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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세윤 Oct 23. 2024

20. 앨커트래즈

4부 낙원을 향해


앨커트래즈 페리 예약 시간은 아침 10시였다. 일찌감치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나갈 채비를 마쳤다. 연서는 기도하듯 두 손을 꼭 모으고 눈동자를 빙그르르 굴리며 달뜬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내는 아침부터 이것저것 챙기며 부산을 떨었다. 고작 30분짜리 페리를 타는데 말이다. 나는 늦겠다며 아내와 연서의 등을 떠밀다시피 데리고 나왔다. 해변을 따라 엠바카데로 길에 있는 33번 부둣가까지 걸었다. 부둣가는 벌써 앨커트래즈 크루즈를 타려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연서는 멀리서 앨커트래즈 간판을 보고는 손을 쫙 뻗어 가리키며 뛰기 시작했다. 아내는 뭐 하냐는 듯 나에게 눈을 흘겼고 나는 한숨을 한번 푹 쉬고는 연서를 뒤따라 뛰었다. 크루즈선은 30분에 한 번씩 출발했는데 이제 막 9시 30분 배가 승선을 마치려 하고 있었다. 잔교 입구 쪽이 시끌벅적해서 보니 안내원이 마지막 승선객을 채우려 아이를 동반한 일행들은 먼저 타라며 손짓하고 있었다. 나는 바로 연서 목덜미를 잡고 아내를 부르며 뛰었다. 몇 걸음 달려 입구에 달하자 안내원은 숨을 헐떡이는 우리를 보고 피식 웃으며 들어가라는 듯 손짓했다. 이게 뭐라고 나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고 연서는 웃는 아내 손을 잡고 깡충깡충 뜀박질하며 배에 올랐다.


도심 속 감옥 섬은 영화 세트장을 방불케 했다. 생각해 보니 이곳에 몇 년을 살았어도 앨커트래즈는 처음이었다. 익숙함과 낯섦이 한 시공간에 혼재되며 생경함이 느껴졌다. 연서는 한껏 벼른 듯 그 비현실적인 시공간을 제집처럼 누볐다. 가이드 이어폰을 귀에 푹 꽂고는 쇠창살을 넘나들고 죄수 프로필을 살피면서 탐구열을 발했다. 아내는 행여 길이라도 잃을 까 연서를 쫓아다니기 바빴고 나는 역시 그 뒤를 쫓았다. 1시간쯤 미로 같은 길을 따라 감옥 내부 투어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햇살이 쨍하게 쏟아졌다. 크루즈선을 탈 때만 해도 아침 안개가 촉촉이 남아  있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은 청명하기만 했다. 선선한 바닷바람과 잡티 하나 없이 파란 하늘을 보니 가슴이 뻥 뚫렸다. 연서는 섬 끝자락에 있는 난간까지 달려갔다. 그러곤 한참 동안 바다 한가운데 높다란 두 기둥 사이로 늘어진 금문교를 바라봤다. 아내는 바닷바람에 날리는 카디건 옷자락을 잡아당겨 팔짱을 끼면서 연서에게 다가갔다. 얼굴엔 미소가 떠올랐다. 아내를 잠식했던 악몽의 먹구름이 일순 아침 안개 걷히듯 사라졌다. 그런 아내를 보자니 다시금 숨이 차오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넌 어떻게 그 모든 걸 견뎌 냈니? 난 어쩜 그리 머저리처럼 널 이해하지 못했던 거니? 


순간 길가 한쪽으로 왜가리 한 마리가 운석 떨어지듯 털썩 내려앉았다. 평소 히치콕의 <새>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영화라던 아내는 꺅 소리를 지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연서는 그 모습을 보고는 배를 움켜잡고 낄낄거렸다. 아내도 놀란 자기 모습이 웃겼는지 연서를 따라 웃기 시작했다. 시공간의 흐름이 멈춘 듯 데자뷔가 떠올랐다. 언젠가 내가 상상했던 그림이 앨커트래즈란 캔버스 위에 그려지고 있었다. 그림 위론 아내의 웃음소리와 연서의 웃음소리가 공명하며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처럼 경쾌하게 울렸다. 




