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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화 Sep 16. 2024

룩소르에서 마차타기

이집트 패키지 여행

  

                                                                                                                           피라미드



  버스에서 내려 마차를 타러 갔다. 나는 남편과 함께 후미에 있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패키지여행이니 마차를 못 탈일은 없었다. 마부들이 말을 몰며 줄치어 도착했고 사람들은 두 명씩 짝을 지어 출발했다. 우리 부부 앞에서 마차의 행렬이 끊겼다. 뒤에는 여섯 명이 서있었다. 차례가 안 돌아올 수도 있겠다 싶어 살짝 불안했다. 룩소르 나일강에서  펠루카를 타는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가는 길이었다. 닻이 달린 무동력 배에서 선셋을 봤으니 어두워지는 시간이었다. 한국인 남자 가이드와 현지인 마부가 큰소리로 이집트 말을 했고 잠시 후 마차 네 대가 달려왔다.

  마차에 오르자, 오토바이가 달리고 사람들이 걸어가는 밤거리의 공기에서 생동감이 느껴졌다. 차창을 통해 볼 때와는 감각이 달랐다. 풍경을 찍으려고 핸드폰을 꺼냈다. 하얀 말의 고삐를 쥐고 있던 마부는 뒤돌아보더니 손짓을 하며 찍어주겠다고 했다. 쌍커플이 굵고 윤곽이 뚜렷한 얼굴에 체격이 건장한 40대 중반쯤 되 보이는 마부는 활짝 웃었다. 자기와  함께 셀카를 찍자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남편이 제안한 여행이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억눌렸던 욕구를 자극하는 신문 광고를 보고나서였다. 구정연휴를 포함한 열흘간이니 3일만 직장에서 휴가를 내면 된다고 했다.  남편의 결정이 낯설었다. 30년 동안 제사와 명절 상차림을  거르지 않던 그였다. 한번쯤 훌훌 여행을 떠나도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습관은 변화를 몸에 안 맞는 옷처럼 여기게 했고 이래도 되나싶었다. 그런 생각은 함께 떠난 사람들을 보며 희석되었다. 스물 여섯명 씩 네 팀으로 구성된 관광객들은 카이로까지 전세기를 타고 왔다. 주로 가족들 단위로 왔다.  한 부부는 10년 전부터 해마다  명절에 해외여행을 했다며 우리 부부에게 더 늦기 전에 많이 다니라고 했다.   

   

  인천공항에서   12시간 걸렸다. 비행기에서 나오자마자 맞이해주는 공항의 남자 직원은 유럽인같았고 기품 있었다. 버스를 이동하면서 본 현지인들은 아랍인 같고 말라보였다. 관광지에서는 피부가 검은 사람들도 있었다. 피라미드 만큼이나 궁금한 것은 이집트 사람들의 생김새였는데 종잡을 수가 없었다. 틀에 따라 움직이는 패키지여행에서 사흘이 지났지만 이집트 사람들과 제대로 대화도 못해보았다.


  유적지 앞에 버스가 서면 잡상인들이 스카프를 들고 달려왔다. 10달러짜리가 흥정을 하면 6달러, 그냥 지나치면 3달러, 버스에 오르는 순간에는 2달러로 내려갔다. 함께 식사를 했던 여자 분이 짙은 파란 색 바탕에 황금가면 무늬가 있는 머플러를 둘렀는데 그럴 듯했다. 다음에 노점상을 만나면 흥정해서 사봐야겠다 싶었다. 물건을 살 마음이 없을 때는 파는 사람들과 시선을 마주치지 말아야 덜 시달렸다.


