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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세윤 Sep 16. 2024

4. 터진 웃음

1부 잃어버린 낙원


웃음 예행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알근한 정신에 문득 생각이 들었다. 오래 간만에 회식 자리에서 폭탄주를 연거푸 마셔서였을 수도 있고 회식 전 아무 생각 없이 들이켠 나이퀼 감기약 때문인지도 몰랐다. 여하튼 웃는 것도 웃어 본 사람이 잘 웃을 테니 샌프란시스코에 가기 전 충분히 웃음 근육을 이완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하 대리 말마따나 웃음에 전염성이 있다면 내가 잘 웃어야 아내 웃음도 찾기 쉬워질 것 아닌가! 그래서 늦은 밤 세 번의 시도 끝에 겨우 현관 비밀번호를 맞춘 난 서재 책상에 앉자마자 하 대리가 준 웃음 요가 명함을 꺼냈다.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니 배를 잡고 호탕하게 웃는 사람들 사진이 보였다. 이것저것 적어 놓은 글을 보니 흥미가 가긴 했다. 표정이란 감정 상태에 대한 반응이지만 반대로 표정을 지어 감정 상태를 유발할 수도 있고, 혼자 할 때보다는 단체로 할 때 효과가 크다는 얘기였다. 여러 사람이 모여 서로를 보며 웃기 시작하면 실제로 좌측 대뇌 피질 전면부가 활성화되며 엔도르핀과 세로토닌이 생성된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좋았어. 한번 해 볼까? 샘플 영상이 있어 틀어 봤다. ‘웃음 구루’라 불리는 푸근한 몸매의 강사가 나와 웃음 요가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는 ‘자, 이제 영상을 보면서 절 따라해 보세요’라고 힘차게 외쳤다.




우선 어깨를 터시고,


당신을 주시하는 수많은 시선을 털어 내는 거예요.


당신을 꼬나보는 시선, 비판하는 시선, 비웃는 시선, 모두 털어 버리세요.


이제 박수를 치세요, 하하 하 하하하.


계속 그렇게 박수를 치세요, 하하 하 하하하.


숨은 크게 들이마시세요. 횡격막이 움직이는 걸 느끼면서 크게 들이마시고,


하하하, 하면서 날숨으로 웃음을 내보내는 겁니다.


짝짝짝, 하하하, 호호호.


짝짝짝, 하하하, 호호호.




영상을 따라 하는 사이 조금씩 웃음이 터져 나왔다. 15개 안면근육이 이완되고 수축하며 수십 개의 웃음이 만들어졌다. 영상 속 구루는 더욱 활기차게 율동을 더해 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몸은 진짜로 웃거나 가짜로 웃거나 차이를 몰라요.


다 같이 양치기 소년이 돼서 몸을 속여 봅시다.


이제 좀 크게 웃어 볼까요?


뇌를 꺼내 빤다고 생각하세요. 손빨래하듯 뇌를 문지르는 거예요.


나쁜 기억은 다 털어버리고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거예요.


뇌만 만져 주면 심장이 서운해해요. 심장도 한 번씩 주물러 주세요.


쥐었다 폈다, 피를 펌프질하면서 노폐물은 쓸어버리고 온몸을 정화하는 거예요.


박수를 치고, 웃음으로 모든 걸 털어 버리세요.


하하하, 호호호, 히히히, 헤헤헤, 으하하 하하.


하하하, 호호호, 히히히, 헤헤헤, 으하하 하하.


하하하, 호호호, 히히히, 헤헤헤, 으하하 하하.




구루는 호탕한 발성으로 동굴 속에서 웃음을 터트리듯 대기를 울리며 연신 웃음소리를 냈고 나도 따라 웃었다. 문득 모니터에 반사된 내 얼굴이 보였다.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책상에 앉아 유튜브를 보며 한 중년 남성이 억지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한편으론 내 모습이 우스워 웃었고 한편으론 홀로 앉아 유튜브를 따라 웃는 내 모습이 처연해 웃었다. 나는 안면 근육에 힘을 잔뜩 주고 입꼬리를 천장 끝까지 치켜올렸다. 노래방에서 목청 터져라 소리를 지르듯 웃음소리를 냈다. 머리는 약에 취한 듯 가볍기만 했고 정신은 어느덧 몽롱해졌다.


웃음은 내 삶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난 십수 년간 난 뭘 보며 이렇게 달려온 걸까? 6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7시가 되면 집을 나선다. 저녁 9시면 퇴근하고 서재에서 넷플릭스를 보다 잠이 든다. 주말엔 아내가 내 몫으로 쌓아놓은 집안일을 하고 연서 학원 라이드를 해 준다. 그런 생활이 매주 반복이다. 삶은 언제부터 반복 재생만 되는 레코드판이 돼 버렸을까? 나는 꼭두각시 인형이 되어 누가 당기는지도 모를 실을 따라 춤을 추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춤추는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미친 듯 웃음을 토해 냈다.


