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세윤 Jul 12. 2023

34. 스마트그리드 사업전략 (2)

 커넥티드 씽즈는 스마트그리드 기술 중 전력사업자가 전력 피크 수요를 효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커넥티드 디맨드 리스폰스’ (Connected DR, Connected Demand Response)라는 솔루션을 개발해 제주도 ‘인텔리전트 시티’ 실증단지에 성공적으로 적용했다. 


커넥티드 씽즈의 다음 목표는 북미 시장에서 커넥티드 DR 솔루션의 경쟁력을 인정받아 이를 공식 사업화하는 일이었다. 이제 갓 창업한 사내 벤처회사가 직접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 우선 에스랩을 통해 해외 투자자를 물색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따라서 실질적인 제품개발과 생산은 커넥티드 씽즈에서 전담했지만 북미 시장을 개척하는 건 에스랩에서 맡게 됐고 내 역할은 에스랩 북미 팀을 도와 커넥티드 DR 솔루션을 미국 전력 사업자들에게 소개하고 투자를 도모하는 것이었다. 


여러 경로로 활로를 모색하던 우리는 어센트 미국팀의 지원을 받아 미국 3대 전력회사인 에너시스 사 소속 벤처캐피털 부서장과 사업계획을 논할 자리를 마련했다. 만약 사업계획서가 마음에 들면 그 자리에서 오십만 불까지 투자받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에너시스 사에 제품을 공급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주어진 미팅 시간은 단 1시간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커넥티드 씽즈나 에스랩에서 발표하는 게 정상이겠지만 커넥티드 씽즈 인력은 모두 개발자 출신이라 이런 발표는 애초부터 진행 불가라 밝혔고, 에스랩은 투자 전문가들 밖에 없어 기술을 소개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인텔리전트 시티 때부터 함께 일해온 내가 솔루션 소개를 맡게 됐다.


커넥티드 DR은 전력사업자가 피크 수요를 효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수요반응 (Demand Response, DR) 솔루션이었다. 솔루션은 총 세 개 모듈로 이뤄져 있었다.

첫 번째 모듈은 전력 사용을 제어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스마트 플러그다. 지그비(ZigBee)라는 근거리 통신기술과 와이파이를 이용해 연결된 플러그로 전력 사용을 제어하고 사용량을 측정할 수 있다. 


여기서 수집된 데이터는 두 번째 모듈인 에너지 관리 플랫폼으로 전송된다. 플랫폼은 전체 전력 사용 데이터를 수집하고 총사용량을 분석한다. 분석결과는 전력회사 가격 시스템과 연동되어 실시간 가격에 반영된다. 또한 개별 가정의 전력 사용 패턴에 기반해 소비자 별 전력사용 효율화 방안을 분석하기도 한다. 


이런 정보들은 세 번째 모듈인 커뮤니케이션 허브 앱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전력 사업자가 수요를 줄여야 할 때는 가격을 올리고 이를 소비자에게 실시간으로 공지할 수 있다. 그리고 요금이 일정 한도를 넘으면 소비자 설정에 따라 자동으로 특정 기기를 제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냉난방 시스템의 설정 온도를 조정한다던가 세탁기나 진공청소기 등 전력소비량이 많은 가전제품 사용을 차단하는 것이다.


미국 전력시장을 한동안 조사한 에스랩 북미팀은 승산이 높을 거라 판단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전력 생산 및 소비 국가로 인당 전력 사용량이 한국의 2배에 달했다. 가구당 평균 전기요금은 월 $100을 넘는 수준이며, 특히 냉난방을 모두 전기로 하는 가구가 많아 여름이나 겨울에는 월 $200을 넘어가는 경우도 자주 발생했다. 요금절감에 대한 소비자 니즈는 충분했다. 


사업자 관점에서도 수요반응 솔루션에 대한 니즈는 높았다. 미국에서는 피크 수요가 전체 전력 수요에 비해 2배 이상 빠른 속도록 증가하고 있어 문제해결이 시급했다. 특히 에너시스 사는 미 북부 미시간주를 담당해 겨울철 피크가 심하게 발생했다. 


소비자와 사업자 니즈는 높았지만 아직 초창기 시장이라 선도 사업자라 할 만한 경쟁상대는 없었다. 이제 막 기술 개발을 마친 스타트업이 시장에 나오고 있었지만 소규모였고 시제품 테스트 단계에 있던 회사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커넥티드 씽즈는 스타트업이라 하더라도 현대통신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았고, 제주도 실증단지에서 이미 상용 솔루션을 운영했다. 바로 이 점이 핵심 영업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검증된 제품이 있어 언제라도 솔루션을 설치할 수 있다는 점 말이다.