  피라미드 앞에서 남편과 셀카를 찍으려할 때 한 현지인 남자가 다가왔다. 하얀색 긴 칸두라를 입었는데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경계를 하자 자기 목에 건 명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유적주변을 관리하고 설명하는 사람인가 싶어 핸드폰을 맡겼다. 웃으며 사진을 찍어준 뒤 2달러를 달라고 했다. 당했다 싶었지만 줄 수밖에 없었다. 피라미드 앞에서도 전통복장을 한 남자들이 서 있다가 함께 사진을 찍고 돈을 받았다. 남편은 내켜하지 않았지만 기념하려고 함께 사진을 찍어보자고 했다. 그 사람은 친절하게 자신의 터반을 남편 머리에 두르고 내게는 머플러를 해주었다. 2달러를 들여서 이집트에 온 기분을 냈으니 괜찮았다.


  신전을 가든, 휴게소를 가든 관광객이 모인 곳에서는 화장실 사용할 때 돈을 내야했다. 1달러를 내고 두 사람이 가기도 했지만 어수선할 때는 일행 중에 아는 사람이 모여 네 명도 함께 들어갔다. 더 복잡할 때는 다섯 명이 가기도 했으니 기준도 없었다. 공중화장실 앞에 나이든 남자가 앉아있는데 1달러를 내니까 ..’이라고 했다. 펜을 빌려달라고 하는 건가 의아했는데 계속 펜이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나중에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여기 사람들이 한국의 기본 볼펜을 좋아해서 한국인들을 보면 볼펜을 달라고 한다는 거다. 그렇게 마주친 사람들과는 1달러 2달러 때문에 실갱이를 했다.   

  

  무동력 배인 펠루카에서도 1달러와의 전쟁이 있었다. 바람의 힘으로 가는 배는 손으로 닻을 올려야했다. 40대쯤 되는 남자가 돛을 조작했는데 옆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명의 소년들이 아버지를 돕고 있었다. 5학년 쯤 되보이는 남자아이는 체격이 우람했고 얼굴이 굳어있었다. 1학년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는 몸매가 작고 귀염상이었다. 배가 조금씩 움직이자 소년들은 침향으로 만든 작은 낙타목각을 팔았다. 2달러라는 말에 나는 습관적으로 1달러를 불렀다가 안 된다는 반응에 금방 2달러를 주었다. 낙타 목각에 배어있는 향기를 자꾸 맡게 되었다. 두 명의 아이들은 갑자기 북처럼 생긴 악기를 꺼내 두드리더니 춤을 추며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좀 전까지 인상을 쓰며 돛을 만지던 아이는 세상 해맑은 표정으로 웃으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 옆에서 동생도 장단을 맞추며 몸을 움직였다. 사람들은 모두 긴장을 풀고 노래에 박수를 치며 호응을 했다. 체격 큰 아이가 일행 중에 한 아줌마의 손을 이끌자 그녀는 머플러를 휘날리며 큰 동작으로 춤을 추었다. 노을 지는 나일강에서 타악기에 맞추어 넉넉한 마음으로 웃음 짓는 시간을 보냈다. 소년들의 아버지가 닻을 내렸다. 바람이 거의 불지 앉자 그는 물가까지 힘을 들여 삿대로 배를 이끌었다. 소년들은 북을 뒤집었다. 거기에 바구니처럼 빈 공간이 있었다. 소년들은 달러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물건 살 때는 1달러 깍으려고 결사적이었는데 이번에는 누구나 달러주는 데 동참했다. 5달러짜리도 주었고 소년들에게는 마음이 후했다. 볼펜을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옆의 배를 보니 이 두 소년들보다 더 작은 체격의 남자아이도 있었다. 거기서도 한참 북소리에 맞추어 손뼉 치는 소리가 났다. 나일강 수면이 해넘이로 붉게 물들었다.     

