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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세윤 Sep 20. 2024

6. 희귀 불치병

1부 잃어버린 낙원

병원을 찾은 건 여행을 한 달 앞둔 어느 날이었다. 일 때문에 바쁘기도 했고, 그 뒤로 증상이 재발하진 않아 넘어갔다. 하긴, 웃다가 그랬는데 웃을 일이 없으니 재발 위험은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웃음을 위한 여행’을 앞둔 마당에 간과할 수만은 없었다. 내가 겪었던 증상은 <조커>에서 아서 플렉이 겪었던 ‘병적 웃음’과 비슷한 것 같아 신경외과에 가 보기로 했다. 네이버 검색을 해 보니 집에서 도보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신경외과가 한 곳 있었다. ‘신경외과’라고만 뜰 뿐 별다른 설명이나 후기도 없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운전하기는 싫었고 동네 병원이 다 거기서 거기겠지 하는 생각에 집을 나섰다. 가까운 거리임에도 길은 생소하기만 했다. 외진 길을 따라 10분쯤 걷다 10년 넘게 살았던 동네에서 처음 보는 계단길을 올랐다. 태양빛 때문인지 가파른 계단 때문인지 피가 쏠려 머리가 핑 돌았다. 현기증에 흐릿해진 시선이 차츰 초점을 잡아가며 보인 건 ‘강인찬 신경외과’라는 허름한 현판이었다.

문은 연 건가? 2층 연립주택을 개조해 만든 것 같은 허름한 건물에 색은 바래고 먼지 때가 덕지덕지 낀 간판을 보니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발을 돌려 돌아갈까 생각도 해 봤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게으른 인간이고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런 소득도 없이 회군할 순 없었다. 일단 문을 열고 고개를 밀어 넣었다. 대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보통 병원이라면 접수 받는 간호사라도 있을 텐데 말이다. 역시나 발길을 돌려야 하나 생각하는데 안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빼꼼히 열린 문틈으로 보니 강인찬 박사가 환자 한 명 없는 진료실에 앉아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머리는 포마드로 넘겨 말끔히 정리했지만 다리를 떨며 펜을 돌리는 폼새가 부잡스럽기만 했다. 번쩍이는 금테 안경 뒤로는 레이저를 쏘는 듯한 시선이 구슬 굴리듯 산만하게 움직였다. 푸근한 몸매 위로 걸친 의사 가운은 찐빵처럼 퍼졌지만 날카로운 시선 때문인지 양가죽을 덮어쓴 늑대처럼 위화감을 풍겼다. 벽면엔 해외 병원이나 연구소에서 받은 인증서와 수료증이 신뢰를 강요하듯 빽빽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 들어오세요.”

강인찬 박사는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읽던 문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데 눈에선 안광을 발하고 입귀살이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 가면을 쓴 듯 인상이 바뀌었다. 표정 바꾸기에 능숙한 광대처럼 말이다. 자리에 앉은 나는 어디서부터 얘기를 풀어야 할지 고민하다 그냥 벌어진 일을 있는 그대로 서술했다.

“그러니까, 한 번 웃음이 터진 후에 멈출 수가 없었다고요?”

“네.”

“웃겨 죽을 뻔하신 거네요.”

맞아. 웃겨 죽을 뻔했었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터질 것 같은 그 말을 너무도 진지한 어조로 말하는 강인찬 박사를 보며 난 가까스로 웃음을 참았다.

“그런 셈이죠.”

답을 하면서도 민망함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탁탁. 펜 뒤 꼭지로 책상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실 웃겨 죽을 뻔했다는 게 얼마나 황당한 얘기인가. 갑작스레 찾아와 그런 얘길 늘어놓는다면 누구라도 미친놈처럼 보일 게 뻔했다. 뭔가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요즘 몸이 좀 피곤하고 해서요….”