미팅 시간이 1시간 밖에 없어 발표자료는 슬라이드 15장으로 정리했다. 현재 전력시장 동향과 수요반응 솔루션이 중요해지는 배경을 설명하고 커넥티드 DR 솔루션을 소개했다. 이미 개발이 완료되어 그만큼 빨리 출시하고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현대통신 지원에 기반한 커넥티드 씽즈의 자본상황이라던가 개발역량 등에 대해서도 믿음이 갈 만큼 충분히 설명했다. 


영어로 발표를 하는 게 부담스러웠던 나는 아예 스크립트를 작성해 통째로 외웠다. 에너시스 사 부사장이 할 만한 예상질문도 뽑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 역시 스크립트로 작성해 외워버렸다.


결전의 날은 일주일 뒤였다. 나는 에스랩 인원들과 에너시스 사를 방문했다. 에너시스 사 건물은 호숫가 인근에 곧게 솟아올라 단연 눈에 띄었다. 


접견실에서 우릴 맞이한 에너시스 벤처 팀은 우릴 꼭대기 층에 있는 대회의실로 안내했다.  높은 층고에 통유리로 호수가 보이는 멋진 회의실이었다. 


엔리코 페니 벤처 팀 부사장은 몇몇 임원들과 이미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그는 격식 없이 가볍게 인사말 몇 마디를 건네고 바로 회의를 시작하자는 듯 자세를 바로잡았다. 나는 컴퓨터를 꺼내 프로젝터에 연결하려 했다.


“이메일로 보내준 자료는 잘 봤어요. 저희도 그 자료들 기준으로 커넥티드 씽즈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와 개발하신 솔루션에 대한 정보는 어느 정도 알아봤으니 슬라이드 없이 10분 정도 간단히 소개만 해주시고 바로 저희가 궁금했던 점을 질문하는 식으로 진행하죠.”


부사장이 짧게 말했다. 내 이마엔 깊은 주름이 졌다. 단 한 마디로 1주일 넘게 준비했던 회의 아젠다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다니…


나는 숨을 고르며 자리에 앉았다. 웬만한 질문이라면 충분히 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슬라이드로 준비했던 자료는 대부분 알고 있었고 에너시스 사가 맡던 전력시장 크기나 전체 전력량, 수요반응 솔루션을 도입했을 때의 기대효익 등 대다수 지표도 바로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숙지하고 있었다.


“커넥티드 씽즈에서 개발한 솔루션이 경쟁사 솔루션에 대비 좋은 점이 뭐죠? 요즘 보니 출시된 제품이 많던데요.”


엔리코 부사장은 소개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저희 솔루션은 개발이 완료됐고 한국 실증단지에서 이미 검증까지 한 제품입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테스트 베드(test bed)를 구축하고 시연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나는 자신 있게 준비했던 멘트를 던졌다.


“글쎄요. 그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모르겠네요. 저희가 당장 수요반응 솔루션을 구축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저희가 믿을 만한 제품이 있지 않는 한 투자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요즘 시장에 출시된 제품들도 대부분 품질 이슈는 없어요. 위탁생산 체계가 워낙 잘돼있어서 이런 간단한 제품 제조하는 건 일도 아니죠. 디스플레이에 센서 몇 개만 조합하면 되는 제품이니까요.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경쟁사 솔루션에 비해 좋은 점이 뭐죠?”


주름진 이마를 따라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더니 이내 땀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렸다. 사실 난 커넥티드 씽즈에서 개발한 솔루션을 미국 전력 사업자에게 소개한다는 생각만 했을 뿐 실제로 제품 자체의 경쟁력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해 본 적 없었다. 그건 온전히 커넥티드 씽즈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였다. 


하지만 가슴이 뜨끔하긴 했다. 워낙 태동기 시장이라 제품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일 거라 안일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옆에 있던 에너시스 사 개발팀장이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입을 열었다.


“아이디어 자체는 좋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웹이나 스마트폰 앱을 써서 수요반응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거네요?”


“예. 그렇죠. 앱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는 콜센터 상담원이 프로그램을 운영해서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들어갔는데 저희 솔루션을 사용하면 저비용으로 가능합니다.”


“콘셉트 자체는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소비자가 이런 프로그램에 얼마나 참여할까요?”


다시 엔리코 부사장이었다. 하지만 이거야 말로 내가 기다리던 질문이었다.


“그게 저희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저희는 실증단지에서 이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처음에는 결과에 대해 반신반의했는데 실제 피크 수요를 20% 이상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건 한국에서 얘기죠?” 


엔리코 부사장은 다시 한번 칼날같이 파고들었다. 질문의 의도는 명확했고 난 그 의도대로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네.”


난 승복하듯 답했다. 

이전 07화 33. 스마트그리드 사업전략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