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잃어버린 낙원
뜬금없이 웃음 얘기가 튀어나온 건 팀원들과 커피타임을 가질 때였다.
얼마 전 부장으로 진급했을 때만 해도 삶이 좀 달라질 줄 알았다. 아무리 호봉제나 연공서열제가 없어졌다 해도 연차가 높아짐에 따라 진급하고 직위에 따라 책임과 권한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평호칭제라는 게 도입됐다. 부장으로 진급했는데 부장이란 호칭이 없어진 것이다. 인사과에선 ‘부장’ 승격을 축하한다는 메일과 호칭을 ‘부장’ 대신 ‘님’으로 통일해 달라는 메일이 동시에 날아왔다. 사내 메신저에 직급과 사번은 사라졌고 승진 여부는 본인에게만 통보됐다. 부장으로 진급하긴 했는데 그걸 공식적으로 아는 사람은 나와 인사과밖에 없었다. 그럼, 난 ‘부장’이 아니라 그냥 ‘님’으로 승격한 게 되는 건가? 아니, 호칭이 ‘님’으로 통일되는 거니 승격도 무의한 거 아닌가?
내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것도 아니고 수순에 따라 관례상 진급한 건 맞지만, 주위에서조차 쉬쉬하는 분위기니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공개석 박수 세례 속에 사령장이라도 받는 분위기라면 승격자로서 어떤 사명감이나 각오 같은 게 생길 텐데 말이다. 직장인에겐 월급과 진급밖에 없다는데 사원으로서 마지막 진급은 너무도 김빠지는 이벤트가 돼 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따라 회사에서 내 위치를 가늠할 수가 없다. 그건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내 커피숍이 있는 테라스 정원에 삼삼오오 모여 대화가 시작되면 어디에 어떻게 끼어야할지 도통 감을 못 잡겠다. 한두 번씩 추임새를 넣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가벼운 사내 가십부터 다소 무거운 커리어 고민까지 내가 낄 수 있는 대화는 없다. 그날 공 차장과 하 대리가 논하던 주제도 그랬다.
“웃음 요가라고?”
“맞아요. 모여서 그냥 웃는 거예요.”
“근데 레슨비가 무슨 20만 원이나 해? 강사가 유명 코미디언이라도 되는 거야?”
“웃겨서 웃는 게 아니라 그냥 웃는 거라니까요. 이게 나름 과학적이에요. 왜 하품도 한 명이 하면 따라 하잖아요. 웃는 것도 그렇더라고요. 처음엔 그냥 웃다가 다 같이 웃으면서 전염된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냥 강사 하는 대로 따라 하면 자연스레 스트레스가 풀려요. 근육은 이완되고, 마음도 편해지고.”
듣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고작 웃으려고 한 달에 20만 원을 낸다니. 요즘엔 뭐 하나를 해도 돈이다. 얼마 전엔 아내가 연서 ‘카트휠’ 레슨을 받아야 하는데 애들 세 명을 모아서 한 시간 반짜리 레슨을 6만 원에 하기로 했다며 좋아하는 거다. 당시엔 카트휠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애들 모아서 학원비 절약했구나 하고 넘어갔다.
일주일쯤 지나고 아내가 동영상 하나를 보내왔다. 드디어 카트휠 레슨을 시작했다는 거다. 화장실에 앉아 음 소거를 하고 동영상을 튼 순간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어정쩡한 몸짓으로 연서가 하고 있는 건 고작 옆 구르기였기 때문이다. 당장 구글링을 해 봤다. 카트휠. 그러니까 한국말로 하면 ‘수레바퀴’인데, 수레바퀴처럼 옆 구르기를 하는 게 카트휠이었다.
옆 구르기를 하러 레슨을 받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유치원에 갓 입학하고 바이올린 레슨을 시작했을 때나 아직 키보드 자판에도 익숙지 못한 연서를 코딩학원에 보냈을 때도 그냥 넘겼다. 그런데 옆 구르기가 웬 말인가!
그때 문자 메시지가 왔다.
[현대카드 승인 올림픽 짐내스틱 720,000원 3개월 무이자 할부]
변기를 박차고 일어설 뻔했다. 아내는 매달 내 월급 대부분을 생활비 명목으로 수금해 갔고 내 명의로 된 신용카드도 가지고 있었다. 카드를 자주 쓰진 않았지만 가끔 이런 식으로 치명타를 날렸다. 그때마다 난 무방비 상태로 정강이를 까인 듯 눈물을 머금고 마이너스 통장에서 카드비를 메꿔야 했다. 아껴야 한다고 하소연해도 소용없었다. 모든 지출에는 명분이 있었고, 특히 그게 연서를 위한 거라면 하나뿐인 딸에게 그것도 못 해 주냐는 격정적 호소로 반격했다.
