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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 정신병원을 다니는 히어로

by 송현탁

“안녕하세요.”

상담실의 문이 열렸다. 보통보다 조금 커다란 덩치를 가진 남자가 상담실로 들어섰다.

“네, 어서 오세요.”

그런 남자를 비슷한 또래일 여의사가 반갑게 맞이했다.

“요즘은 어떤가요?”

“똑같아요.”

“요즘은 특이한 일 있었나요?”

“글쎄요…”

“요즘에도 여전히 불안한가요?”

“네.”

남자는 어디에나 있을법한 불안 증세를 가진 환자였다.

단 그가 정체를 숨기고 사람을 구하고 빌런들을 무찌르는 히어로라는 점만 제외하면 말이다.


여의사는 한 달만에 온 그 히어로를 보면서 그가 이곳에 왔던 때를 떠올렸다.

“네… 그러니까 히어로시라고요?”

“네…”

스스로를 히어로라고 자처하는 이 남자에게 망상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서 이곳에 온 환자일까.라고 생각했다.

“믿지 못하시는군요…”

히어로가 말 끝을 흐렸다.

“아, 아니에요!”

의사는 환자를 신뢰를 바탕으로 이끌어야 한다.

“컵 줘보실래요?”

히어로는 난데없이 의사에게 컵을 달라고 했다. 의사는 반신반의하며 컵을 히어로에게 건넸다.

컵을 건네받은 히어로는 잠시 컵을 노려보고는, 다시 여의사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 컵을 건네받은 여의사는 소스라치게 놀랄 수 없었다.

컵에 담겨있던 차가운 커피가 뜨겁게 데워진 것이다.

“어때요…?”

“아… 히어로 맞네요.”

의사는 이 초능력을 보고, 많은 히어로들 중에서 복면을 벗은 이 히어로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전능 히어로 올마이티. 수많은 종류의 초능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히어로로서, 스스로 군대와 맞설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히어로였다.

그런 신과 같은 힘을 가진 히어로가 이곳에 왔다.

스스로 ‘왜?’냐고 속으로 의사는 되물었다.

“왜 오신 거죠?”

“불안한 마음이 점점 커져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서요…”

그 말을 듣고 의사는 살짝 놀랐다. 신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이 남자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사유가 무엇일까 싶었다.

“그렇다면 마음이 불안한 이유에 대해서 물어볼 수 있을까요?”

“첫 번째는 역시… 죽음이겠죠.”

그 올마이티가 스스로의 죽음을 고민한다는 점에서 의사는 또 놀랐다.

“그럴 수가 있을까요?”

“왜죠?”

“그렇지만 당신은… 올마이티잖아요?”

“그런가요…”

히어로는 말 끝을 흐렸다.

“하지만 생각해봐요. 저도 제가 패배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하지만 제가 너무 강해서 전투 끝의 제 생존 확률이 99.9%라고 했을 때 저는 결국 0.01%로 죽게 되잖아요.”

히어로는 계속 이야기했다.

“앞으로 저의 싸움이 끝날 기미도 보이지도 않고, 전 언젠가 싸움 끝에 죽지 않을까요?”

여의사는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이런 생사가 걸린 싸움을 계속해서 할 수 있는 히어로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의사는 히어로에게 가장 쉬운 해결법을 제시해주었다.

“간단한 방법이 있어요.”

“뭐죠?”

“히어로를 그만두면 돼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싸우지 않으면 죽을 확률도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그의 불안도 해결될 것이다.

“아… 그렇죠.”

“네. 가능하시겠어요?”

“아니요. 불가능해요.”


“왜 불가능한 거죠?”

의사가 히어로에게 물었다.

히어로는 기본적으로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그의 히어로 활동에는 아무런 부귀영화도 따라오지 않는다. 그런데 그는 왜 히어로 활동을 그만둘 수 없는 걸까.

“저는… 선택받은 사람이죠.”

“네.”

인류 0.00001%인 올마이티의 이 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저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네.”

“그런데 제가 그 힘을 불안하다는 이유로, 제 힘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않는다면…?”

“제가 구할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없게 되겠죠.”

한 해. 올마이티의 손에 구해지는 사람의 숫자는 네 자릿수가 넘는다.

“결국 그들은 저 때문에 죽은 게 되겠죠.”

물론 그 네 자릿수의 사람 모두가 올마이티가 없으면 죽을 목숨이라는 건 아니다. 올마이티를 제외한 다른 히어로들도 있다. 다른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올마이티가 모두를 구했기에, 올마이티가 없다면 구할 수 없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나 때문에 죽는 사람이 생긴다는 사실이 저를 더 불안하게 만들어요. 돌고 돌아 생각해보면 제가 그들을 죽인 꼴이 되지 않을까요?”

의사는 궤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을 앞지를 논리도 떠오르지 못했다.


그렇기에 의사가 해주는 건 그저 그에게 불안을 줄여주는 약을 처방해주는 것뿐이었다.

“1달치 처방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약을 먹으니까 좀 나아요.”

“근본적인 치료… 아직도 방법을 생각해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히어로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나저나 어제 공포 영화를 보다가 든 생각인데요.”

“네.”

“팔다리가 모두 잘라내서 힘을 행사할 수 없으면, 그 불안도 사라지지 않을까요?”

의사가 비릿하게 웃었다.

“섬뜩하네요…”

“농담이에요. 농담.”

“그런가요… 참고로 팔다리가 모두 잘려나가도 초재생능력으로 인해서 아마 1분 안에 다시 자라날 거예요.”

“그런가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이 앞의 히어로는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힘을 얻었지만, 그와 동시에 그 힘의 주박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아마 그가 이 주박으로 해방되는 방법은 그의 죽음이거나, 세상이 평화로워지는 것뿐일 것이다.

그렇기에 의사는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세계 평화를 소원으로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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