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이야기_나의 형 라메쉬 1

이부작의 여행기

by 이부작

오늘 올려드릴 글의 내용이 깁니다.

그리고 이제 여행기도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네요, 남은 이야기의 중심에는 라메쉬형이 있습니다.

글을 쓰고 있으니 더 보고 싶은 라메쉬형과 꺼멀입니다.

곧 볼 수 있을까요? 아니 꼭 보러 가야겠습니다.

내 안의 신이 네팔에 있는 두 사람에게 인사합니다. '나마스떼'


[타멜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다]


짐을 찾고 출구로 나오자 수많은 택시 기사들이 달려 나왔다. 한 택시 기사에게 타멜까지 얼마냐고 물었다. 500루피를 달라고 했다. 나를 이곳에 처음 온 여행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무시하고 다른 택시로 이동하였다. 이번에도 택시 기사가 다가왔다. 400루피에 가자고 했다. 손가락 세 개를 보여줬다. 택시 기사가 흔쾌히 좋다고 했다. 300루피도 비싼 감이 있었지만 바가지는 아닌 것 같았다.


작년에 만난 한국인 PD는 공항에서 타멜까지 1000루피를 주고 왔다고 한다. 원래는 500루피 만 받기로 했는데 택시 기사가 1000루피를 받자 잔돈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 PD는 1000루피를 주고 내릴 수밖에 없었다. 네팔에서는 구두쇠처럼 너무 물건값을 깎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바가지를 써서도 안 된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인이 계속 바가지요금을 받아도 이의 제기를 하지 않는다면 다음에 방문한 한국 여행자에게도 분명히 바가지요금을 씌울 것이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경적소리와 사람들의 외치는 소리로 도로는 가득 찼고 오토바이와 자동차의 매연으로 사람들의 얼굴은 더욱 시커멓게 보였다. 어제의 고요한 포카라와는 전혀 다른 이곳은 매연의 도시 카트만두임을 절실히 느껴졌다. 20여 분간 숨 막히는 비포장도로를 열심히 달려서 타멜 안쪽 임페리얼 게스트 하우스 앞까지 도착했다.


짐을 들고 호텔로 들어가려는데 라메쉬 형의 오토바이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다시피 들어갔다. 수염을 깍지 않은 덥수룩한 모습에 예의 그 하회탈 같은 웃음으로 라메쉬 형이 나를 반겼다. 꺼멀도 반갑게 네팔 말로 인사하였다.


"형, 잘 있었어요?"

"오, 정말 대단해, 10일 만에 라운드를 끝마치다니, 네팔 사람들보다 더 빨라. 너무 빨라. 그런데 몸은 괜찮아?"

"네, 꺼멀이 옆에서 잘 보살펴줘서 무사히 끝낼 수 있었어요"


꺼멀을 바라보며 칭찬해 주자 꺼멀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라메쉬 형도 꺼멀에게 정말 수고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너무 고마워요, 금요일 오후에 한국 사람들에게 네팔 말을 가르치고 있으시다면서요?

그 수업은 어떻게 하셨어요?"

"걱정하지 마, 오전으로 시간을 바꿔서 이미 하고 왔어, 자 방으로 올라가자"


형이 카트만두에 와서 내가 처음 머물렀던 방을 다시 예약해 놨다.

짐을 옮기고 형과 함께 앞으로의 일정을 이야기했다.


"이제 뭐 할 거니?"

"내일 비행기가 이상 없이 뜨는지 체크해 보고 나서 선물을 좀 사야겠어요"

"알았어, 그럼 꺼멀은 여기서 쉬게 하고 우리 둘이 빨리 나갔다 오자"

형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기분이 좋아졌다.

"네, 그럼 너무 좋죠"


나는 즉시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당연히 신발은 샌들로 바꿔 신었다.

형이 꺼멀에게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말하고 우리는 게스트 하우스를 나왔다. 이번에도 역시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았다. 오토바이는 사람들과 차들로 홍수가 난 타멜 거리를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사방 군데서 경적 소리가 들렸다. 형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그런데 옆에서 오는 자전거가 우리 오토바이 쪽으로 돌진했고 형이 브레이크를 사정없이 잡지 않았다면 크게 부딪힐 뻔했다.