 

  마부는 말에서 내렸다. 말까지 사진에 나오도록 구도를 잡아 마차에 앉아있는 우리 부부를 성의껏 찍어주었다. 다시 말에 올라타더니 자신을 포함해서 셀카를 찍었다. 자동차와 마차, 오토바이와 자전거와 사람들은 조화를 이루며 갈 길을 갔다. 상점들의 불빛이 어둑한 거리를 밝혀주었다. 규칙적인 말발굽 소리와 더불어 쉴 새 없이 차 경적소리가 났다. 마부는 뒤돌아보더니 자신을 가리키며 소리 높여 나하브라고 했다. 말을 가리키더니 우세르라고 했다. 자꾸 반복하며 자신과 말의 이름을 소개했다. 나는 휴대폰에 저장해놓았던 이집트 말을 찾아내어 알라이콤이라고 했다. 가이드에게 배운 안녕하세요?’라는 뜻이었다. 마부가 알아듣고 알살람이라고 밝게 화답을 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전통시장 같은 곳이 보였다.  마부는 마켓이라고 소개했고 손가락으로 다른 곳을 가리키며 스쿨, 허스피틀이라고 말했다. 관광가이드를 하기 위해 영어 단어를 익힌 것 같았다. 마부는 남편에게 고삐를 넘겨주는 동작을 하며 한번 말을 몰아보라고 했다. 둘이 앉아있는 덮개 있는 마차에서 앞으로 나와서 말을 몰아도 좋다는 시늉을 했다. 우리는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마부가 계속 친절을 베풀자 나는  슈크란이라며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마음속으로는 마차에 내린 후 1달러를 줘야하나 2달러를 줘야하나 작은 갈등을 했다. 남편은 무동력 배에서 소년들에게 볼펜을 못 주었던 게 걸렸는지 가방을 뒤적이더니 마부에게 볼펜을 주었다. 나하브는 환한 얼굴로 반색을 하며 고마워했다. 볼펜 하나에 그렇게 행복한 표정을 짓다니. 나하브는 말 회초리에 박차를 가하면서 마구 달렸다. 뒤에 쳐져있던 마차는 일행들을 앞질러 순식간에 맨 앞으로 갔다.

  마부는 휴대폰으로 어딘가 전화를 걸고 무슨 말인가를 한참동안 했다. 잠시 후 뒤돌아보면서 뭐라고 하는데 마이 선’,‘’, ‘도터라는 단어가 들렸다. 조합을 해보면 자기가 펜을 받고 너무 좋아서 아들에게 전화를 했고 딸에게도 주고 싶다는 것 같았다. 가방을 뒤져 삼색 볼펜을 찾아서 주었다. 나하브는 감동한 표정으로 도터라며 펜을 챙겼다.

  그는 거리의 한 장소를 가리키며 카르낙 템플이라고 했다. 카르낙 신전은 갔던 곳이라서 알아듣고 반가웠다. 전날 밤에 들른 신전은 푸른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을 배경으로  서있는 기둥들이 웅장했다. 신비로운 음악과 조명은 오래전 옛 신전의 모습과 그때의 사람들을 상상하게 했다. 밤에 카르낙 신전을 둘러보는 코스는 선택 관광이었고 60불이었다.  다음 날 낮에 보는 코스는 기본 관광에 포함되어서 따로 돈을 내지 않았다. 야간은 신비로워서, 낮에는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전날과 당일 둘러본 곳 앞을 마차로 지나가니 색다른 느낌이었다.

