물론 제가 알고 있었던 게 전혀 없던 건 아니에요. 영업 팀과 마케팅 팀이 서로 대화하고 있지 않았고, 그게 문제라는 건 대표이사를 통해 들었어요.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가장 긴밀하게 협업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할 상황에 사이가 틀어져 버린 거죠.
둘 사이 관계를 다시 생산적으로 바꿀만한 촉매가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래서 프로젝트를 띄운 거기도 하고요. 하지만 ‘성과지표’가 그런 촉매가 될 수 있다는 건 전적으로 세윤 씨가 찾아낸 거예요. 로직과 팩트에 기반해서 말이죠.”
지금 칭찬을 받은 건가? 볼이 화끈해졌다. 이 대표는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미소만 내비쳤다. 그리곤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에요. ‘성과지표’가 과연 유일한 답이었을까요?”
다시 이 대표의 질문이 던져졌다. 사람을 아리송하게 만들어 버리는 그런 질문이었다. 지금, 이 시점에 저런 질문을 던진 건 분명 나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였다. 이 대표가 얘기하려고 하는 건 뭘까? 나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전 가끔 우리가 이렇게 답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요. 아무리 힘든 난관에 부딪혔더라도 문제를 파고 또 파고들다 보면 언젠가 답은 나오게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하나의 답이 어떻게 답이 되는 걸까요?
전에도 얘기드렸지만 저 역시 절대적 의미에서의 ‘정답’이란 없다고 생각해요. 관점이 바뀌고 상황이 바뀌면 답도 자연스레 바뀌게 되죠. 하지만 어떤 답이 잠시나마 답이 되는 이유는 탄탄히 조합된 팩트와 논리로 모두를 설득해 하나의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하는 스토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이에요. 그 스토리가 상대를 압도하면서 협력의 계기를 만드는 거죠.
이번에 ‘성과지표’가 답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세윤 씨가 성과지표라는 답을 도출하기 위해 사용한 로직과 팩트가 마케팅 팀장과 영업 팀장을 압도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들이 마음을 열고 협력을 논의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언젠가 다시 상황이 바뀐다면 그 답이 맞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최소한 그때까지 세윤 씨가 제시한 답은 팀원들이 행동할 동기를 부여할 겁니다.
답을 제시한다는 건 항상 무언가 화두를 던지고 행동할 계기를 만드는 일이거든요. 중요한 건 답 자체가 아니에요. 바로 ‘행동’이죠. 그게 우릴 변화시키고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게 하는 거예요.”
절대적 의미에서의 답은 없고 따라서 답을 알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답은 답을 찾는 과정에서 제한된 상황에 맞게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뿐이었다. 답이 모습을 드러내게 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해야 했다. 그리고 답을 찾고 나선 ‘행동’ 해야 했다.
문득 절대 방정식을 꿈꾸며 물리를 공부하던 대학 때가 떠올랐다. 답은 연구실 어딘가 깊숙이 숨겨져 있는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 우릴 움직이고 행동하게 하는 모든 게 답이고 진리였다.
처음 이대표가 자신은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을 땐 별 의미 없는 농담으로만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쉬지 않고 답을 탐구하고 행동하겠다는 스스로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나는 이주완 대표의 말을 들으며 엉뚱하게도 하나의 고대 도시가 번영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경이로운 밤하늘을 바라보며 고대인들은 언젠가 ‘하늘 끝’에 이르겠다는 의지 하나로 바벨탑을 쌓아 올린다. 팩트와 논리를 끼워 맞춰 거대한 스토리를 건축한다. 도중에 어떤 건축물은 무너지기도 하고, 어떤 건축물은 구조상 더 높이 쌓을 수 없어 그대로 놓아둔다.
그러는 사이 고대인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점점 더 많은 인파들이 모이고 교류하며 새로운 문화와 문명이 번성한다. 그 자체가 하나의 신앙이자 삶의 양식이 된다. 어느 순간 ‘하늘 끝’은 의미를 잃게 되지만 문명은 여전히 번성하고 삶의 양식도 유지된다.
답을 찾는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압도적인 스토리로 인력을 결집해 모래알 가득한 사막 한가운데 하나의 문명을 건설하는 일이었다. 이 커다란 대업의 시작점에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깨달음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관점을 바꾸고 질문을 던지며 끝없이 탐구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그 의지를 연성해 내는 건 또 다른 차원의 훈련이었다.
아직도 갈 길은 멀었다.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