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소설 : 다시 여기, 동물원 옆 미술관

1장 다시, 여기

by 쏘쿨쏘영


“내가 이 자리에서만 장사 40년이여.”


포장마차에서 흔히 사용하는 조그만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를 하나 내어 주시면서 김밥 파는 할머니는 지나가듯

한 마디 던졌다.

과천 현대미술관을 실로 오랜만에 갔다가 걸어 내려오는 길, 지하철역 입구로 향하는 대공원 길가에서 김밥과 꽈배기, 떡을 파는 노점상 아주머니들을 보니 오전 내내 참아왔던 배고픔이 다시 올라왔다.

예전 대학생 시절에 자주 찾았던 과천 현대 미술관.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항상 이 노점상 아주머니들의 가판대에서 그날 먹을 주전부리들을, 소윤은 사곤 했다.

미술관 안에서 파는 음식들은 비싸기도 하고 오전 일찍부터 길에 나와 장사를 하시는 분들이 눈에 밟히기도 한 까닭이었다.

지금이나 30년 전이나 파시는 음식의 종류는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깨닫고, 소윤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 좋은 추억에 잠긴다.

단무지, 당근, 부추가 들어간 꼬마 김밥.

설탕이 달달하게 묻혀 있는 꽈배기,

그리고 가래떡과 모시송편.

단지, 바뀐 것은 파는 음식의 가격뿐.

‘들어간 내용물은 부실하지만 이상하게도 맛있는 꼬마 김밥이 아무리 그래도 3천 원이나 할 건 뭐야?’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소윤은 김밥 하나를 샀다.

참아 왔던 허기가 올라오자 당장 어디라도 앉아 먹고 가야겠다 싶어,
“어머니, 여기 옆에 앉아 먹어도 될까요?”라고 조심스레 노점상 할머니에게 물어봤다.

며칠 전, 이곳에서 김밥을 사서 사람 없는 화단 옆에

혼자 앉아 급하게 먹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어느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바로 옆에 앉아 수작을 걸려는 찰나에 소윤이 황급히 그 자리를 피했던 기억이 생각나서였다.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여자 혼자 화단 돌담에 앉아 무언가를 먹고 있을 때, 그리고 주위에 자기가 앉을 돌담들이 무수히 많은 데 굳이 같은 장소에 앉으려고 하는 건 좀 걸쩍지근한 발상이다. 꿈 깨시길.

“아, 그래요 그럼. 여기 옆에 앉아서 먹어. 의자 하나 줄게.” 할머니는 의자를 하나 내어 주며 말했다.

“여기 화단에 앉아서 먹으면 돼요. 감사합니다.”

노점상 할머니 옆에 다소곳이 앉아 꼬마 김밥을 하나씩 입에 넣어 오물오물 맛나게 씹으며 소윤은 할머니에게 말을 걸어 본다.

“어머니, 이곳에서 장사를 얼마나 하신 거예요?”

“내가 이 자리에서만 장사 40년이여.”

“와, 그럼 제가 대학생 때 여기 자주 왔을 때 그때도 계셨겠네요? 와, 대단하시네요.”

“응. 여기서 장사하면서 애들 다 키우고 장가 시집 다 보내고 그랬지. 지금은 안 해도 되는데 집에서 놀고 있으면 난 그게 더 힘들더라고. 우울증 걸려. 이렇게 밖에 나와서 장사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해. 집에만 있으면 더 빨리 늙어, 사람이.”

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라고 속으로 소윤은 생각했다.
‘저도 집에만 있는 것이 힘들어서 이렇게 다시 미술관이라도 나와 보기 시작했어요.’라고 속으로 또 말해 본다.

더 우울해지기 전에 소윤은 할머니에게 말을 다시 걸었다.

“여긴 달라진 게 많이 없어요. 예전 그대로예요. 제가 예전에 여기 김밥 자주 사 먹었거든요. 안에 들어있는 게 별다른 건 없어도 맛있어서요. 가격만 달라졌어요.”

“에휴,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서. 밀가루 값도 많이 올라서 이 놈의 꽈배기 값도 올렸지, 떡값도 올렸지. 사 먹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비싸졌냐고 한 소리씩들은 하지, 참.”

“하하, 뭐 다 가격 오르고 그러는데 별 수 있나요…”라고 할머니의 푸념을 받아 주고는 이제 일어서는 소윤.