“피로 때문에 웃음이 나왔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게 아니라, 제가 인터넷에 찾아보니 ‘병적 웃음’이라는 증상이 있던데….”

“’병적 웃음’이면 웃음이 피식피식 새 나오는 정도지 기도가 막힐 정도로 웃음이 터지진 않습니다. ‘병적’이란 표현을 쓰긴 하지만 사실 호르몬 불균형에 따른 일시적 증상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병이라고 하기도 어려워요.”

“제 말은....”

“환자분 증상은, 단정할 순 없지만, 변종 쿠루병으로 의심됩니다.”

“네? 쿠루병이요?”

“웃다가 죽는 병입니다. 희귀 신경질환이죠.”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강인찬 박사를 쳐다봤다. 실제로 웃다가 죽는 병이 있다는 건가? 처음보는 환자 앞에서 농담하는 건지, 미친놈 장단에 맞춰 허튼소리를 지껄이는 건지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강인찬 박사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말을 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웃다가 죽는 건 아닙니다. 루카라는 변성 프리온 때문에 신경세포가 파괴돼서 얼굴 근육이 통제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웃음을 짓는 것 같은 표정이 생기는 거죠. 사람에 따라 발현되는 방식이 다른데 보통 웃는 표정이나 우는 표정으로 증상이 나타납니다.”

“아, 변성 프리온....”

“프리온은 일종의 병원체인데요, RNA나 DNA 없이 단백질로만 구성돼서 생물체라 할 순 없고 일종의 바이러스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제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건가요?”

“그렇게 보인다는 겁니다. 정확한 건 검사를 해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쿠루병이란 게 심각한 병인가요?”

“증상은 웃길지 몰라도 병 자체는 심각합니다. 쿠루병은 치사율 백퍼센트의 불치병이거든요. 치료법은 없고 지금까지 발병한 환자들은 모두 6개월에서 1년 내 사망했습니다. 설명하신 증상으로만 보면 근육 조정력 상실인 것 같은데 쿠루병 초기 징후와 유사합니다. 일반적으로 떨림이나 경련이 선행하고 중추신경계에 문제가 생기면서 웃음이나 울음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죠. 이런 증상들은 경미한 거라 볼 수 있어요. 쿠루병이 아니라 단순한 신경증일 가능성도 있고요. 

한데 후기로 가면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됩니다. 사지에 통증이 발생하고 침만 삼켜도 엄청난 통증을 수반합니다. 현기증이 심해지다 섬망에 빠지거나 정신을 잃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하죠. 재미있는 건 이때 뇌는 신경세포가 죽어 구멍이 뻥뻥 뚫리고 말라비틀어진 스펀지처럼 되어 있다는 겁니다. 신경은 죽어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신경 반응은 극도로 예민해지는 거죠. 죽기 전 최후의 발악이라고 할까요? 신체 어딜 건드려도 신경 반응이 폭풍처럼 휘몰아쳐요. 불에 덴 듯, 칼에 베인 듯 그렇게 지옥을 경험하게 됩니다. 거열형에 처해진 것처럼 극도의 사지통증을 경험하다 모든 신경망이 끊어져 버리죠.“

침이 꿀꺽 넘어갔다. 어제만 해도 그저 면역력이 좀 떨어진 거겠거니 했는데 갑자기 희귀 불치병에 거열형 같은 사지통증이라니. 강인찬 박사는 점점 굳어 가는 내 표정을 살피며 설명을 이었다.

“쿠루병은 사실상 ‘소통의 단절’에 따른 ‘울화’입니다.”

“네?”

“아직 명확히 밝혀진 건 아니지만 정상 프리온은 세포막을 통한 물질이나 정보 전달에 관여한다는 게 학계 통설입니다. 한데 비정상 프리온은 사방이 꽉 막힌 구조여서 이런 교류를 차단하죠. 게다가 분해효소에 저항성이 있고 전염성까지 있어 결국 세포를 고립시킵니다. 머리카락이 쌓여 수도관을 막듯 ‘소통의 단절’을 초래하는 거죠. 그럼, 세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외부에서 영양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생성된 노폐물도 분출하지도 못하면서 ‘울화’가 쌓이겠죠. 그러다 결국 말라비틀어지고 기도가 막힌 듯 발악하다 질식해 죽는 겁니다. 사람하고 똑같죠.”

