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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Nov 30. 2023

EP 1. '커피는 과일입니다.'

[소비자가 바라본 스페셜티 커피]




'FAC01: Coffee is a Fruit.'




필자가 좋아하는 미국 동부 뉴저지의 커피 로스터리, MODCUP의 슬로건이다.


흔히 볶은 커피를 설명할 때 커피 '콩'(영어로는 coffee 'bean')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정확하게는 핵과류인 커피 체리의 씨앗이다. 


어원에 대해 알아보자면 미국 National Coffee Association의 설명을 빌려 씨앗보다는 콩을 연상케 하는 모양으로 인해 서구권에서 coffee bean으로 불리게 되고 자연스럽게 국내에서도 커피콩으로 번역되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이 과일의 씨앗을 먹는 일이 흔치 않았던 점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스페셜티 커피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지금 사용되는 커피콩이라는 표현이 커피 씨(coffee seed) 또는 그냥 커피라는 표현으로 명확하게 표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생두와의 구분을 위한 '볶은 커피', 나무를 설명하기 위한 '커피나무', 음료 종류를 구분하기 위한 '필터 커피' 등 명확하게 구분된 명칭을 쓰지 않는 이상, '커피 = 커피 체리의 씨앗, 그리고 이 씨앗으로 만들어지는 모든 상품'이라는 정의를 기반으로 본 연재를 작성하려 한다.




우선 두서없지만, 본문에서 꾸준히 사용하게 될 '커피'라는 용어에 대해 정의했다.


필자는 현재 커피 업계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이 명확히 정의되지 않고 여러 가지 뜻으로 혼용되는 상황에 많은 사람들이 같은 단어를 다르게 받아들이는 경우를 자주 목격했기에, 이 연재를 읽는 사람들만큼은 단어의 정확한 뜻이 전달되었으면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커피의 '과일스러움'에 대해 집중해 보자.





MODCUP, 2013 (출처: MODCUP 인스타그램)



모드컵의 슬로건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풀어보자면, 모드컵의 대표 Travas Clifton은 캐나다의 한 생두회사에 방문했을 때 처음으로 스페셜티 등급의 커피를 마셔보았다고 한다.  (발리의 내추럴 건조 커피였다는 후문)


생두회사의 대표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이 하루를 시작할 때 함께 하는 커피는 세계에서 가장 맛이 복잡한 씨앗 중 하나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가 커피 콩이라고 부르는 커피의 씨앗은 과일의 씨앗입니다. 그리고 그 작은 씨앗은 최고급 와인 복합적인 맛의 두 배 이상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고, Travas는  여름딸기 같은 한잔의 커피를 마신 Travas는 큰 충격에 빠졌다.


'이게 뭐지? 이게 어떻게 커피지?'


그 후 Travas는 뉴저지로 돌아와 꾸준히 과일 같은 커피를 소개하려는 목표로 가판대에서 시작해 지금의 뉴저지 대표 로스터리로 MODCUP을 성장시켰다.






이와 같이 스페셜티 커피 문화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커피 특유의 '과일스러움'에 매력을 느끼는 것으로 시작하게 된다.


필자도 마찬가지로 딸기 잼 같은 에티오피아 내추럴 건조 커피를 처음 만났을 때의 추억이 지금까지 스페셜티 커피를 좋아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필자는 커피의 매력을 과일 하나로만 단정 짓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일반 소비자의 입장에서 커피에서 '과일 같은 느낌'이 난다고 하면 흔히들 떠오르는 생각이 '새콤한 과일스러움'이 우선 연상되는 것 같다.


하지만 스페셜티 커피는 마냥 '새콤하기만 한' 커피가 아니다.




커피의 향미를 원물로 표현한 Paulig Flavor wheel (출처: Paulig coffee)



스페셜티 커피를 처음 공부하게 되면 커피가 가진 향미에 대해 '과일' 뿐만 아니라 화사한 꽃향, 고소한 견과류 향, 달콤한 캐러멜 향, 또는 향신료 향 같은 느낌도 같이 표현된다.


적절하게 잘 로스팅된 커피는 이런 과일의 향미와 로스팅된 구운 향미들이 좋은 균형을 갖추어 은은하게 발산된다.


이렇게 다채로운 면을 보여주는 것이 현재 스페셜티 커피에서 소개하는 '커피의 향미'이다.



그런데 왜 소비자들은 커피를 '과일의 새콤함' 혹은 '산미'의 유무로만 커피를 판단하게 되었을까?


이는 지금까지 커피를 로스팅하는 방식이 커피의 볶은 향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제품을 많이 출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로스팅을 진행하며 변화는 커피의 모습(출처: Loring)



커피를 볶는 방식을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커피의 씨앗에 열을 전달하는 과정'이다.


열을 주면 줄수록 생두의 조직이 최대한 팽창되어 생두가 가진 수분, 지방분, 섬유질, 당질, 카페인, 유기산, 탄닌 등 여러 가지 성분이 화학 변화가 일어나 맛과 향이 발산되는 과정이 커피의 로스팅이다.