다행히 살짝 접촉을 해서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곳 네팔에서는 보호운전과 보험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 같았다. 무조건 목소리와 덩치가 큰 사람이 이기는 것 같았다. 우리도 2 대 1이니 당연히 이겼다. 형이 자전거 주인에게 카리스마 있게 주위를 줬다. 그 친구는 아무 말 못 하고 조용히 자신의 길을 갔다.


5분쯤 가자 타이항공 사무실이 보였다. 사무실에 들려 비행기 시간이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다시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와 오토바이를 맡겼다. 카트만두에는 오토바이 도둑이 너무나 많아서 조금만 방심해도 오토바이를 도난당한다고 한다. 이제는 타멜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쇼핑을 할 시간이었다.


"뭘 먼저 살 거니?" 형이 물어보았다.

"예쁜 가방이 많던데요, 우선 가방을 둘러보면 안 될까요?"

"응, 알았어"


대충 아무 가게나 들러서 사도 괜찮은데 형은 바로 핸드폰을 꺼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바가지만 안 쓰고 대충 사면 되는데......' 형이 몇 번 통화하고 나서 길을 앞장섰다.

타멜의 거리를 걸으면서 형이 파슈파티나트보우드넛, 그리고 나갈곶 등 카트만두의 여행 명소를 가보았느냐고 물어보았다.


"아쉽게도 시간이 없어서 카트만두에서는 많은 곳을 돌아다니지 못했어요,

내년에 오면 그때 가봐야죠"


형이 잠시 고민하더니 진지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내일 새벽에 일출 보러 나갈곶에 가자, 오토바이 타고 가면 그리 멀지 않아"


나갈곶은 해발 2164미터로 카트만두 동쪽 약 35킬로미터에 위치해 있으며, 히말라야산맥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일출 장소로 외국인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형 일도 바쁠 텐데 시간을 내서 억지로 나와 함께해 주겠다는 형이 고마웠다. 그리고 택시를 타도 1시간 30분 이상이 걸리는 길을 오토바이로 가자고 하는 형이 더욱 고마웠다.


"저야 너무 좋죠, 형은 안 바쁘세요?"

"어, 괜찮아, 아무 일 없으니깐 새벽에 가자"

형의 따뜻한 배려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우리는 미로 같은 길을 지나 예쁜 가방으로 가득 찬 한 가게로 들어갔다.

너무나 예쁜 가방이 많아서 눈이 아플 정도였다.


"마음에 드는 것 있으면 골라봐"라며 형이 말했다.


그런데 솔직히 가방의 형태며 예쁜 문양이며 이 가게 안에 있는 것 모두가 마음에 들었다.

그 많은 가방 중에서 고르고 골라 3개를 선택했다. 그러고 나서 형이 가격 흥정에 나섰다.

형과 아저씨가 열심히 대화를 나누었다. 네팔 말을 못 알아듣지만 분위기상 형이 가격을 많이 깎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형이 특유의 넉살 좋은 웃음을 보이자 사장 아저씨도 포기한 듯했다.

형이 다가와 마지막으로 물어봤다.


"진짜 마음에 드는 거지? 3개에 650루피야. 어때, 괜찮지?"

한 개에 최소 300~400루피 이상을 줘야 하는데 너무나 싼 가격이었다.

"너무 싼데요"

너무나 싼 가격에 놀라며 지갑을 꺼내 지불하려고 하자 형이 나를 막아섰다.

"알았어. 그런데 돈은 아직 빼지마. 내가 필요해서 산 것처럼 우겨서 깎은 거니깐 여기선 돈 내지 마. 우선 내가 계산할게"


형이 서둘러 계산하고 우리는 가게 밖으로 나왔다. 형이 너무 고마웠다. 가방 값 650루피를 형께 드렸다. 그런데 형은 500루피 만 받고 나머지는 괜찮다고 했다. 너무 미안해 계속 다 받으라고 했지만 형은 완강히 거부를 했다. 어쩔 수 없이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이번엔 근처의 팔찌 부품을 도매로 파는 가게를 찾았다.


형이 꼼꼼히 물어보더니 진품과 가짜의 차이점을 설명해 주었다. '혼자 왔으면 당연히 다 진품인 줄 알았을 텐데......' 히말라야에서 채집한 진짜 원석은 가격이 꽤나 비쌌다. 그래서 회사 직원들에게 나눠주기에는 가격이 부담되어 그냥 그곳을 나왔다. 그러다 여러 팔찌 가게를 돌아다니다가 저렴한 곳을 찾아 팔찌 5개를 만들어 달라고 하고 다시 털 모자를 구경하러 갔다.


