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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세윤 Oct 21. 2024

19. 시간의 잔해

4부 낙원을 향해


“이제 좀 일어나, 아빠.”


연서 목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연서는 차 앞자리에 있던 나를 흔들며 깨우고 있었다.


“어, 연서야.”


“도대체 얼마나 자는 거야. 나 한참 기다렸단 말이야.”


“그랬어?”


혼몽한 가운데 주위를 둘러보니 뮤어 우즈 주차장이었다. 여긴 언제 왔고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아빠, 근데 여기 문 닫은 거야?”


연서가 입구 쪽 안내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전히 침침한 눈을 비비며 안내판을 보니 커다랗게 쓰인 안내 문구가 보였다.


‘산불로 인해 추가 안내가 있을 시까지 공원을 임시 폐쇄합니다.’


폐쇄했다고? 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차에서 내려 안내판 쪽으로 걸었다. 산책로 입구는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었고 그 뒤로 거뭇거뭇하게 산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세쿼이아 나무가 보였다. 


“이 나무들 진짜 크다. 제대로 보면 좋았을 텐데.”


나를 따라 차에서 내린 연서가 높다란 

세쿼이아

를 보며 말했다

.


“그래도 이렇게라도 봤으니까 됐어. 이제 가자, 아빠.”


“어, 그래.”


“근데 아빠 악몽이라도 꾼 거야? 잠꼬대하면서 눈물까지 흘리던데.”


“아빠가 그랬어?”




정말 꿈이라도 꾼 걸까? 운전대를 잡으며 생각했다. 차를 모는 동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생생했던 일련의 장면들은 끓는 물에 넣은 얼음조각처럼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일그러지며 무의식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던 연서는 따뜻한 햇살에 노곤해졌는지 다시 잠이 들었다.


아직 꿈에서 현실로의 접점을 찾지 못했고, 현실은 아지랑이처럼 흐물거리며 대기를 떠돌았다. 아내의 이야기가 들렸다. 절규하던 목소리와 한 맺힌 울음소리는 오래된 기억처럼 아련해졌다. 101 고속도로를 따라 샌프란시스코만에 들어서며 점점 아내가 보고 싶어졌다. 넌 어떻게 그 모든 걸 견뎌 냈을까? 넌 어떻게 혼자서 그렇게 무심한 나와 함께 살면서 연서를 키워 냈을까? 지난 10년간 그녀 삶을 바꿔 놓았을 수많은 고초와 고난을 생각했다. 너와 내가 함께 보낸 세월은 우리 삶에 어떤 모습으로 담겨 있는 걸까? 잊혀 버렸던 수많은 순간들이 언어로 피어났다. 잃어버린 시간 속에는 잊어버린 추억과 의식하지 못한 경험과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숨어 있던 그 모든 감정과 기억 들을 떠올리는 동안 삶은 점점 더 미스터리해졌고 그러면서 경이와 경외로 가득한 이 현실이 새삼 덧없게만 느껴졌다. 난 무엇을 위해 이리도 앞만 보고 달려왔을까? 노쇠해 가는 신체와 잃어버린 웃음. 단절된 소통. 쌓여 가는 울화. 이 모든 게 무상하게만 느껴졌다.


쓰러진 듯 앉아 있는 연서 옆으로 희미하게 마들렌의 실루엣이 그려졌다. 마들렌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아내의 기억 속에서 마들렌은 사라져 버렸을까? 하지만 그 아픔이 그녀에게 여전히 존재하는 건 사실이었다. 돌덩이나 쇳덩이처럼 묵직하게 가라앉았다면 심해 깊숙이까지 헤엄쳐 들어가 꺼내 올 수 있을 텐데 마들렌은 어떤 화학 반응에 흐트러진 듯 흔적도 찾을 수 없게 아내의 모든 정신에 흩뿌려져 있었다. 그녀의 고통은 분명 그녀의 마음 어딘가에 있는데 그게 어디인지 아무리 손가락을 내밀어 봐도 가리킬 수 없었다. 불러내고 싶어도 ‘마들렌’이란 음절 하나하나가 어느새 공기 사이로 흐드러지며 아무런 소리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그 소리가 비수처럼 날카로운 강철 검이 되어 아내 마음속에 쌓이고 있던 거다. 아주 서서히 그녀의 오장육부를 난도질하며 그녀를 나락으로 빠트리고 있었다. 나는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그녀를 외면하고 살아왔던가! 어떻게 그녀의 아픔을 이리도 모르고 있었을까? 운전하는 동안 내 정신은 여전히 마들렌이란 세 단어에 붙들려 있었고 나는 무한히 펼쳐지는 시공간을 따라 그 이름 세 글자에 엮인 역사를 돌아보고 또 돌아봤다.