하하하, 호호호, 히히히, 헤헤헤, 으하하 하하.


하하하, 호호호, 히히히, 헤헤헤, 으하하 하하.


하하하, 호호호, 히히히, 헤헤헤, 으하하 하하.


억지웃음이 진짜 웃음이 된다는 말이 맞았다. 거짓은 진짜가 됐다. 너무도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에 탄구대소가 터졌다. 새로운 세상, 환희였다. 기도가 뚫리고 숨이 쉴 새 없이 뿜어 나왔다. 눈에는 어느새 그렁그렁 눈물이 괴어올랐다. 나도 모르게 책상 모서리를 짚고 고개를 숙인 채 가슴을 그러쥐었다. 정말 웃긴 건 그 와중에도 웃음이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와, 이게 진짜 웃는 거구나!


감동이 반, 신기함이 반이었다. 사기처럼 들리던 웃음 요가가 이렇게 효과가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한여름, 땀으로 흠뻑 젖은 몸에 냉수를 끼얹은 듯 시원했다. 신선한 숨이 몸 한가득 퍼져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러곤, 이제 정말 멈춰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웃음과 함께 들이마신 숨이 머리끝까지 차 있었다. 그런데 웃음을 멈추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폭탄주 때문인지 감기약 때문인지 턱관절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숨은 들이켜만 질 뿐 내쉴 수가 없었다. 찐득한 떡이 목에 걸린 듯 기도가 막히고 흉부에 거센 압박이 느껴졌다. 흉부를 아무리 조이려 해도 소용없었다. 폐는 이미 숨으로 가득했는데 전자동 펌프를 꽂아 놓은 듯 숨이 꾸역꾸역 밀려 들어왔다. 웃음은 소리 없는 절규가 됐다. 눈에 핏발이 서며 안구가 폭발할 듯 부릅떠졌다. 몸은 개구리 배처럼 부풀었다. 팔다리를 버르적대며 입을 뻐끔거려 봐도 꺼이꺼이 새된 소리만 힘겹게 새어 나올 뿐이었다. 극도의 공포와 통증이 한겨울 칼바람처럼 전신을 강타한 순간, 번쩍 머리가 하얘지며 난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정신이 들었을 땐 온몸이 으슬으슬하고 주먹조차 쥘 수 없었다. 절굿공이로 찧은 듯한 둔통으로 전신이 뻐근했다. 속도 메스꺼웠다. 의자를 잡고 일어서려는데 머리가 핑 돌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아내와 연서는 여전히 꿈나라인 듯 인기척도 없었다. 부엌으로 나와 벌컥벌컥 냉수를 들이켜고 찬물로 세수까지 하고 나니 그나마 정신이 돌아왔다. 어떻게 된 거지? 술이나 감기약 때문만은 아니었다. 웃음 요가를 따라 했고, 웃음 터진 후론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다 숨이 막혀 정신을 잃었던 거다.


맙소사, 그럼 내가 지금 웃겨 죽을 뻔한 건가?


문득 든 생각에 헤실헤실 다시 헛웃음이 나왔다. 웃음 때문에 기도와 폐를 막아 버린 상황과 그 상황이 웃음을 되찾겠다며 웃음 요가를 하다 벌어졌다는 게 웃겨서였다. ‘웃겨 죽을 뻔했다’라는 말에 이런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점 또한 허를 찌르듯 푹푹 웃음보를 건드렸다. 동시에 불안과 공포가 엄습했다. 숨을 내뱉듯 두어 번 웃음이 새 나왔을 뿐인데 구강에 힘이 빠지며 다시 몸이 통제가 안 되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난 입을 윽물고 애국가를 읊조렸다. 흥분을 가라앉히는 방법으로 떠오르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 효과는 있었다. 심장 박동은 느려졌고 허파의 요동은 차츰 잠잠해졌다. 고른 숨이 쉬어질 때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추리를 시작해 봤다.


특별히 한 일은 없었다. 유튜브를 따라 웃음 요가를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왜 웃음을 멈출 수 없었을까? 그냥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걸까? 마흔이 가까워질 때쯤 몸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건 뼈저리게 체감했다. 재채기를 잘못해서 허리가 새우등처럼 곱아드는가 하면 계단을 오르내리다 근육이 땅겨 몇 주를 고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일은 나이를 먹으며 나타나는 노화의 징후와는 확연히 달랐다. 분명 웃음을 멈추려 했는데 아무리 안면에 힘을 줘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내 몸의 통제권을 잃은 듯 말이다. 정신이 몸에서 분리되어 정신없이 웃는 날 관찰하고 있었고, 난 꼭두각시 인형처럼 근육 하나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술도 진탕 마셨고, 감기약까지 먹긴 했지만, 몸이 이렇게까지 반응하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어딘가, 내 몸은 고장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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