로스팅이 점점 진행될수록 커피의 색이 짙어지고, 생두 내 성분이 줄어들며 캐러멜 같은 구운 향미가 증가하게 된다.


이 중간의 적절한 지점을 찾는 것이 로스터리의 목표이고, 그렇기에 모든 로스터리들이 각자의 개성이 돋보이는 커피를 소개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최대한 구운 향미를 줄여 커피의 '과일스러움'을 강조하고 싶은 철학이 커피의 구운 향에 익숙한 소비자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다가갔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로스팅된 커피의 구운 향미도 적절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게 과일이 레몬 같이 마냥 새콤하기만 하다면, 과일로 먹기 위해 레몬을 구매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적절하게 산미를 받쳐주는 단맛이 있어야 소비자들이 찾게 되고, 그렇기에 많은 농장과 업체들은 당도가 높은 점을 강조하며 높은 브릭스 수치를 강조한다.


레몬의 경우에도 단순히 레몬 과육만을 섭취하는 것이 아닌 레모네이드나 레몬 마들렌 같은 단맛을 가진 제품에 개성을 더해주는 방식으로 소개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최근에는 많은 로스터리들이 소비자의 이런 인식을 파악해 점점 로스팅된 향미도 같이 전달하려고 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이제 어느 카페를 가더라도 마냥 시큼하기만 한 커피를 찾기가 오히려 더 힘들다.






하지만 이런 '과일스러움'을 최대한 표현하려 노력해도 인공적인 향미를 갖춘 상품들에 익숙해져서일까?


일반 소비자 분들은 은은하게 다가오는 커피의 향미들을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최근 커피의 과일스러움을 이전보다 강조하기 위해 다양한 발효방식이 등장했다. 


바로 과일과 커피를 같이 발효를 하는 방식이다. 




와인 이스트와 패션프루트를 사용해 발효 중인 파치먼트 상태의 생두(출처: Covoya coffee)




위의 사진처럼 과일을 넣는 방식이 있고, 과즙을 짜서 용액으로 같이 발효를 하는 방식도 있다.


이런 방식으로 발효를 진행해서 건조된 커피들은 굉장히 강렬한 과일의 향미를 선보인다.


심지어 '피치', '워터멜론', '그레이프' 등 커피에 아예 과일의 이름이 같이 붙어서 나오는 커피들도 있다.


이 커피들은 정말 이름에 소개된 그 과일의 향미가 강렬하게 느껴진다.


커피를 분쇄하면 그 매장을 꽉 채울 정도로 강렬하다.



혹시라도 독자분들 중에 이런 커피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면, 한 번쯤은 경험해보았으면 한다.


정말 커피를 모르는 사람도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커피를 만들 수 있을까?


정말 바나나를 넣으면 바나나향을 가진 커피가 나오고, 패션프루츠를 넣으면 패션프루츠 향을 가진 커피가 나올까?


정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과일 향 제품들을 보면 인공 향료로 만든 제품에서 느끼는 딸기 향이 진짜 딸기로 만든 제품에서는 그만큼 나질 않는다.


진짜 원물을 넣는다고 한들, 원물의 향 자체가 매우 강력하지 않는 이상 평상시 커피를 발효하는 방식으로는 그 강도를 표현할 수 없다. 


심지어 파인애플 과즙을 넣었지만 망고 같은 커피가 나오기도 하고, 맥주 효모를 넣었지만 모히또 같은 민트의 향미가 나오는 현상도 종종 발견된다



그럼 어떻게 강렬한 향을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바로 스페셜티 커피 입문자들이 마주치는 첫 번째 관문이 된, 지금도 용어의 정의가 혼용되어 사용되는 '무산소' 발효 환경에 단서가 있다.




다양한 무산소 환경 - 저산소, C/M, Maceration (출처:Sucafina Specialty coffee, Market Lane coffee, Firebat coffee)




일단 커피 가공 중 '발효'라는 과정은 커피 체리를 수확한 후 과육을 씨앗이랑 잘 분리시키기 위해 거치는 과정이다.


이 과육을 떼어내기 위해 진행되는 발효를 두 가지 상황에서 진행할 수 있다.


바로 기존부터 행해진 '유산소' 발효와 최근 성행하고 있는 '무산소' 발효 방식이다.


두 방식의 차이는 '산소가 커피 발효를 진행하는 중 발생하는 환경을 어떻게 제어하느냐'에 초점을 둔다.



무산소 발효 환경은 기존의 발효방식에 비해 최근에 소개된 방식이다.


2014년 COE(Cup of Excellence, 국가별 고품질의 커피를 평가하는 대회)에서 처음 무산소 발효 환경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그 후 2015년 WBC(World Barista Championship, 국제 바리스타 대회)에서 호주의 Sasa Sestic이 무산소 발효 환경 중 하나인 C/M(Carbonic Mecerataion, 와인에서 사용되는 스테인리스 통에 이산화탄소를 채워 산소를 밀어내는 무산소 발효 환경)을 커피에 접목시켜 가공한 커피로 대회를 우승하면서 무산소 발효 환경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그리고 '환경 제어'라는 개념이 확장되어 탄산침용 방식이 다양한 곳에서 진행되었고, 보다 안정적인 환경을 제어하기 위해 주조 기술에서 사용되는 맥주 또는 와인 이스트 첨가 발효, 젖산균 첨가 발효, 누룩 첨가 발효 등 다양한 무산소 발효 환경들이 등장했다.



