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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화 Oct 18. 2024

제주도의 맛

구좌읍 종달리, 해녀의 부엌


지미봉이 보이는 종달리 마을

                                   

                                                                      

    신문에서 본 시가 생각났다. 시구와 일러스트의 느낌이 좋아 한편에 두었던 신문을 다시 찾아보았다.

     

  기쁨을 따라 갔네

  작은 오두막이었네

  슬픔과 둘이 살고 있었네

  슬픔이 집을 비울 때는 기쁨이 집을 지킨다고 하였네

  어느 하루 찬바람 불던 날 살짝 가보았네

  작은 마당에는 붉은 감 매달린 나무 한그루 서성서성 눈물을 줍고 있었고 뒤에 있던 산, 날개를 펴고 있었네     

  산이 말했네

  

  어서 가 보게. 그대의 집으로......

     

  강은교 시인의 가을이라는 시에서 슬픔이 집을 비울 때는 기쁨이 집을 지킨다는 표현에 끌렸다. 그 시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내용에 맞춰 초가집과 나무와 붉게 물들어가는 산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그림이었다. 신문에서 마주하게 되는 글은 그림과 사진에 의해서 더욱 몰입이 되기도 한다. 특히 여행 관련 기사는 당장 그곳으로 가보고 싶게 만들 때도 있다. 신문을 스크랩해놓고 마냥 시간이 지나기도 했다. 맛에 관한 신문기사를 오려서 보관했었다. 제주 바닷가 식당에 대한 내용이었다. 글보다 그림이 더 눈길을 끌었다. 스텐 그릇에 담긴 옥돔 국을 배경으로 에머랄드빛  바다가 펼쳐져있었다. 물빛 고운 바다 근처의 낭만적인 식당을 떠올렸고 그 맛도 특별할 거라고 상상했다.    

  

  4월 초, 남편과 제주 여행을 떠났다. 오전 7시도 안된 시간, 김포공항에는 제주로 떠나기 위한 사람들이 많았다. 해가 뜨는 모습을 보며 제주로 떠났다. 제주 바다가 가까워지자 비행기 위에서 보니 흰 거품처럼 보이는 것 들애개 시선이 갔다. 땅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밀려오는 파도만 봤지 공중에서 파도를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바람이 심한 날이었는지 먼 바다에서도 끊임없이 크고 작은 수많은 파도가 일고 있었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 아래로 점점이 보이는 바다위의 파도들은 살아있는 듯 쉼 없이 움직였다.

     

  제주여행을 가서 처음 들른 곳이 신문 기사에 나왔던 식당이었다. 바닷가도 아닌 골목에 위치한 식당은 오래됐고 음식의 간도 짰다. 색 바랜 신문 조각을 가방에서 꺼내 다시 읽어보았다. 기사를 쓴 사람은 본인이 방문했던 음식점을 오랜만에 다시 찾아가 노부부와 대화를 나누며 정겨움을 느꼈던 것 같다. 음식의 간이 세고 짭짤하다고 우호적으로 표현했다. 기사의 날짜를 보니 8년 전이었다. 여든이 가까워온다는 주인은 더 나이가 들었을 것이다.  식당도  낡아 있았다. 변화보다는 옛것에서 푸근함을 느꼈던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나의 것이 될 수는 없었다.

   

  맛은 이야기와 함께 버무려진다. 음식을 먹던 장소, 함께 한 사람, 그 공기와 느낌은 화학작용으로 어우러진다. 뇌 속에 각인되었다가 잠든 기억은 문득 작은 자극으로 무장 해제되어 피어오른다. 자기만의 맛이 배어있는 스스로의 이야기가 있다. 어렸을 때 부추김치를 먹고 체한 적이 있다.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어서 여름 음식은 잘 상했다. 토하고 나서는 김치가 담겼던 푸른 색 꽃그림이 그려진 사기그릇만 봐도 울렁거렸다. 아무 것도 못 먹어서 밤에 배가 고팠다. 어머니는 한 밤중에 일어나 흰죽을 쑤어주었다. 간장을 살짝 넣은 흰 쌀죽은 무엇보다 맛있었다. 나만을 위한 관심이 스며있는 음식은 따뜻한 위안이 담겨있었다.  

    

  곽지해수욕장의 모래는 하얗고 고왔으며 바다는 울트라마린과 코발트가 조화를 이룬 선명한 빛이었다. 한편에는 검은 현무암 위로 흰 파도가 밀려왔다. 바닷가에는 조각상 들이 서있었다. 세 명의 여인상은 허벅을 물구덕에 담아 질베에 묶어 등에 지고 있었다. 해녀상은 테왁과 망사리를 어깨에 지고 홀로 서있었다. 곽지해수욕장은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드라마 촬영지여서 의미가 있게 다가왔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강창래 작가의 실화 바탕 에세이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다. 출판사 대표인 여주인공은 암 진단을 받고, 별거 중이던 남편에게 요리를 부탁한다. 글쓰기 강연을 하는 남주인공은 음식을 만들어보지 않았지만 아내를 위해 저염식을 만들고 블로그에 레시피와 느낌을 기록한다. 소금 간을 하지 않는 대신 쥐똥고추를 넣어 매운 맛을 살린 잡채를 만들기도 한다. 부인은 제주도 해녀동상 앞에서 아들과 찍은 사진을 보고 해변 이름을 떠올리지 못해 안타까워한다. 그녀는 남편이 만들어준 전통 돔베국수를 한입 먹고 그 바다가 곽지해변이란 걸 기억해 낸다.

