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을 생각하다.(2)

by 생각하며 놀자

빼앗긴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35년 동안 투쟁했던 독립군들과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기다림도 히브리 노예들의 심정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서대문 형무소 여옥사 8호 감방에서 불렀다는 노랫말은 2019년에 곡이 붙여져서 대중에게 알려졌다.

“전중이(감옥살이 하는 사람) 일곱이 진흙색 일복 입고 피눈물로 기도했네. 대한이 살았다. 산천이 동(動)하고 바다가 끓는다.”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것 같은 희망이 점점 사라지고 절망에 빠질 때 조국 광복의 기다림은 더더욱 처절하고 절실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독립운동에 참여하다 어느 순간 변절한 사람들의 배신행위는 기다림과 관련이 있다. 독립의 희망이 보일 때는 투쟁하며 기다리기 쉽다. 그러나 희망이 점점 사라지고 해방의 시간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절망감에 사로잡히면 기다림의 절실함은 두 방향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희망 제로 상태에서 기다림의 강도는 더 절박해지고 그만큼 투쟁의 강도도 치열해질 수 있다. 반대로 절망감은 기다림을 지루하게 만들고 절실한 마음을 약하게 만들다가 결국에는 포기하게 만든다. 이렇게 보면 변절자는 기다림을 포기하거나 희망의 끈을 놓아 버린 사람들이라 부를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의 지식인들이 변명하듯 말하는 변절의 이유 중 하나는 절망감에 압도되어 광복의 긴 기다림을 포기한 것도 있다. 일본이 패망하여 조선이 독립할 것이라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투쟁하며 독립을 기다리는 일은 참기 어려운 지루함이었을 것이다. 비록 영화적인 허구이지만 영화 「암살」에서 친일 경찰 염석진은 ‘왜 동지를 팔았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해방이 (그렇게 빨리) 될 줄 몰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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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오는 동안 절실한 마음으로 기다렸던 일이 무엇이었을까? 누구나 그러하듯 사소한 기다림은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게 기다린 것 중에 가장 절실한 마음으로 기다렸던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또 이제 남은 시간 동안 진정으로 소망하며 기다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내 나이 10대부터 20대까지 20년의 긴 세월 동안 군사 독재 시절을 지내면서 가장 절실하게 기다렸던 것은 민주화가 이루어진 세상이었다. 18년 동안 대통령의 이름은 하나였고, 그 상황은 바뀔 것 같지 않았던 절망의 시절도 있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은 민주화된 나라가 반드시 오리라는 당시의 기대와 희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었다. 그리고 짧은 서울의 봄은 지나가고 군사 독재는 그 후로도 17년이나 지속되었다. 그 사이 민주화에 대한 요구와 기다림은 많은 희생을 대가로 치러야 했다. 수많은 사람이 그날을 기다렸고 그 기다림은 1987년 6월 항쟁을 시작으로 우리 곁에 현실로 다가왔다. 성숙한 민주화의 과정이 아직 진행 중이라 할 수는 있어도 오랜 세월 기다렸던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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