그런데 이번엔 형이 상점 밀집 지역에 약간 벗어나서 일반 가정집들이 빼곡히 들어찬 타멜의 낯선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리곤 형이 어느 조용한 집 계단을 올라가서 문을 열고 누구를 찾았다. 아무 대답이 없자 아랑곳하지 않고 한 층을 더 올라가선 나보고 방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방안에는 모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형, 여기가 어디예요?"

"엉, 걱정 말고 아무거나 골라봐, 다 공짜야


형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바보처럼 아무것도 못 하고 모자들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그러자 형이 다시 말했다.


“여기 우리 누나 집이야"


알고 보니 이곳은 형의 이복누나가 사는 집이었다. 형이 꼬마였을 때 어느 날 아버지가 누나 손을 잡고 오셔셔는, "이제부터 이 애도 집에서 함께 살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후로 누나는 한 가족이 되었지만 다른 가족들은 누나를 좋아하지 않았고 형만 이복누나를 친 누나보다 더 따랐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도 이 누나랑 제일 친하다고 했다. 누나는 지금은 이곳에서 뜨개질로 모자, 가방, 장갑 등을 만들어 도매상에 납품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계셨다. 그래서 가방 3개를 샀던 가게도 누나가 사장님을 소개해 줘서 저렴하게 구입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누나에게 미안해서 도저히 그냥 받을 수 없었다.


"그러면 제가 돈을 지불할게요"

"아니야, 아니야, 누나가 절대로 돈 안 받을 거야"

"그래도 형, 마음이 정말 안 편해요, 돈 지불하고 살게요" 나도 계속 고집을 부렸다.

"아니라니 깐, 정말 괜찮아" 형도 고집을 절대 꺾지 않았다.


우리 둘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한 여성분이 들어오셨는데 형의 이복누나였다. 딱 보기에도 참으로 고운 얼굴이셨다. 그런데 처음엔 30대 후반인 줄 알았는데 현재 나이가 46살이나 되셨단다.

"나마스떼" 누나를 보자 먼저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인사드렸다. 온화한 미소로 누나도 내게 “나마스떼”라며 인사를 해주었다.


형이 내 소개를 해주었다. 누나는 웃으며 마음대로 다 고르라는 눈 빛을 보내주었다. 누나에게 미안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형은 걱정 말라며 방을 헤집고 흩으러 놓으며 계속해서 모자를 내 앞에 가져다 놓았다. 이러다간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서 대충 모자 2개를 골랐다. 형은 충분하지 않다는 듯 계속해서 물어보았다.


"2개로 괜찮겠어? 더 골라봐"

어쩔 수 없이 예쁜 겨울용 털 가방 1개와 겨울에 추울 때 발에 신는 덧신을 챙겨 넣었다.

이젠 정말 괜찮다고 몇 번을 말하고 나서야 집을 나올 수 있었다.

누나에게 인사하고 나오면서 나중에 꼭 작은 보답이라도 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가방 안이 선물로 두둑했고 내 마음도 형의 배려에 따뜻해졌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는 길에 선물용 팔찌도 찾았다. 그런데 숙소 가는 길에 형이 갑자기 생뚱맞은 질문을 하였다.


"오늘 방값이 얼마지?"

"300루피인데요"

형이 잠시 고민하더니 결론을 내린 듯 말했다.

"그러면 그냥 300루피를 지불하고 짐을 그곳 숙소에 보관하자. 그리고 오늘 식사하고 나랑 같이 나갈곶에 가자."

"내일 새벽이 아니라 오늘 저녁에요?" 형의 말에 깜짝 놀랐다.

“응, 오늘 가서 같이 1박 하고 새벽에 일출 보러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정말요? 저야 형이랑 술도 한잔할 수 있고 못했던 이야기도 할 수 있으니 너무 좋죠.

그런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


꺼멀은 항상 나에게 ‘노프라블럼’ 이라고 하는데 라메쉬형도 항상 ‘괜찮아’라고만 말하는 것 같았다. 나와 약속을 한 후 형이 또 전화를 꺼내 들더니 여기저기에 전화를 했다. 얼마 후 전화를 끊으며 밝게 웃었다.


"예약했어, 이제 돌아가서 꺼멀과 함께 식사하자"

형의 배려가 계속해서 나를 감동시켰다.

"형, 너무 고마워요. 그런데 한 가지, 꺼멀에게 수고비를 줘야 하거든요. 얼마를 주는 게 나을까요?”