호텔에 가까워질수록 아내에 대한 내 연민은 깊어만 갔고 한때 소녀스러운 행복으로만 가득했던 그녀 삶이 이리도 비참히 무너져 버린 광경을 내가 목격하고 방치했다는 게 실로 믿기지 않았다. 그녀의 정신이 이리도 허물어지기까지 그녀는 얼마나 오랜 기간 이 커다란 압박을 견뎌야 했던 걸까? 나는 어쩌자고 그녀를 홀로 사지로 몰아세운 뒤 그녀가 감내해야 했던 그 모든 고통과 고뇌를 잊고 있던 걸까? 


호텔에 도착하자 연서는 엄마가 보고 싶다며 뛰쳐나가듯 차 문을 열고 호텔 엘리베이터 앞으로 뛰었다. 나는 연서를 뒤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 스위치를 누르는 손동작이나 호텔 복도를 내딛는 발걸음이 새삼 타인의 몸동작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내 정신은 여전히 마들렌과 과거에 사로잡혀 있었다.


“삑. 딸칵.”


문에 카드키를 대자 걸쇠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반쯤 밀어젖히자 틈새로 아내 모습이 보였다. 아내 얼굴엔 무언가 생의 활기나 삶의 약동이라고 할 만한 기운이 빠져 있었다. 편두통이 있는지 한 손으로 머리를 받쳤고 휘늘어진 몸을 침대 머리 판에 기댄 채 누워 있었다. 해쓱한 아내 모습이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졌다. 연하고 거친 연필로 스케치만 해 놓은 소묘 같았다. 거친 선이 그녀를 감싸며 밀봉된 미라처럼 가둬 놓는 듯했다.


“엄마!”


뒤에 있던 연서가 문틈 새로 고개를 내밀더니 방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무망중이던 아내는 마법에서 풀린 듯 생기를 띠며 웃음꽃을 틔웠다. 환한 웃음과 함께 흑백 세상도 본연의 색을 되찾았다. 연서는 신발을 벗어젖히고 곧장 침대로 달려가 아내 품에 안겼다.


“잘 갔다 왔어 연서야?”


“보고 싶었어, 엄마.”


“그래, 엄마도 연서 보고 싶었어. 뮤어 우즈는 어땠어?”


“큭큭. 아빠가 또 아빠했어. 갔는데 공원이 문 닫았대.”


“그럼 거기까지 가서 아무것도 못 보고 온 거야?”


“아니, 안에만 못 들어가고 밖에서 보긴 봤어.”


연서는 세쿼이아 나무가 얼마나 컸는지, 마운틴 라이언을 보고 싶었는데 조심하라는 안내판만 봤다느니 하며 목소리를 한껏 높여 얘기했다. 아내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조금 힘이 빠지고 생기를 잃긴 했지만 그 힘겨운 모습 안엔 여전히 내가 알던 그녀도 담겨 있었다. 나는 침대에 앉아 얘기하는 아내와 연서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무언가 울컥하는 마음에 화장실로 들어갔다.




물을 틀고 세면대 모서리를 짚으며 기댔다. 심부 깊은 곳에서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 솟아올랐다. 눈물 한 방울이 툭 하고 떨어졌고 내 영혼은 허물어진 담벼락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아내는 여전히 악몽 속에 살고 있었다. 마들렌의 영혼이, 그리고 그 아이가 끌고 온 어둠의 망령이 아내에게 달라붙어 흡혈귀처럼 정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 무거운 짐을 가녀린 어깨에 이고 지금껏 살아왔던 걸까?


눈이 수도꼭지가 된 듯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발끝부터 물이 차올라 폐를 채우고 기도를 막았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아내는 이런 상태로 매일 매 순간을 살고 있는 거겠지? 절대적 폭력에 억압당해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견뎌 내고 있는 거다. 10년을 살았으면서도 난 아내의 삶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난 정말 모르고 있던 걸까? 아니다. 짙은 한숨 소리와 수시로 성을 주체 못 해 폭발하는 모습을 그렇게 보고도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안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 거부했을 뿐이다. 그녀가 공황 증세를 나타낼 때마다 난 그녀를 이해하고 공감하려다가도 어느새 치솟아 버리는 내 감정에 휩쓸려 그녀의 상처를 외면했다. 며칠전만 해도 피해자 가면을 걸쳐 쓰고 그럼 이혼이라도 하겠냐며 그녀를 겁박했다.