이 모든 무산소 발효 방식들은 결국 과육을 제거하기 위한 과정 중 하나일 뿐이고, '환경 제어'가 중심이 되는 가공방식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무산소 발효 환경을 기반으로 원하는 환경을 구성할 수 있게 되었고, 여러 가지 발효 첨가제를 넣어본 경험을 기반으로 원하는 향미를 제어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 바로 특정 과일의 향미를 표현할 수 있는 '발효 커피'의 등장이다.



위에서 언급한 '피치'나 '모히또' 같은 명확한 향미의 이름이 붙은 경우, '주로 첨가제를 사용한 환경 제어를 기반으로 프로듀서들이 "무수하게 쌓인 경험"을 통해 원하는 향미를 재현을 할 수 있다'는 것만 농장에서는 밝히고 있다.


포도를 넣었는데 포도 같은 커피가 나올 수도 있고, 딸기 같은 커피가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을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고, 그 데이터는 농장에서 밝히지 않는다.


그래서 커피를 소개받는 입장에서는 소비자가 과일을 넣어서 그런 향미가 난다는 질문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농장에서는 이렇게 한다더라'라고만 대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COLOMBIA HUILA SANTA MARIA (출처: Driftaway coffee)


이런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던 이유은 자본의 힘이 크다.


무산소 환경을 제어하기 위한 시도들은 전적으로 다른 곳에서 많은 자본이 투여되는 콜롬비아와 파나마에서 진행되었으며, 지금도 이 두 국가를 제외하면 생두 보관 봉투 혹은 플라스틱 통을 이용한 열악한 무산소 발효 환경을 사용하고 있다.


(다만, 콜롬비아는 '환경 제어를 통한 특정 향미 부각', 파나마에서는 '철저한 환경제어를 통한 안정적인 커피 발효'에 집중한 연구가 진행된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많은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었고, 그를 기반으로 원하는 향미를 제어한 커피를 만들어내 높은 가격에 판매를 할 수 있었다.


자본의 순환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이런 과정이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지금은 많이 발전했지만, 이전에는 이런 강렬한 과일의 향미에 강렬한 발효취가 같이 동반되는 경우가 잦았다.


누군가에게는 상당한 불호를 가지게 되는 발효취를 동반하더라도 과일의 향미가 명확하게 인식되니 시장에 유통되었던 것이다. 


이를 수용해야 하는 가에 대해 한동안 찬반 논의가 진행되었고, 현재는 '발효커피에 대한 수요와 시장이 형성되었다'는 의견으로 좁혀지고 있다.


그래서 현재 COE에서는 '건조방식 와 실험적인 발효방식에 따른 구분'을 올해 브라질 심사에서 다시 도입했고, WBC에서도 '발효커피'를 대회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룰을 공개했다.





다만 이런 정보를 전달하는 이가 얼마큼 공부하고 전달하는가도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매장에서 이런 발효 커피를 처음 접하는 소비자들은 그 정보를 커피를 로스팅한 로스터리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리에서 자주 듣게 되는 답변 중 높은 확률로 '이 커피는 무산소 발효를 진행해서 그래요' 또는 '과일을 같이 넣어서 발효해서 그래요'라는 답변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 추가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고서야 이 수많은 과정에 대해 차분히 설명해줄 수 없을 것이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후자의 답변은 충분히 바쁜 상황에서는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납득 가능한 답변이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너무 많은 정보를 일축한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부 소비자 분들이 '무산소' 커피는 무조건 빼고 달라는 요구를 하면서, 정작 본인이 즐겨마시는 클래식한 커피가 최근 '무산소' 환경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생산으로 전환한 상황을 모르는 심한 편견을 가진 경우도 있다.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파나마를 포함한 일부 생산지의 경우, 안정적인 생산을 위해 철저한 제어를 기반으로 한 무산소 발효 커피들이 많다.


이의 경우에도 잘못된 전달로 인해 편견이 생겨 '무산소'이기 때문에 선택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만큼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생기기 어려워질 것이다.




정보가 많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이와 받아들이는 이의 입장.


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하나의 글로 자세히 다루어볼 예정이다.






과도기를 겪고 성장하는 것이 하나의 산업이다.



깊은 간극을 좁힐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호불호를 가진 발효 커피는 인식의 전환과 기술의 발달로 그 간극을 줄여 시장에 안착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다만 이 모든 것은 스페셜티 커피를 소비하는 이들에게 단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노력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커피는 과일입니다."





- EP 1 END.





*[소비자가 바라본 스페셜티 커피]는 매주 목요일 오후 8시에 발행됩니다.


이전 01화 EP 0. '어떤 커피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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