듣고 보니 강인찬 박사의 진단은 내가 경험했던 증상과 유사하긴 했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던 찰나 강인찬 박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확한 건 정밀검사를 해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정밀검사라고 하시면?”

“자세히 보려면 아무래도 CT MRI 정도는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CT MRI요?”

“CT와 MRI를 같이 찍어 보는 검사예요. 프리온은 너무 작고 성질도 불명확해서 쉽게 감지되지 않습니다. 뇌에 많은 양이 응고됐다고 해도 단백질 조직이 유동적이기 때문에 CT 이미지와 MRI 이미지가 정확히 싱크가 돼야 그나마 판별 가능성이라도 생기거든요.”

“그럼, 종합병원까지 가야 하는 건가요? 예약날짜 잡고 하려면 한참 걸릴 텐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기도 장비가 있거든요.”

“네? 여기 장비가 있어요?”

난 눈을 치뜨며 강인찬 박사를 쳐다봤다. 그는 의도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지하 영상실에 CT MRI 기계가 있죠. 검사는 바로 가능하고요. 요즘 대학병원에서 이런 검사 하려면 대기가 몇 개월씩 차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희는 장비를 직접 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검사면 전문의가 따로 해야 하지 않나요?”

“그럼요.”

강인찬 박사는 벽면에 걸린 영상의학과 전문의 자격증을 가리키며 유들거렸다.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CT하고 MRI를 동시에 찍는다고 하셨죠? 그럼 아주 고가 장비겠네요?”

“아마 국내에선 쉽게 못 찾을 겁니다.”

“검사 비용은 당연히 비싸고요?”

“비싸긴 하죠. 장비가 장비다 보니까요.”

강인찬 박사는 다시 하얀 이를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괜찮아요. 정밀 검사까지 필요한 거면 큰 병원으로 갈게요.”

“아, 검사는 어차피 기계가 하는 거라 큰 병원을 가시나 여기서 하시나 똑같습니다. 검사 자체는 간단합니다.”

개인 병원에서 희귀 불치병을 언급하며 고가의 검사까지 권유한다니.

“아니에요. 됐어요.”

“오래 안 걸립니다. 오신 김에 받고 가시는 게 편하긴 할 거예요. 보험처리는 당연히 해 드리고요. 아마 대학병원으로 가면 비급여 항목으로 검사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긴 한데요....”

강인찬 박사는 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보험? 흔들렸다. 하긴, 비용처리 정책 같은 건 동네 병원이 오히려 느슨할 수 있었다. 그럼 여기서 검사를 받는 게 나으려나? 난 고민할 겨를도 없이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가는 아이처럼 강인찬 박사를 따라 병원 지하에 있는 영상의학실로 갔다. 그리고 어느새 가운만 걸친 채 CT MRI 기계 위에 누워 있었다. 자장 코일 돌아가는 소리가 귀를 울렸고 숨을 깊이 들이쉬며 눈을 감았다. 창졸간에 희귀 불치병 환자가 되어 기계 안에 누워 있는 신세라니.


“검사 결과는 언제 나오나요?”

검사가 끝나고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기며 물었다.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할 겁니다. 정밀 분석을 위해 연구소에 보내야 하거든요.”

“연구소에서 정밀 분석을 한다고요?”

다시 돈 소리가 들렸다. 어쩌다 검사까지 하긴 했지만 이제라도 손절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강인찬 박사는 흠칫 놀라는 날 보며 진정하라는 듯 다시 말했다.

“훗. 비용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것도 보험으로 진행할 수 있으니까요.”