  미각에는 기억을 불러내는 힘이 있다.”

  드라마의 남주인공 나레이션이 마음에 남았다.

      

  아르떼 뮤지엄과 곶자왈 환상숲을 들렀고 섶섬이 보이는 서귀포 바닷가에서 식사를 한 후  제주 올레 여행자 센터에서 숙박을 했다. 제주도는 여러 번 와도 미처 못 가본 곳이 있어 새로운 곳을 찾아가게 된다. 안덕계곡의 아침도 특별했다. 계곡 입구에 서있는 돌하르방은 정겨웠고 안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길은 신비로웠다. 안덕계곡은 육지의 계곡과는 느낌이 다르게 평지로 이어지며 물의 흐름은 잔잔했다. 물가에 노오란 유채꽃이 생기 있게 피어있었고 아침 공기는 맑았다. 이끼긴 오래된 돌들과 숲 사이로 축축 늘어진 나뭇가지들은 태고의 어떤 장소로 이끄는 것 같았다. 수직으로 높게 서있는 바위 아래로 편편한 넓은 돌들과 그 사이로 흐르는 물위에 동백꽃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새소리가 골짜기에 가득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어떤 독특한 세계 속에 머물다 온 것 같았다.   

   

  종달리, 새가 지저귀는 산뜻한 아침과 어울릴 것 같은 이름의 마을이다. 시작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지명이지만 마칠 종()과 도달한다는 달()의 뜻을 지녔다. 조선시대의 목자가 부임해서 시찰했을 때 시흥리에서 시작해 종달리에서 일정을 마쳤다고 한다. 제주의 동쪽 끝마을 종달리에는 마을 곳곳에서 지미봉이 보여 푸근했다. 골목골목이 정겹고 우뭇가사리 말리는 주민들이 있는 풍경이 평화로워보였다. 올레 표시 옆에 종달리 소금밭이라는 안내판에 시선이 갔다. 예전에 바다였던 곳이 간척으로 밭이 되었는데 1950년 정도 까지도 소금을 채취했다 한다. ‘종달 염전 체험시설건물 안은 당시 사용했던 소금채취 도구들이 전시되어있었다. 시간의 흐름 따라 서서히 변해가는 것이 많다. 제주해녀들의 삶도 달라져 갔다.

      

  종달리 마을에서 근처의 해녀의 부엌으로 향했다. 해녀의 부엌은 우도로 가는 배가 떠나는 선착장 근처에 있었다. 허름한 건물이어서 찾기가 어려워 처음에는 지나쳤다가 되돌아와 발견했다. 20여 년 전 활선어 위판장으로 지어진 곳이었고 창고로도 쓰였다고 한다. 이 공간에서 한예종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청년 예술인들이 공연을 기획하고 식사까지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실내의 천정은 초록색 그물망이 쳐져있고 벽면은 실제로 해녀들이 사용했던 테왁들로 장식되었다. 어두움 속에 푸른 조명이 비쳐 바다 속 느낌이 들었다.   

  연극이 시작되었다. 푸른 심해에서 팔과 다리를 뻗었다 모으는 동작을 반복하는 해녀의 모습은 경건한 의식을 행하는 것 같았다. 주인공은 어린 나이에 어려운 형편으로 숙명처럼 물질을 시작했다. 태왁과 그물을 띄워놓고 숨을 참으며 전복을 캤다. 숨비소리와 더불어 시간은 흘렀다. 홀몸으로 딸들을 제대로 키워내기 위해 아뜩하게 죽을 고비도 넘겼다. 70년을 해녀로 산 86세 할머니의 이야기가 무대 위에서 펼쳐졌다. 연극이 끝난 후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인 할머니가 직접 출연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인터뷰도 했다. 70세 해녀가 현무암 구멍에 뾰족한 뿔을 끼워 파도를 견디어내는 뿔소라와 바다의 검은 소라라고 하는 군소를 설명했다.

  우리에게 바다가 뭐냐고?

뭐긴, 우리 부엌이지.”

  팜플렛에 적힌 문구를 보며 해녀들의 치열하면서도 바다를 사랑하는 삶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예기치 않은 사람을 만나듯 우연한 장소에서 의미 있는 맛을 접하기도 한다. 제주 구좌읍 종달리의 옛 위판장은 해녀의 삶과 바다의 맛을 소개하는 부엌이 되었다. 몰랐던 해산물도 알게 되고 눈물겨운 노력으로 채취한 해산물의 소중함도 느꼈다. 공연 후 제공된 음식들은 톳 흑임자죽, 갈치조림, 뿔소라 미역국, 우뭇가사리 양갱 등이었다. 간접경험이지만 해녀의 이야기에 동화되어 먹은 음식은 제주도를 떠올릴 나의 이야기로 남을 맛이었다.


'해녀의 부엌' 공연 팜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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