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작의 생각
늘 글은 매우 슬픈 이야기입니다. 아마 아래 '밥'에 대한 시를 보고 그 잔인한 상황이 머릿속에 접사 사진처럼 박히고 또 마음에 생채기가 나서 중간에 읽기를 멈추실 수 있을 겁니다. 끝에는 절망만이 남더라도 그래도 이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읽어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정호승 시인님의 『우리가 어느 별에서』 산문집에서 읽은 가장 슬픈 이야기를 글 이웃님들께 공유드립니다. 그건 바로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라는 탈북 시인 장진성 님이 지은 詩입니다. 세상의 어떤 부모가 감히 자신의 딸을 빵 몇 조각 값인 백 원에 팔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러한 일이 과거(?)에 북한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내내 너무너무 마음이 무겁고 슬펐습니다. 오늘은 그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슬프고 '절망적인' 이야기를 마음에 새기듯 이곳에 한 글자씩 기록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내일은 '자신의 딸을 백 원에 파는 엄마와 딸'에게 실낱같은 '희망적인' 스토리를 N 행시로 풀어보겠습니다. 지금도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모든 '절망'에게 쌍둥이 '희망'이 내일 0.1%의 가능성을 가지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위키백과 : 장진성은 대한민국으로 망명하여 활동 중인 북한 출신의 작가이다. 조선중앙방송위원회 TV 총국 문예부 기자,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101연락소에서 근무하다 2004년 망명, 2011년까지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근무, 이후 대북 전문매체 뉴 포커스 발행, 장진성은 2008년 시집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로 이름을 처음 알렸고, 이어 서사시 '김정일의 마지막 여자' 등 5편의 책 발간, 해외에 잘 알려진 그의 대표작으로는 2015년 랜덤하우스에서 출간한 '경애하는 지도자에게'이다. 세계 32개 민족어로도 번역 출간된 그의 대표작으로, 이를 계기로 장진성은 영국 더 타임즈 표지모델로, CNN 간판 아나운서인 크리스티안 아만푸어 뉴스쇼에 한국인으로서는 가수 싸이에 이어 두 번째로 초대받기도 했다.
[탈북시인 장진성 시집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_정호승 시인
슬프다. 이토록 슬픈 시집이 어디 있으랴. 아프다. 이토록 아픈 시집이 어디 있으랴.
눈물이 난다. 이토록 눈물 나는 시집이 어디 있으랴. 시집 어디를 펼쳐도 붉은 피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다. 그 눈물이 끝내는 내를 이루고 강을 이룬다.
그렇다. 이것은 시집이 아니라 ‘통곡’이다. 이것은 시집이 아니라 ‘분노’다. 이것은 시집이 아니라 ‘고통’과 ‘절망’과 ‘비극’이다. 그래도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서 마지막으로 부여잡고 놓지 않은 ‘희망’이다.
이 시집은 탈북 시인 장진성 씨 한 개인이 쓴 것이 아니다. 이 시집은 고통과 절망 속에 사는 북한의 모든 인민들이 쓴 시집이다. 북한에서의 삶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탈북자들의 아리고 쓰라린, 상처투성이의 마음이 저절로 모여 쓴 시집이다.
따라서 이 시집은 인간이 쓴 시집이 아니다. 시가 쓴 시집이다. 도저히 숨죽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시 스스로 인간에게 걸어 나와 쓴 눈물의 시집이다.
나는 이 시집을 익는 내내 고통스러워 읽기가 힘들었다. 먹먹한 가슴속에 크고 날카로운 돌 하나 박혀 빠지지 않는 듯해서 몇 번이나 책장을 덮었다가 펼치기를 되풀이했다.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가 왜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는 불가능하다"라고 했는지 그 까닭을 다시 한번 깊게 이해했다.
서정은 시의 중요한 본질 중 하나다. 나는 지금까지 시를 써오면서 서정의 물기가 촉촉이 배어 있는 시를 쓰려고 노력해왔다. 서정이 있어야 시가 문학적 완성미를 지닌다는 믿음을 저버린 적이 없다. 그러나 이 시집에서는 서정을 찾기가 어렵다. 서정도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야 존재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일깨워 줄 뿐이다. 그동안 내가 쓴 시들의 서정이 이 시집 앞에서는 너무 사치스럽고 부끄럽다.
구체 또한 시의 중요한 구성 요소 중 하나다. 나는 평소 시는 추상보다 구체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고
가능한 한 구체의 힘에 의해 시를 쓰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이 시집에 나타난 구체의 힘 앞에서 그동안 내가 쓴 시의 구체는 침으로 초라하다. 이 시집은 장진성 씨가 겪은 체험의 구체적 힘만으로도 읽는 이의 가슴을 벼랑 끝에 세운다.