“아, 네....”

강인찬 박사는 의학박사가 아니라 보험박사라도 되는 듯 보험 약관을 하나씩 읊어가며 자신이 진행하는 검사들이 어떻게 다 무상으로 진행될 수 있는지 설명했다. 늪에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검사까지 한 마당에 이제 와 발을 뺄 순 없었다. 나는 귀신에라도 홀린 듯 분석 동의서에 서명하고 있었다.

“한데 검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확진은 안 될 수 있습니다.”

“네?”

“‘변종 쿠루병’이라고 얘길 드리긴 했는데 사실 이 병이 어떤 병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공식 병명도 없죠. 쿠루병은 증상이 유사해서 얘기 드린 것뿐입니다. 뇌에 프리온이 생기는 경우가 다양하긴 하거든요. 쿠루병은 원래 동족포식, 그러니까 식인풍습 때문에 생긴 건데 그 케이스일 리는 없고, 정확한 침투경로나 발현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면 사실상 확진은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니까 무슨 병인지 몰라서 정밀진단을 받아야 하는데, 검사결과가 나와도 알 수 있는 건 무슨 병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뿐이란 건가요?”

“그런 셈이죠.”

“무슨 병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 검사를 하는 거네요?”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 알려진 병 중 하나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 거죠.”

“알려진 병 중 하나가 아니라면 병이 아닌 거 아닌가요?”

“병으로 의심된다고 했지, 병이라고 얘기하진 않았습니다. 사실 병이 쉽게 병이 되는 게 아닙니다. 유병 환자 수도 많아야 하고 진단 기준도 협의가 필요하고 그렇죠. 프리온과 관련된 병은 희귀 케이스가 많고 진단 장비도 아직 기술 수준이 낮아 병으로 정의되기는 힘든 면이 있습니다.”

끝을 알 수 없는 강인찬 박사의 궤변에 머리가 아파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캐릭터와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그럼, 불치병이란 건 어떻게 알아요?”

“무슨 병인지 알 수 없으니 치료도 불가한 거고 그러면 불치병 아니겠습니까?”

강인찬 박사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되물었다.

“무슨 병인지 알 수도 없고, 치료도 불가하면 제가 왜 검사를 받아야 합니까?”

“뭐, 받아서 손해 볼 건 없잖습니까?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강인찬 박사는 유유히 차트를 넘겨보며 말했다. 젠장, 제대로 당한 것 같다. 검사는 이미 받았고, 정밀분석 동의서에도 서명을 해 버렸으니 달리 방법도 없었다. 보험제도가 이리 허술하니 보험료 내는 걸 아까워할 수밖에. 더 이상 얘기하는 건 의미 없었다.

“오늘 검사는 다 끝난 거죠?”   

“네. 수고하셨습니다. 어찌 됐건 지금 상황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건 몸을 흥분시키지 않는 겁니다. 웃거나 울거나 감정적으로 자극이 되는 행동은 신체에도 자극이 되니 최대한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해요.”


“잠깐만요, 그럼 웃지 말라는 말씀인가요?”


“그렇죠. 신경계를 자극하는 게 가장 위험한 일입니다.”


젠장, 웃음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 웃는 게 가장 위험한 일이라니. 이건 또 무슨 웃지 못할 상황인가!


“필요하면 얼굴에 가면을 만드세요.”


“가면이요?”


“가짜 웃음을 만드는 거죠. 진심으로 웃지 마시고 얼굴로 웃는 표정만 만든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렇게요.”