  나하브는 잠시 들를 데가 있다는 몸짓을 했다. 노점상들이 모인 곳으로 가더니 담배를 샀다. 남편에게 사라는 손짓을 했지만 우리는 손을 저었다. 나하브는 담배를 피우며 말을 몰았다. 뒷자리로 담배연기가 계속 날라 와서 작게 궁시렁댔지만 뭐라 하지는 못했다. 관광지에서 티켓을 받는 사람도 담배를 피우며 일하는 것을 봤다. 이곳의 문화인가 싶어 불편했으나 참았다. 마차에서 내리며 줄 팁으로 나는 2달러를 가방에서 꺼내 옷 주머니에 넣었다. 나하브는 우리 부부에게 박시시, 샤페이라고 말했다. 무슨 말인가 싶어 바라봤더니 입에다 손을 갖다 대고 먹는 시늉의 동작을 반복하며 박시시 머니 포 우세르 샤페이라는 말을 계속 했다. ‘피니시라는 말도 보탰다. 우세르는 말의 이름이고 머니와 피니시라는 단어와 동작을  조합해봤다. 일정이 끝나고 말에게 뭘 먹이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는 뜻인 것 같았다. 박시시와 샤페이가 뭔지 모르니 정확한 이해는 아니었다. 나는 나하브에게 하우 머치?’라고 말을 꺼냈다. 나하브는 ‘5달러라고 대답을 했다. ‘2달러?’라고 하자 나하브는 정색을 하면서 5달러를 반복했다. 나는 남편을 쳐다봤다. 그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나도 달라는 대로 5달러를 주기가 내키지 않았다. 선택 관광에 60불을 선뜻 쓴 것을 생각하면 5달러쯤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팁을 달라는 대로 주면 당연하게 여길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우리 부부가 2달러를 주자 나하브는 마차의 속도를 늦췄다. 말의 고삐를 늦추자 말은 터덜 터덜 걷기 시작했고 마차는 일행들의 뒤로 밀려났다. 밤거리의 풍경이 더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남자들이 많았지만 여자들과 아이들도 지나갔다. 일상적인 현대복장과 전통복장들을 입은 사람들이 혼재해 있었다. 그리 밝지 않은 조명이 비추는 일상용품점, 빵집, 과일가게 들이 다닥다닥 이어져 있었다. 한 가게 안에 사람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앞에는 하얀 돼지 같은 통통한 동물이 거꾸로 매달렸다. 방금 뭘 본거지? 나는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서 펼쳐진 장면에 혼돈이 왔다. 칼을 본 것도 같고 피를 본 것도 같았다. 언뜻 비춰진 이미지에 상상이 더해진 것일 수도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인 것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도살이 이루어졌던 건지.  마차를 바라보며 무심하게 미소를 짓던 사람들은 당연하게 짐승을 전통양식으로 다루는 중일 수도 있었다. 기후와 역사와 인종이 다른 곳에서 색다른 상황을 마주쳤다. 풀이 죽어 돌아가는 마부의 뒷모습과 매달린 짐승을 둘러싼 사람들의 잔상이 마음에 남았다.  

     

  호텔에 도착해서 로비 소파에 앉아있자 직원이 둥근 쟁반에 여러 잔의 웰컴드링크를 내왔다. 달콤새콤한 매실차 같은 맛이었다. 남편이 가이드로부터 룸키를 받는 동안 기다리는데 한편에서 생음악이 흘러나왔다. 체격이 큰 이집트 여자가 재즈풍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저녁식사는 뷔페식이었다. 식당입구에서는 셰프들이  양갈비를 구웠다. 구운 양갈비를 받아 식당으로 들어가서 전에 식사했던 부부와 한 테이블에 앉았다. 다양한 메뉴의 음식들이 풍성했다. 병아리콩 수프와, 에이쉬빵, 토마토, 오이, 가지튀김 등을 먹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가이드가 식탁으로 왔다. 나는 마부가 말했던 샤페박시시가 뭐냐고 물어봤다. 가이드는 말먹이이라고 말해주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있는 사람들이 베풀어야한다는 사고가 있지만 달라는 대로 줄 필요는 없다고 했다. 1달러로는 2키로 정도의 바나나를 살 수 있다한다. 내가 봤던 거꾸로 매달린 하얀 짐승은 양일 거라고 했다. 가이드는 호텔 안에서는 음료와 주류가 무료라고 일러주었다. 투숙객들이 룸키를 보여주면 무제한으로 마실 수가 있었다. 식사 후 두 부부는 Bar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나누었다. 남편은 모히또, 다른 남자 분은 데킬라 선라이즈를 시켰다. 여자들은  블러드 메리를 마셨다. 여유로운 음악과 풍요로운 분위기의 공간에서 나른해져가는 시간. 나는 탁자 위에 놓인 칵테일 잔들을 바라봤다. 투명한 연둣빛, 따뜻한 오렌지 빛, 강렬한 붉은 빛 액체들. 칵테일 잔 위로 박시시를 반복하던 마부의 표정과 거꾸로 매달린 양을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카르낙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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