이 시집을 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한마디는 바로 ‘생존’이다. 그리고 또 한마디를 더 덧붙인다면 바로 ‘밥’이다. 생존과 밥은 동질의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인간은 밥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집에는 생명, 즉 밥이 없다. 밥에 대한 절망의 처절한 부르짖음만 있다. 밥이 없기 때문에 생존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죽음의 고통 속에서 나뒹구는 모든 상황이 적나라하다. 시 한 편 한 편마다 생존에 대한 갈망과 자유에 대한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시집은 전체 5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에서 3부까지 40여 편의 시가 온통 밥과 굶주림, 그 굶주림에 의한 죽음을 있는 그대로 가감 첨삭 없이 드러낸다. ‘우리의 밥은’ ‘밥알’ ‘밥이 남았네’ ‘우리는 밥을 먹는다’ ‘밥이라면’ 등 밥이라는 낱말 자체가 그대로 시의 제목이다. 이 시들은 굶주림에 의해 생존을 위협당하는, 아니 결국 생존하지 못하고 축생처럼 죽어간 참상을 노래한다. 300만 명이 굶어 죽은 이 참상 앞에 굶주림을 경험해 보지 못한 남한의 시인인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옷깃을 여밀 수박에 없다.
우리의 밥은/ 쌀밥이 아니다/ 나무다/ 나무껍질이다// 우리의 밥은/
산에서 자란다/ 바위를 헤치고 자라서/ 먹기엔 너무 아프다 _'우리의 밥은’ 부분
이 시는 밥에 관한 서시 격의 시다. ‘밥이 나무껍질’이라고 말하고 있고, 밥이 논에서 자라지 않고 ‘산에서 자라’기 때문에 ‘먹기엔 너무 아프다’고 말하고 있다. 이미 쌀을 배급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초근목피 해야 하는 이런 상황은 보다 더 구체적으로 전개되고 너무 사실적이어서 마치 한 장면 한 장면 동영상을 찍은 듯하다.
쌀이 없는 집이어선지/ 그 집엔 숟가락이 없다_’숟가락’ 부분
멀건 죽물에/ 쌀알이 얼마나 섞인다고/ 어머니는 매끼마다/ 쌀 다섯
알씩 절약하셨네//알알이 모아지고/ 한 줌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밥
을 지으셨네/ 나에게 생일 밥 차려주셨네//더운밥/ 목메어 세어보니/
어머니가 그동안 못 드셨던/ 450개 밥알이었네_’밥알’ 전문
옥수수 몇 알씩 놓고도/ 우리는 말한다/ 밥 먹자고// 씁쓸한 나무껍
질 씹고도/ 우리는 생각한다/ 밥 먹었다고// 소금 탄 맹물/ 한숨에 마시
고도/ 그것도 밥이라고 한다// 밥/ 그 말조차 없다면/ 먹은 날이 없기에_’우리는 밥을 먹는다’ 전문
이 시들은 굶주림에 의해 생존의 기로에 서 있어보지 않은 자는 쓸 수 없는 시다. 일찍이 우리 시에
‘밥이 먹고 싶다’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이 본능적 사실을 이토록 처절하게 노래한 시들이 있었던가. 굶주림이 이러한 시를 낳았으나 이런 시는 애초부터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 시가 아니던가.
왜 집에 숟가락이 없겠는가. 먹을 밥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밥 먹을 숟가락을 한 줌 밥을 먹기 위해
팔아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끼니마다 다섯 알씩 쌀을 모으는 어머니의 심정을, 그 쌀로 생일 밥을 받은 아들의 심정을 남한에 사는 배부른 우리가 어떻게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옥수수 몇 알을 먹고도, 나무껍질을 씹고도, 소금 탄 맹물을 마시고도 밥을 먹었다고 말하는 상황, 즉 밥이라는 말로 밥을 먹는 상황을 나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다.
영남이는 오늘도/ 배고픈 우리에게/ 큰 소리로 자랑했다/ 자기는 어
제도 그제도/ 밥 세 끼 먹었다고// 애들은 소리 내어 웃었다/ 한 끼면
몰라도/ 새하얀 쌀밥을/ 세 끼나 먹었다는 그 말은/ 새빨간 거짓말_'새빨간 거짓말’ 전문
밥이라면/ 시퍼런 풀죽으로만 알던 아이/ 생일날 하얀 쌀밥 주었더니/
싫다고 발버둥 치네/ 밥 달라고 내 가슴을 쥐어뜯네_’밥이라면’ 전문
밥을 먹었다는 사실이 친구들에게 자랑이 되는 현실. 또 그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다 아는 현실은 그 얼마나 비극적인가. 쌀밥을 먹어본 기억이 없는, 시퍼런 풀죽만 먹던 아이가 생일날 하얀 쌀밥을 줘도 싫다고 밥 달라고 발버둥 치는 모습에서는 더 이상 시집을 읽어나갈 수 없다. 그러나 시집은 ‘밥이 사람을 잡아먹는 이 땅’이라고 노래하며 굶주림에 의해 인민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으로 계속 이어진다.