강인찬 박사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훑으며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고 그때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어렵지 않습니다.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면 간단하죠. 처음엔 웃는 표정을 연습하세요. 뭐, 조심은 하셔야겠죠. 진짜로 웃어 버리면 안 되거든요. 그냥 웃는 흉내만 내시는 겁니다. 웃음 요가를 하다 증상이 나타났다고 하셨죠? 비슷하게 하시면 됩니다. 다만 신경계를 너무 자극하지 않도록 강도를 조정하고, 또 가장 중요한 건 실제로 웃지 마시고 웃는 흉내를 낸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메소드 연기 아시죠? 자신이 실제로 극 중 인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배역에 몰입하는 연기요. 이건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죠. 웃는 연기를 하면서 자신이 연기하고 있다는 걸 또렷이 의식하는 겁니다. ‘이건 가짜 웃음이다, 난 웃는 흉내를 낼 뿐이다’라고 말이죠. 이를테면 안티 메소드 연기라고나 할까요?”


그러고 보니 웃음 요가를 따라 할 때는 가짜로 웃다가 그 모습이 우스워 진짜로 웃었다. 그땐 가짜 웃음이 진짜 웃음을 유발했다면 이번엔 가짜 웃음으로 진짜 웃음을 가려야 한다는 건가?


“조금 익숙해지면 몸을 속일 수 있게 됩니다. 가짜로 웃는 데 익숙해지면 몸이 모든 웃음을 가짜라고 인식하게 되는 거죠. 신경계가 반대로 교란되는 거예요. 그래서 숙달되면 양치기 소년 효과가 나타납니다.”


“양치기 소년 효과는 뭐죠?”


“가짜로 웃든 진짜로 웃든 몸은 그걸 가짜 웃음으로 인식해서 더 이상 반응을 안 하게 되는 거죠. 늑대가 나타났다고 아무리 소리쳐도 마을사람 누구도 반응을 안 하는 거예요. 양치기 소년이 뭐라고 외치든 ‘내가 하는 모든 말은 거짓말이야’라고 말하는 상황이 돼서 몸이 판단 불능 상태에 빠지는 거죠.”


“피노키오가 ‘이 말은 거짓말이야’라고 말하는 꼴이네요.”


“피노키오요? 아, 그렇죠. 그 말이 진짜면 거짓말이고, 거짓말이면 진짜가 되니까. 코가 늘어날지 말지 결정을 못 하겠네요. 하하, 피노키오라니. 그런데 피노키오라면 제페토가 더 어울리는 비유겠네요. 제페토 할아버지가 돼서 줄을 잡고 피노키오 얼굴에 웃는 표정을 그리면 되거든요.”


강인찬 박사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킥킥거리며 말했다. 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영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아니, 강인찬 박사 말이 맞는다면 웃어도 울어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신경계를 자극하면 안 되니 말이다. 우리 가족의 웃음을 찾기 위해선 내가 먼저 웃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여행도 준비하고 웃음 요가도 했던 건데, 막상 나는 웃으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아내와 연서를 웃게 만들기 위해 난 평생 거짓 웃음을 지으며 살아야 한다는 걸까? 어차피 살아가며 늘 연기란 걸 하지만 평생 웃음을 연기해야 한다니. 젠장, 비극인 줄 알았던 내 삶은 결국 웃기지도 않는 블랙 코미디에 불과했다. 불쑥,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병원을 나서는데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웃는 연기를 한다면 내 몸이 웃을 때 실제 나, 그러니까 웃지 않는 진짜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 내 몸에서 분리되어 다른 어딘가에 존재하는 걸까? 몸은 사라지고 웃음만 남은 체셔 고양이처럼 되는 걸까? 아니면 웃음이 진짜 나고, 나는 스스로가 유령인 줄 자각하지 못하는 <식스 센스>의 말콤 같은 존재가 되는 걸까? 본체를 상실한 그림자처럼 말이다.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날 난 하루 종일 그런 형이상학적 고민을 이어갔고 모든 고민은 결국 하나의 허무주의적 질문으로 귀결됐다.


지금 내 삶은 그런 꼭두각시 인형의 삶과 뭐가 다르지? 처성자옥의 무대 위에서 빅브라더가 당기는 줄에 조정당하며 영혼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지금 삶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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