“아빠, 아빠!”


아내와 함께 웃던 연서는 나 혼자 뒤에서 멍하니 서 있는 게 마음이 쓰였는지 갑자기 나를 향해 휙 몸을 돌렸다.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풋. 개봉박두란 말은 또 어디서 주워들으셨는지. 연서는 갑작스레 표정을 굳히더니 천천히 어깨를 들썩이며 둠칫 두둠칫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춤을 추는 것도 아니고, 체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앞뒤로 몸을 움직이는 게 신묘하기 그지 없었다. 연서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부끄러운지 웃음보를 터트렸다 삼키기를 반복했다. 아내는 배꼽을 잡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나도 겨우 웃음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연서의 눈매에 날렵하게 힘이 들어가고 입술은 굳은 결의로 다져졌다. 잠시 몸을 멈추는가 싶던 연서는 두 팔을 높게 올렸다가 그대로 바닥을 향해 다이빙을 하듯 몸을 꺾었다. 그리고 내가 놀라워할 틈도 없이 팔로 땅을 짚고는 한 바퀴를 홱 하고 돌았다. 팔이 땅에 닿고 뒷발이 곧게 뻗으며 솟아오르는가 싶다가 순식간에 가속하며 멋들어지게 돌아갔다.


아! 카트휠!


몇 달 전만 해도 유치원 때 샀다가 아직 못 버린 허름한 매트를 펼쳐 놓고 도토리마냥 옆으로만 굴러다니던 연서였다. 레슨 몇 번 했다고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그렇게 세 바퀴를 연이어 돈 연서는 우쭐한 표정을 짓고 어깨춤을 추며 잔디 위를 돌아다녔다.


“많이 늘었지? 얘네 다음 달에 공연해. 유선이네 시댁에 국립발레단 발레마스터 있다 그랬잖아. 자선공연이 있는데 거기서 얘들 저 춤 추게 할 거래. 발레 공연 중에 애들 댄스를 끼워 넣는 컨셉인데 전에 카트휠 연습하는 거 보고 바로 그걸로 하겠다고 정했다지 뭐야. 그래도 얘 학적부에 쓸 거 하나는 생긴 거야. 국립발레단 현대무용 자선공연 출연! 70만 원 투자한 것치곤 괜찮지 않아?”


아내는 연서가 서울대 수석합격이라도 한 양 흐뭇한 미소를 보였다. 사실 10살 때 자선공연 출연한 걸 어디에 써먹겠나? 대학까진 아직 7, 8년은 남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정말 늘긴 늘었다. 예전엔 줄넘기만 시켜 봐도 무언가 자신감 없고 쪼그라드는 듯한 인상을 풍겼는데 이렇게 당당함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올 수 없다. 쳇. 옆 구르기라고 우습게만 봤는데, 그래도 시키길 잘하긴 했네.


그때 아내와 나와 연서의 모습이 묘하게 연결되어 하나의 연속체를 이루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광활히 펼쳐지는 무한의 공간과 생각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압축된 듯 단단하게 느껴졌다. 마치 태초부터 모든 게 하나였던 듯 그렇게 말이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내의 가슴 아픈 과거도 내가 꿈꿨던 장밋빛 미래도 모두 현실이라는 그물망에 피어나는 것이었다. 아, 현재란, 현실이란 이토록 풍성하기만 한 것이었던가! 악몽 같던 그녀의 과거에서 빠져나온 순간 내가 꿈꾸던 몽상 안으로 그녀가 들어왔다. 우리의 꿈은 연결되어 있었고 그건 그 무엇보다 강인하고 확실했다. 그녀와 나 사이 관계의 의미와 불확실성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그 간극을 뚫고 무언가 ‘관계’라는 게 얽혔다. 관계한다는 것, 그건 우리만의 언어를 만들고 우리만의 대화와 역사를 만드는 일이었다. 불확실한 두 존재가 만나 서로의 불확실함을 확인하며, 위태로운 서로의 상태로 인해 상처받고 고통받으면서도 서로를 위로하며, 과거를 품고 미래를 담아내는 모든 게 현실이었다. 생각의 흐름이 전류처럼 온몸을 타고 흘렀다. 눈과 귀와 코와 몸의 온 땀구멍을 타고 흘러넘쳤다. 그렇게 흘러넘친 기운이 아내와 연서를 집어삼키며 온 세상을 향해 뻗어 갔다. 몸을 주체할 수 없이 벅차오르던 감동이 전신을 강타했다. 그리고 꽃이 피듯 목젖을 지나며 세 음절 문장으로 울려 퍼졌다.