떠나기 전 노점상 할머니의 파라솔과 음식들 사진을 찍어 본다. 오래되고 변하지 않는 풍경이라 마음에 담아 보고 싶었다.

“잘 먹었습니다. 수고하세요.”
소윤은 꼬마 김밥으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다시 제 갈 길을 떠난다.

다시 여기, 과천 현대미술관에 와보니 달라진 것보다 달라지지 않은 것이 마음의 눈에 더 들어왔다.

우선, 지하철 대공원 역에 내리기 전부터 지하철 안에서 느껴지던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만의 스타일.

크게는 세 부류로 나뉜다.

현장학습을 하러 온 중고등학생들이 한 부류.

데이트를 하러 온 듯한 풋풋한 젊은 커플들이 또 한 부류. 나머지는, 등산복 아웃도어 차림의 아저씨, 아줌마들 혹은 경마장으로 향하는 듯한 중년의 남자들이 마지막 세 번째 부류.

소윤은 그 세 부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달라지지 않은 풍경 또 하나는, 대공원 역 안 지하철 개찰구를 나오면 보게 되는 풍경이다.

지하철 역 안 의자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데이트를 하거나 등산을 할 친구들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그냥 혼자 의자에 앉아 있는 아저씨들도 많다.
소일거리를 찾아 이곳으로 나온 듯한 모습이다.

이런 아저씨들이 혼자 온 여자들한테 집적거리는 유형의 사람들이다, 대개. 쯧쯧.

‘아저씨, 저는 미술관 가서 그림 보면서 공부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쓸데없고 냄새나는 수작은 그만하시죠?’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그 역 안을 빠져나와야 할 정도로, 그런 아저씨들의 눈길들은 좀 눅진하고 음흉한 구석이 있다.

아, 그러고 보니 아련하고 아픈 기억 하나가 소윤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대학교 1학년 때였지 싶다.

짝사랑하던 대학교 선배에게 (그녀의 소심한 성격에 어떻게 그런 용기가 그때 났었는지 지금도 이해불가이다.) 삐삐 문자를 보냈었다.

아마도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대공원 역에서 1시에 만나요. 기다릴게요.”

기다렸다.
소윤 홀로 그 대공원 역 안 차가운 의자에 앉아

오지 않는 사람을 계속 기다렸다.
일방적으로 소윤이 약속한 시간이 지나고

1시간이 더 지나도 그 선배는 나타나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계속 문자를 보내는 소윤.
이런 적은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다.
2시간이 지나서야 헐레벌떡 그 선배는 마지못해 나온 것이 역력한 얼굴로 그 지하철 역에 도착했다.

소윤은 마치 자신이 2시간 이상 기다린 사실이 없었던 일인 양 아무런 일도 없는 듯이 그를 반겼다.
“아, 선배님. 오셨어요?”

착하고 다정한 성격의 사람이었던 그 선배는

‘당신이 이렇게 나에게 대시하는 게 난 좀 불편하고 싫어’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소윤이 가자는 데로 그 넓은 미술관과 대공원을 끌려 다녔다.

그리고 어스름 해가 질 듯 말 듯한 저녁 시간, 헤어지는 대공원 역 앞에서 결국 그는 자기의 마음을 조용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소윤에게 얘기했다.

“네가 날 좋아하는 건 너무 감사한 일인데, 난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

그 말을 듣고도 소윤은 놀랍도록 덤덤하고 평온했다.


그럴 것이라고 이미 알고 있었고 소윤을 여자로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저 소윤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소윤이 좋아하는 공간에 한 번이라도 와 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것이 마지막일 것을 알면서도.

신해철을 닮았던 그는, 그렇게 소윤의 인생에서 떠나갔다, 흘러갔다.

항상 그랬다.
소윤이 좋아했던 사람은 항상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자신을 돌아봐 주지 않는 사람을 좋아했던 소윤에게,

사랑은 짝사랑의 형태로밖에 존재하지 않는 감정이다, 여전히.


상처받은 경험은 생각보다 아주 오랫동안 남았다.

그렇게 차인 이후로 소윤은 단 한 번도 사적인 감정 때문에 남자에게 먼저 연락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가볍게 장난치고 싶지 않은 신중함이 그때 생겨났다.

다시, 여기 과천 현대미술관에 오니 그때 그 풋풋하고 아련하게 밀려오는 약간의 슬픔이 다시 느껴졌다.


(다음 편은 기약이 없습니다. 아직 쓰고 있는 중이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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