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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단위

by 불멍

학창 시절, 30분 단위로 알람을 맞춰두고 공부하던 때가 있었다. 하나의 유닛을 30분으로 설정하고, 그 시간 안에 달성할 목표를 정해 집중했다. 학력고사 시절, 집중력을 유지하면서도 짧은 시간 안에 성취의 피드백을 얻을 수 있었던 그 방식은 나름 효과적이었다. 30분은 너무 길지도, 너무 짧지도 않은, 나름 균형 잡힌 시간이었다.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느끼는 일주일은 유독 길다. 또다시 시작된 한 주를 어떻게 넘길 것인가, 쉼 없이 달리기에는 이제 체력이 부족하다. 젊은 시절처럼 외연을 넓히기보다, 이제는 깊이를 추구하자고, 가지를 뻗기보다 뿌리를 튼튼하게 만들자고 스스로를 설득해보기도 한다.


연말에 되돌아 보는 1년은 너무도 빠르다. 뭐 한 것도 없는것 같은데 어느새 또 12월이 되었고 한 해를 마무리 해야한다는 사실이 생경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돌아보면 철들고 난 후, 한 해도 쉽게 지나간 적은 없었던것같다. 다사다난이라는 표현이 너무도 적당할만큼 항상 일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또 그렇게 지나갔다.


막내의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단둘이 찾은 강릉 바다. 영겁의 시간을 넘어 무한히 반복되어 왔고, 앞으로도 내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시간 동안 이어질 파도의 흐름. 젊은 시절의 부모님과 함께 왔던 이곳에, 지금은 나와 아이가 함께 서 있다. 같은 공간이지만, 서로 다른 시간을 품고 있다.


시공간은 늘 함께 존재해온 것일까, 아니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내가 인식하고 느끼고 바라보는 이 시공간은, 먼저 이 세상을 살다 떠난 이들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몸을 통해 지각된 세계는 시간 속에서 중첩된다고 말한다. 같은 공간에 서 있어도, 그 공간을 통과한 시간과 기억은 사람마다 다르게 포개진다. 지금 내가 바라보는 이 바다는 현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미 지나간 젊음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기억일지도 모른다.


시간의 단위 속에서 나 또한 언젠가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질 것임을 안다. 지금 이 순간은, 살아남은 누군가에게는 언젠가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함께 안다.


30분을 집중해 오늘 하루를 잘 살아보려는 노력,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기다리는 마음. 생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내 마음도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처럼 고요해질 수 있을까.


모든 시간의 단위속에서 내 마음은 여전히 끊임없이 파도치고 있다. 파도가 완전히 사라지는 바다가 없듯, 흔들림 없는 삶도 없다는 것을 안다. 다만 그 파도가 질병이 되지 않도록, 잘 흐르게 하는 것. 더 이상 파도를 없애려 애쓰기보다,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파도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단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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