“사랑해.”


내 한마디에 아내는 고개를 갸우뚱하다 해를 등지고 나를 돌아봤다. 역광이 머리칼과 함께 출렁였고 단아한 아내의 실루엣이 햇살을 품고 반짝였다. 은빛 실루엣에서 생기 넘치는 음성이 울려 퍼졌다.


“피, 뭐래. 이렇게 쉬운 걸 자주 좀 해 주면 뭐가 어떻게 돼?”


아내는 한 걸음 다가섰고 실루엣 뒤로 해가 넘어가며 아내 얼굴이 보였다. 아내 눈동자는 찬연히 빛났고 입가엔 축포가 터지듯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녀의 가녈한 섬섬옥수를 따라 흐드러진 빛가루가 퍼졌다. 20년 전 소개팅 자리에서 새치름한 너와 처음 눈이 마주쳤을 때 ‘어, 얜 뭐지?’ 하며 나도 모르게 느꼈던 끌림,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몇 개월 만에 만났을 때의 설렘, 너무 긴장해 무언가 엄청난 일을 치렀다는 기억만 남은 결혼식, 태어난 지 이제 갓 100일 된 연서 양손을 잡고 처음 걸었던 발걸음, 우리가 공유했던 그 모든 순간이 켜켜이 쌓이며 풍경화 같은 모습으로 피어났다. 


그 찰나의 순간 난 내가 아내를 이해하고 있다고 느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던 그녀의 행동들이 이해됐고 그녀가 왜 울고 웃으며 아파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래서 그냥 잊고 침묵하려 했는데, 그 어떤 논리나 설명 없이 번개가 하늘을 관통하고 섬광을 남기듯 번쩍 이해됐다.


아내는 분명 그녀만의 사적 언어로 쓰인 하나의 세계였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모두 스스로에 갇힌 사밀한 존재일 뿐이었다. 아무리 읽으려 해도 읽을 수 없고, 소통하려 해도 소통할 수 없는 벽에 가로막힌 그런 존재였다. 난독증에 걸린 듯 서로를 읽을 수 없고, 불치병에 걸린 듯 태생적으로 부조리한 삶을 치유할 수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 이 순간 아내의 사적 언어가 읽혔다. 그녀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건 여전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문자로 쓰여 있었지만, 그 언어를 꿰뚫고 그 속에 담긴 본질이 인지됐다. 


내 앞에 서 있는 너란 사람은, 내 기억 속 어딘가 존재하는 너라는 환상도 아니고, 나로서는 표현하거나 인지할 수 없는 어떤 초월적 존재도 아니었다. 그건 또한 무한히 연결된 ‘우리’의 연속체였다. 이 찰나의 순간 나 자신의 경계를 초월해 어떤 종교적 경외감과 황홀감에 휩싸였다. 그건 나를 얽매고 구속하는 현실과 언어와 관습과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 어떤 초월적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너도나도 불치병에서 일순간이나마 치유되는 놀라운 연대감과 일치감을 느꼈다. 너와 내가 함께 했던 추억이 떠올랐고 미래를 생각하며 설렜던 마음이 파도로 물결쳤다. 그 순간순간의 경험을 이루는 뉴런이 점화하며 별처럼 빛났다. 그리고 은하수가 물결치듯 모든 빛이 연결되며 장엄하고 위대한 서사가 현현했다. 이 순간 너와 나는 하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스냅숏이 찍히듯 이 찰나가 뇌리에 각인됐다.


순간, 멀리 바닷바람을 타고 앨커트래즈 크루즈선의 뱃고동 소리가 울렸고 어디선가 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나풀대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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