꿈속에서/ 아이는 무엇을 보았기에/ 간밤에 밖으로 달려 나갔을까//
꿈속에서/ 아이는 무엇을 보았기에/ 총을 쏘는 군대도 무서워 안 했을까//
꿈속에서 아이는 무엇을 보았기에/ 손에 그것을 꼭 쥐고 죽었을까//
그 꿈은/ 죽으면서도 놓지 않은 그 꿈은/ 작은 옥수수 하나_'아이의 꿈' 전문
이렇게 옥수수 하나 손에 쥐고 총에 맞아 죽은 아이. ‘제 목숨 하나 덜면/밥 한술 남는다며’ 사과나무에 스스로 목을 맨 손녀, ‘시체조’에 의해 역전마다 열차가 도착하면 죽어나가는 사람들, 학생들에게 ‘굶어도 배워야 한다고’ 애타게 호소하다가 죽어간 백발 교수, ‘눈 감겨줄/ 작은 손도 없어/ 제 그림자 깔고/ 여기저기/ 누워 있는 시체들’ 등 시인이 목격한 죽음의 참상은 참혹하다.
더구나 시인은 자신도 살인자라고 말한다. ‘출근할 때/ 눈물밖에 가진 게 없어/ 동냥손도 포기한 사람 앞을/ 악당처럼 묵묵히 지나쳤다/ 하여 퇴근할 땐/ 그 사람은 죽어 있었으니’ 시인은 ‘스스로의 심판에/ 이미 처형당한 몸’이라는 것이다. 어찌할 방도가 없어 그냥 지나친 것에 불과한데도 그 자체가 이미 살인과 마찬가지라는 인식은 시인이 이 시를 쓰게 된 깊은 내면의 한 단면이다. 그리고 시인의 이러한 깊은 사랑과 자책은 김일성 시신을 보관한 금수산기념궁전에 대해 이렇게 분노한다.
그 궁전은/ 산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다/ 수조 원을 벌려고/ 억만금을
들인 것도 아니다// 죽은 한 사람 묻으려고/ 삼백만이 굶어 죽는 가운
데/ 화려하게 일어서/ 우뚝 솟아서// 누구나/ 침통하게 쳐다보는/ 삼백
만의 무덤이다 _’궁전’ 전문
‘삼백만의 무덤’이 궁전으로 불리는 나라. 그 나라에서 시인의 눈은 인민들의 삶의 구석구석을 그려내는 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아침까지 ‘얼어 죽지 않고 자는 법’은 ‘페트병에 더운물 채우고/ 이불 안에 넣고 자는’ 것이라며 ‘이 혹한에도/ 시민들은 집에서 안 잔다/ 페트병 안에서 잔다’고 고발한다. 또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라는 글씨가 써진 ‘종이를 목에 건 채’ 시장에서 서 있던 벙어리 여인이 ‘한 군인이 백원을 쥐여주자/ 딸을 판 백 원으로/ 밀가루빵 사 들고 허둥지둥 달여와/ 이별하는 딸애의 입술에 넣어주며/ -용서해라’ 하고 통곡하는 모습도 놓치지 않는다.
이런 비극의 참상은 이 시집 전체를 관류하는 한 부분에 불과하다. 시집은 유엔에서 보낸 구제미(米)가 원산항에 도착하자 ‘태극기를 내리기 전엔/ 쌀 한 톨도 못 받겠다’고 ‘정부가 단호히 거절하여서/ 고마운 동족의 큰 배’가 오지 못한 일에 대한 안타까움도 이야기하고 공개 처형당하는 인민의 슬픔도 숨기지 않는다.
오늘도 대중 앞에서/ 누군가 또 공개 처형 당한다// 절대로 동정해선
안 된다/ 죽었어도 격분으로 또 죽여야 한다// 포고문이 다 하지 못한
말/ 총소리로 쾅 쾅 들려주는 그 앞에서// 어째서인가 오늘은/ 사람들
의 침묵이 더 무거웠으니/ 쌀 한 가마니 훔친 죄로/ 총탄 90발 맞고 죽
은 죄인// 그 사람의 직업은/ 농사꾼 _'사형수' 부분
아, 정부가 배급해 주지 않는 ‘쌀 한 가마니 훔친 죄로’ 공개처형당한 한 농사꾼의 피눈물을 누가 딱아줄 수 있을까. 나는 먼저 이 시를 쓴 시인의 손이 그 눈물을 닦아주는 것을 본다. 그것이야말로 두만강을 건너 탈북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이 시집 원고 뭉치를 버리지 않았으나 시인의 조국은 시인을 버렸다. 그리하여 시인은 남한에 와서 지금 탈북자라는 이름으로 불려진다.
탈북자
우리는 먼저 온 미래
오고야 말 통일을
미리 가져온 현재_’탈북자’ 부분
나는 시집의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이 시를 소중히 가슴에 품는다. 그가 진정 ‘먼저 온 미래’ ‘통일을 미리 가져온 현재’가 되기 위해서는 북도 변하고 남도 변해야 한다. 특히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정치적으로 눈치만 보고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남한 정부는 반성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생존의 밥, 자유의 밥 한 그릇을 위해 짐승처럼 죽어간 북한의 인민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우리들이 배불리 한 끼 밥을 먹을 때, 우리는 굶주리는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탈북 시인 장진성이 이 시집을 굳이 남한에서 펴낸 의미는 상실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