정말 고생한 꺼멀에게 수고비를 줘야 하는 큰일 하나가 남아있었다.

"얼마 정도 생각하고 있니?"

"이곳에선 보통 포터 비용이 하루에 7~8달러 하잖아요. 저는 12달러씩 계산해서 13일을 함께했으니 156달러에 조금 더 얹어서 정확히 200달러를 주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 정도면

괜찮을까요?"(이부작 :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서 포터 일 비용이 20~25달러로 엄청 올랐습니다)

"엉 충분하다. 그 정도면 엄청 큰돈이야"


형은 내 말을 듣고 100% 괜찮을 거라 말했다. 작년 트레킹을 할 땐 꺼멀을 현지 한국 분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하루에 15달러씩을 미리 지불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꺼멀은 15달러 중에 8달러만 받는다는 것이다. 포터가 온몸으로 고생한 비용의 거의 반을 단지 소개했다는 이유로 받아 가는 게 내 정서에 맞지 않아서 이번엔 꺼멀에게 직접 이메일로 연락을 해서 중간에 커미션 없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고맙게도 꺼멀은 트레킹을 하는 도중에 단 한 번도 포터 비용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 나 또한 꺼멀에게 하루에 얼마를 줄까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냥 알아서 주고 알아서 받는, 어느새 우리는 서로를 믿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방에 들어가 보니 꺼멀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뜸 들이지 않고 꺼멀에게 너무나 고마웠다고 말하며 200달러를 주었다. 형이 꺼멀에게 네팔어로 간단히 물어보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혹시 200달러가 적다고 생각하느냐였다. 꺼멀은 절대 아니라고 너무 큰돈이라고 했다고 한다.


꺼멀이 서투른 한국말로 '고맙습니다'를 여러 번 반복했다. 네팔의 일반 노동자가 한 달에 평균 6000루피를 번다고 하니, 200달러면 14000루피가 넘는 금액이다. 그것도 13일간 일해서 번 돈이니 꺼멀에게는 매우 큰 금액일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진심으로 고마우니 마음 또한 가벼워졌다.


짐을 호텔에 놔두고 세 명의서 형이 잘 아는 티베트 탄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식당 안에 외국인은 나밖에 없을 만큼 타멜의 조그만 변두리 식당이었다. 여러 메뉴 중에 ‘탄뚝’ 이라는 음식이 괜찮다고 해서 세 그릇을 시켰다. 탄뚝은 모양새가 우리나라의 수제비와 비슷했다. 국물 맛을 보니 입맛에 딱 맞았다. 면또한 쫄깃쫄깃해서 우리는 아무 말도 않고 탄뚝을 후루룩 먹어 치웠다.


그릇들은 모두 다 비워졌고 세 명의 얼굴엔 구슬땀이 맺혔다. 하나도 남기지 않은 그릇을 재미 삼아 사진 찍었다. 1인당 60~70루피의 금액으로 이렇게 맛있게 음식을 먹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 맛 때문에라도 다시 네팔에 와야겠다.


그런데 식사를 하고 음식값을 계산하려는데 형이 또 먼저 계산해 버렸다. 형은 정말 못 말리겠다.

"그러지 마세요"라고 했지만 속 마음은 친형이 밥을 사준 것처럼 든든했다.

우리는 다시 타멜의 거리로 나와 나머지 달러를 환전하였다. 꺼멀도 내가 준 돈을 환전했다.

곧 있으면 네팔의 명절이라 이 돈이 꺼멀에게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환전까지 마치고 이제는 정말 꺼멀과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잠시 동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뜨겁게 포옹을 했다. 그런데 이런 우리를 지켜보던 라메쉬 형이 꺼멀 보고 내일 트리뷰반 공항에 비행기 시간에 맞춰서 나오라고 했다. 꺼멀이 괜히 없는 시간을 나 때문에 만들어야 하지 않나 걱정을 했는데 꺼멀도 흔쾌히 공항까지 오겠단다. 내일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조금은 가셨다.


꺼멀과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타멜의 거리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꺼멀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다. 두툼한 보너스를 받은 꺼멀의 발걸음이 룰루랄라 가벼워 보였다.

balloon-1836706_1280.jpg?type=w1
nepal-399_1280.jpg?type=w1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https://blog.naver.com/smile_2bu/223760912610


https://blog.naver.com/smile_2bu/224006148266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