그녀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낼 수 없다는 걸 알고 그녀를 속이고 내 자신을 속이며 그녀를 겁박한 것이다. 치졸하고 비열한 놈 같으니. 그녀에게 벌어진 일은 모두 내가 언젠가 들었던 사실들이고, 이미 목격했던 순간들이었다. 난 그 모든 단서를 거부하며 내 무의식 깊은 곳에 처박아 백만 조각짜리 퍼즐처럼 흐트러트려 놓았던 것이다. 아내는 그래서 침묵으로 일관했던 걸까? 아내가 겪은 일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알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척 연기하는 날 보며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알면서도 모르는데 말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라면 죽어도 아내 심경은 이해하지 못할 테니, 얘기해 봤자 오해와 편견만 불러일으킬 테니 아내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피식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런 아내를 앞에 두고 난 고작 말다툼 한번 했다는 이유로 플라토닉 이별이니 나와의 헤어짐이니 하며 말장난을 해댔다. 아내가 느꼈을 두려움과 불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체머리를 흔들며 짜증만 냈다. 언젠가 아무 생각 없이 ‘마들렌’이라는 이름을 던졌듯 ‘이혼’이란 단어를 그리 쉽게 뱉어 버렸다. 그 단어에 무게가 생기고 가시가 돋아 그녀 영혼에 지워지지 않는 피멍울을 각인시킬 걸 뻔히 알면서 말이다. 어쩜 이리 철이 없고 이기적일까? 그 이름 하나 때문에 마들렌은 존재하게 되었고 아내는 그 존재를 포기했다는 죄책감에 끝없는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렀고 가슴이 들썩이며 헛웃음이 터졌다. 동시에 꽉 막힌 하수구처럼 가슴이 무지근해졌다. 우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한계들과 선천적인 모순을 가지고 살아간다. 아내의 아픔이란 나에겐 불가해한 사적 아픔이었다. 그 어떤 누가 다른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입이 멸구된 듯 숨을 쉴 수 없었다. 내 몸에 꼭 맞게 짜인 석관이 전신을 뒤덮었다. 몸 위로 바윗덩이가 올려져 날 짓눌렀다. 난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검세게 석관에 들이끼일 뿐이었다. 바위에 짓눌려 숨이 정수리까지 들이차던 순간 심곡 깊이 압살되어 있던 기억의 파편 한 조각이 폭발했다. 막혔던 숨과 함께 진실을 토해 냈다.


10년 전, 샌프란시스코 맥키트릭 호텔 주차장에서 아내가 차에서 내린 후 난 글로브박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동시에 동공을 확장해 흐릿하게 초점을 풀었다. 피로 탓에 시선이 잠시 요연해진 것뿐이라고 나 스스로에게 둘러댔다. 글로브박스에 초점이 맞춰지기 전 난 다시 고개를 돌렸고 서둘러 차 밖으로 나갔다. 그때 글로브박스 안에는 출발하기 전 챙겨 놓은 콘돔 한 박스가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이대로 아내가 한국에 들어가 버리면 둘째를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뿐이었다.


나쁜 새끼!!!


그랬다. 모든 건 내 하잘것없는 욕망 때문에 시작된 것이었다. 육체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준비가 되지 않았던 그녀를 내가 유린한 것이었다. 이 지옥이 탄생한 건 나라는 악마에 의해서였다. 기억이 되살아나며 그 치기 어린 전행으로 뒤바뀐 아내의 모습이 하나하나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순수하기만 했던 한 소녀의 영혼이, 내가 지켜 주리라 만인 앞에서 맹세했던 한 소녀의 영혼이 고통과 상처로 참절하게 망가지는 잔혹사를 목격했다. 난 세면대를 움켜쥐고 털썩 주저앉았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닦으며 속죄하고 또 속죄했다. 내가 알고 있다는 걸 몰랐기에, 인정할 수 없었기에 하지 못했던 말이 소리 없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아니야, 넌 마들렌을 포기했던 게 아니야. 넌 나와 연서와 네 아버지를 위해 너 자신을 포기했던 거야. 넌 희생자야. 바보처럼 너 자신을 희생한 순교자일 뿐이야. 네 잘못이 아냐. 내가 너에게  돌을 던진 거였어. 마들렌을 죽인 것도, 널 죽인 것도 다름 아닌 나야!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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