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졸업식 날,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 돈을 쪼개어 졸업하는 맏딸에게 줄 꽃다발을 사 가지고 졸업식장에 오셨다.
난 그때도, 지금도, 안다.
꽃 살 여유가 없었던 집안 살림에 어머니가 애써 사 오신 그 꽃다발에 담긴 애정이 얼마나 큰지를.
애쓰신 어머니의 마음에 좀 울컥해서 괜히 짜증을 냈다. “먹지도 못하는 꽃은 왜 사 왔어요, 돈 아깝게”라고 했던 것 같다.
사춘기 딸의 철없는 말에 어머니의 마음이 다치실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때는 못했다. ‘죄송해요, 엄마. 그때 감사하다고 했어야 하는 건데…’
성인이 되고 대학생 시절 내내 과외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서울에서의 자취 생활비를 대부분 내 손으로 벌었다.
집에 손 벌리지 않겠다는 독립심 때문이 아니라, 집안 사정을 잘 아는 맏딸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동생들의 학비도 계속 들어가야 할 텐데 나까지 부담을 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도 내가 다닌 대학교 학생들에게는 단가가 높은 아르바이트인 과외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1학년 때부터 과외를 꾸준히 하며 대학교 생활을 꾸려 나갔다.
과외가 없을 때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했다.
단 2주~3주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4시간 내내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힘들었지만, 이런저런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름 인생 경험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 당시 시급 1,200~1,400원 정도였던 편의점 아르바이트에 비하면 과외가 얼마나 행복한 돈벌이인지를 그때 피부로 느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편했던 편의점 아르바이트,
돈은 되지만 스트레스가 많았던 과외.
여하튼 재정적이든 심적이든 삶의 여유가 없다 보니 사회인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꽃은 ‘못 먹는 걸 왜 사? 일주일도 못 가서 시드는데, 왜 돈을 써?’ 정도의 사치의 대상이었다.
그러던 나의 꽃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온 건, 40대 이후부터였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뭐랄까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커진 것 같다.
그리고 작고 아름다운, 소소한 사물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아마도 모성애가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이거나 호르몬의 변화로 인한 감정 변화가 아닐까 싶다.
세상 모든 꽃이 가지고 있는 그 찰나의 아름다움이 서글프면서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화양연화’라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제목처럼,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우리에게 주고 스러져가는 꽃이, 너무 좋다.
보기만 해도 행복해진다.
회사에 근무할 때 난 매주 월요일 꽃 한 송이를 근처 꽃집에서 사서 책상 위 조그만 유리병에 꽂아 두었다.
‘왜 꽃을 사무실 책상 위에 꽂아 두냐’는 질문을 누가 한 적이 있었다.
‘건조하고 무심한 책상을 1주일간 촉촉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 내 삶에 윤기를 더하기 위해서’라고 지금 답해 드린다.
매 주말 꽃 한 송이를 사서 우리 집 부엌 식탁에도 꽂아 둔다. 내 식구들이 꽃의 아름다움을 아는 낭만적인 친구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꽃을 더 알고 싶고, 더 만지고 싶은 마음에 플로리스트 취미반을 등록하고 첫 수업에서 ‘캔들 센터피스’와 ‘크리스마스 리스’를 만들었다.
처음치고는 잘 만들었다고, 센스 있다고 칭찬받았다. 빈틈없이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시들지 않는 꽃은 없다, 마치 인생처럼.
짧은 시간 존재하는 아름다움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그 가치가 있는 존재, 꽃으로 인해 영혼이 행복해진다.
꽃은 사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