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작의 시(모)방
글 이웃님들,
2026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습니다. 25년 한 해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26년에는 거침없이 질주하는 말처럼 말 달리고, 말하는 대로 이루어질지니, 병오년 새해 복되고 행복한 일만 가득 넘쳐나시길 기도드립니다.
오늘은 존경하는 윤동주 시인님의 '팔복'이라는 시와 이를 패러디한 이부작의 '팔퍼'를 짧게 소개해 드립니다. 윤동주 선생님의 '팔복'시에 대한 설명은 아래 나무위키 자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제 시를 감상하겠습니다. 목요일, 뜻하는 목표 모두 달성하는 화목한 새해 첫날 되세요~
새해 '팔복' 많이 받으세요^^
팔복_윤동주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마태복음 5장 3-12)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아멘
팔퍼_이부작
슈퍼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와퍼 먹는 자는 복이 있나니
밥퍼 듣는 자는 복이 있나니
리퍼 사는 자는 복이 있나니
골퍼 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서퍼 타는 자는 복이 있나니
백퍼 맞는 자는 복이 있나니
술퍼 마신 자는 복이 있나니
바로옆 바로앞 복을 모르는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이부작의 '팔퍼' 해석)
이부작의 팔퍼는 슈퍼를 운영하는 사장님과 와퍼 햄버거를 먹는 초등학생, 와이프의 밥퍼 잔소리를 듣는 남편, 그리고 새것은 아니지만 리퍼 핸드폰을 사는 대학생과 봄 가을에는 가끔 골프 치는 김부장과 여름에는 바다에 서핑하러 가는 신과장과, 수능 수학시험을 찍은 게 백 퍼센트 맞은 고3 수험생과, 회사 동료들과 회식자리에서 술 퍼마시는 직장인들 모두에게 복이 있을 것이라는 화자의 생각입니다. 즉, 우리 미생들이 이처럼 소소한 일상을 매일 누릴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복받는 일이고 행복한 삶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런 소소한 복_이미 우리 옆에 있고 앞에 있는 복을 못 보고 못 느끼는 사람은 영원히 슬프게 될 것이기에 이를 경계하자는 메시지입니다.
(나무위키_팔복)
윤동주가 창작한 시로, 성경 마태복음 5장 4절[1]에 나오는 '팔복(八福)'의 내용을 변용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1940년 12월에 쓰여졌으며 '병원', '위로'와 같은 시기에 쓰여졌다. 동일한 내용이 반복되는 단순한 구조이지만, 제목과 마지막 문장의 충돌로 인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독특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성경 원전이 모티프가 되었기 때문에 팔복의 해석을 위해서는 먼저 성경에 서술된 팔복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서 팔복은 산상수훈 중 첫머리를 이루는 가르침으로, 요약하면 세속적 가치와 대립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갖춰야 할 마음가짐, 윤리적 삶의 방향성에 관한 내용이다.
그런데 윤동주 시 '팔복'은 성경에서 언급되는 여덟 가지 복 대신, 두 번째 복에 해당하는 구절인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만을 여덟 번 반복하며 시를 구성한다. 또한 원래 누려야 할 복인 '위로'가 아닌 '영원한 슬픔'을 얻게 될 것이라며 시를 마친다. 이러한 형식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갖춰야 할 다양한 윤리적 덕목(온유, 정결, 화평 등)이 오로지 '슬픔'이라는 감정에 모두 잠식당한 것처럼 읽힌다. 이는 시의 배경이 되는 일제강점기라는 비극적 현실 앞에서, 그 어떠한 덕목보다도 민족적 고난에 대한 슬픔이 가장 강조된다는 점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해석된다.(중략)
AI의 감상평: 마태복음의 팔복, 윤동주의 「팔복」, 이부작의 「팔퍼」
ㅁ 마태복음 5장 3-12 ― 초월적 복
산상수훈의 팔복은 세상적 기준으로는 약해 보이는 자들—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에게 오히려 복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하늘의 나라와 영원한 상급을 약속하는 초월적 복의 메시지입니다.
ㅁ 윤동주의 「팔복」 ― 잃어버린 복
윤동주는 성경의 팔복을 변주하여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반복합니다.
그러나 끝에서는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라며, 위로 없는 현실의 절망을 드러냅니다.
이는 일제강점기의 시대적 고통 속에서, 신앙적 약속이 닿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한 부재의 복입니다.
ㅁ 이부작의 「팔퍼」 ― 생활 속의 복
이부작은 윤동주의 무거운 변주를 다시 일상의 언어로 풀어냅니다.슈퍼 운영, 와퍼 햄버거, 와이프의 잔소리, 리퍼폰, 골프·서핑, 시험 만점, 회식 자리의 술퍼…모두가 직장인과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삶의 장면입니다.여기서 “복”은 왜곡된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것 자체가 이미 복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 구절은 “바로옆 바로앞 복을 모르는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라 하여, 복은 멀리 있지 않고 이미 곁에 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슬플 것이라는 생활 철학적 결론을 제시합니다.
ㅁ 종합 감상
성경의 팔복: 고난 속에서도 하늘의 위로를 약속하는 초월적 복
윤동주의 팔복: 현실의 절망 속에서 위로가 닿지 않는 잃어버린 복이부작의 팔퍼: 소소한 일상과 경험 자체가 이미 복이라는 생활 속의 복
이렇게 세 작품은 시대와 맥락에 따라 복의 의미가 확장됩니다.
하늘에서 오는 복 → 현실에서 잃어버린 복 →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복.
조금 더 친근하게 말하면, 이부작은 “복은 이미 우리 곁에 있다”라고 웃으며 말한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