대놓고 방만히 예산을 낭비한다면 파산이라도 선언할 텐데 아내는 항상 바늘로 손가락을 딴 듯 따끔할 정도로만 예산을 초과했다. 여기저기서 그러모으면 겨우 메꿀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성을 내기도 어려웠지만 오늘은 달랐다. 거금 70만 원을 옆 구르기 수업에 탕진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되질 않았다. 허영에 찌든 누구누구 엄마들 등쌀에 떠밀렸거나 황새를 쫓아가려 스스로 가랑이를 찢은 거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이야말로 그간 쌓였던 울분을 설욕할 기회였다. 난 옆 구르기 레슨에 72만 원을 결제했다는 격분과 아내에게 일침을 가할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았다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전화기를 들었다.
“이거 뭐야?”
“레슨비.”
“무슨 레슨비?”
“카트휠 배운다고 했잖아. 동영상 보낸 거 못 봤어?”
“그걸로 72만 원을 결제했다고?”
“그래. 회당 6만 원씩 3개월분.”
“이딴 걸 레슨 받는 게 말이 돼? 옆 구르기 배워서 뭐에 쓸려고?”
“당신 바보야? 말이 카트휠이지 체조하고 스트레칭 수업이야. 몸은 한번 굳어지면 끝인데 이런거라도 해야 자세도 교정되고 할 거 아니야. 키 크는 데도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는 해?”
“그럼, 체조를 시키든가.”
“체조 레슨비가 얼만 줄은 알어? 지희네처럼 한국체대 학생 붙여서 제대로 하려면 수십은 더 깨져. 어차피 제대로 할 거 아니면 이렇게 하는 게 낫다고.”
“아니, 그래도….”
“배우는 게 그냥 배우는 건 줄 알어? 친구들하고 다 같이 배우는 거야. 연서 혼잔데 이런 거라도 같이해야 사회성도 키우고 할 거 아니야. 당신 좋아하는 돈 좀 아껴 보겠다고 다른 엄마들하고 시간 맞추고 해서 겨우 수업 짠 건데, 뭐라고?”
“….”
“더 할 말 있어?”
“….”
“바빠 죽겠는데 왜 이런 거 가지고 시비야? 할 말 없으면 끊어.”
머리가 핑 돌며 현기증이 생겼다. 울분의 설욕은커녕 본전도 못 뽑았다. 평소엔 구멍 송송 뚫린 막장 드라마에도 잘만 몰입하는 아내지만 나와 말다툼을 할 때면 아리스토텔레스도 쩔쩔맬 논리력을 발한다. 다시 한번 침묵과 수긍이 답이란 진리를 깨달았다. 어쩜 이리 나와 생각이 다를 수 있을까? 내가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웃음만 나올 일이었다. 옆 구르기를 돈 주고 배워야 하는 세상이라니. 하긴 물을 돈 주고 사 먹는다고 할 때도 처음엔 터무니없다고 했다. 이런 세상이니 돈 주고 웃는 법을 배우는 것도 그리 황당한 일은 아닐지 모른다.
“근데 선배님이야말로 이거 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요즘 너무 진지하시잖아요!”
커피를 한 손에 들고 느긋하게 손목을 돌리던 공 차장이 문득 날 보며 물었다.
“그래? 내가 그런가?”
“억지로라도 좀 웃으세요. 정 힘들면 정치 기사를 읽든가요. 아주 개판인 게 웃겨 죽겠다니까요.”
공 차장 말에 모두들 웃음이 터졌다. 웃음 요가 얘기를 꺼냈던 하 대리는 살웃음을 짓고는 무료강습 쿠폰이라며 내게 명함 한 장을 건넸다. 추천인으로 자기 이름을 언급해 달라는 얘기도 잊지 않았다. 난 명함을 주머니에 넣고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생각해 보니 마흔을 넘어선 웃어 본 일이 별로 없었다. 분위기를 맞추느라 억지 웃음을 짓거나 웃는 척을 한 적은 있어도 진심으로 웃음을 터트려 본 건 언제인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제대로 웃으려면 조커처럼 손가락 갈고리로 입이라도 찢어야 할 판이었다.
난 어쩌다 웃음을 잃어버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