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나트랑 달랏 여행
달랏 기차역
바닷가로 가는 도로는 활기찼다. 오토바이를 탄 젊은이들은 신호등이 없어도 차들과 조화를 이루며 속도를 냈다. 관광지 특유의 해방감이 가득한 분위기였다. 우리 일행은 베트남 기사가 운전하는 전동 카의 뒷좌석에서 바람을 맞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불빛의 도심을 지나자 야자수들이 늘어선 바닷가 풍경이 펼쳐졌다.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야외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자정에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이번 여행은 다문화 학생들을 지도하다 알게 된 세 명의 선생님들과 함께 왔다. 나이와 살아온 환경은 달랐지만 성향이 비슷해서 일을 마친 후에도 만났다.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지도활동을 하는 분이 있어 겨울방학 기간에 여행을 하게 되었다. 적당한 장소와 시간과 비용을 고려해서 결정한 것이 나트랑 달랏 3박5일 패키지 여행이었다. 첫날 저녁에 출발해서 마지막 날 새벽에 돌아가니까 만 3일 동안의 일정이었다.
열 네 명의 전체 인원은 각자 팀별로 나누어 앉았다. 가이드가 주문한 생맥주 통과 커다란 피자가 테이블에 놓였다. 사람들은 잔을 부딪히며 일정의 마지막을 자축했다. 한참 추운 날씨를 피해 동남아에서 기분 좋은 파도소리를 들으며 밤을 보내니 마음이 느슨해졌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인지 이번 여행이 성공적으로 여겨졌다. 생각해 보면 3일 동안이 모두 좋았던 건 아니다. 특별한 것을 찾아 떠났지만 일상처럼 무게감이 있었다. 모든 이동과 호텔 숙박, 관광과 먹거리를 제공하니 여행사에 내는 비용은 저렴한 편이었다. 가이드가 옵션을 제시했을 때 사람들은 경험을 살려 순순히 받아들였다. 나트랑에서 하루 자고 달랏으로 이동했다. 아침에 잠시 본 나트랑 바다는 그냥 두고 가기가 아쉬웠다. 길게 이어진 모래사장에 한가롭게 자리 잡은 파라솔들을 보니 야자수 아래서 여유롭게 쉬다가 바다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려도 좋겠다 싶었다. 달랏으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멀어져 가는 바다를 뒤돌아봤는데 마지막 날 밤이 되어서야 다시 오게 되었다.
달랏은 기온도 적당한 고산지대의 깔끔한 프랑스풍 도시였다. 하루 동안 여러 군데를 돌아봤다. 다딴라 폭포, 진흙공원, 죽림사, 달랏 기차역, 마지막 황제의 여름별장, 랑비앙 전망대, 크레이지 하우스, 천국의 계단, 야시장을 갔다. 곳곳에 사계절의 꽃들이 혼재해서 피어났다. 팬지 같은 봄꽃, 진분홍의 열대 꽃, 수국, 샐비어나 코스모스 같은 가을 꽃 들이 마음을 환하게 했다.
다음 날은 오전에 침향을 파는 매장에서 두 시간을 보냈다. 연륜이 있어 보이는 한국 남자 분은 나무에서 채취하는 침향이 혈관을 맑게 하는 베트남 특산물이라고 설명을 했다. 세통의 약품이 포장된 상자를 꺼내고 천불의 가격을 제시했다. 선뜻 사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부부동반으로 온 남자 분은 관심을 보이다가 부인을 의식하더니 조용해졌다. 판매하는 남자 분은 병원 약을 먹는 것 보다 예방이 중요하다며 내게 “드시는 약 없어요?”라고 물었다. 일행 중에 내가 나이가 많다고 여겼는지 우연히 눈이 마주쳐서 그랬는지 몰랐다. 콜레스테롤 저하용 약을 먹고 있는 중이어서 순간 놀랬다. 가이드가 ‘노니’를 더 얹어 주겠다는 추가 설명에도 사람들은 민망해만 할 뿐이었다. 커피를 파는 소핑센터에도 들렀다. 바리스타 복장을 한 젊은 남자의 진행에 따라 커피를 직접 로스팅하는 체험을 했다. 족제비의 장을 통과한 커피알맹이에서 추출된 커피의 에스프레소향을 맡으며 시음을 하자 사람들은 긴장이 풀렸다. 진행자는 프로다운 자세로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포장된 다양한 커피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먼저 들린 곳과 똑 같이 금붙이와 명품도 받는 다는 말에 사람들은 웃었다. 대부분이 관심을 보이며 커피를 구매했다. 가격대가 적당해서 접근하기 좋았다. 침향 매장에서도 고가의 약을 나누어서 팔거나 가격대다 낮은 다른 약을 취급했으면 사람들이 접근하기 쉬웠을 것 같아 아쉬웠다.
첫날 아침에 제대로 못 보고 떠났던 나트랑 바닷가에서 마지막 날 밤 마무리를 했다. 동료들은 맥주를 마시며 오기를 잘했다고 대화를 나누었다. 함께 밤바다 가까이 걸어갔다. 현지의 어린이 들이 모래사장에서 모래성을 쌓았고 엄마인 듯한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다. 바닷가는 관광객과 베트남 사람들이 어울려 조금은 들 뜬 듯한 분위기였다. 어둠 속에서 자잘한 하얀 파도가 밀려왔다.
네 명의 동료들은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각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나이 들어 만났지만 뜻이 맞아 모임이 유지되고 외국의 밤 바닷가에 함께 서있다는 인연이 특별했다. 그동안 길을 걸으며 그림을 그렸고 함께 전시회도 열었다. 재능기부로 초등학생들 대상으로 역사와 문화에 대해 수업을 하고 이순신장군 동상과 한옥 그리기도 지도했다. 평소에 만났을 때 보다 여행 중에 함께 숙박을 하며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한 분은 결혼 초에 방송 통신대 유아교육과에 입학했는데 남편 직장을 따라 오랫동안 외국생활을 했다. 홍콩에서 한국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글가르치는 봉사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오랜 공백 후에 학업을 계속했고 뒤늦은 나이에 졸업을 했다. 유치원과 돌봄교실에서 실습을 했고 앞으로 어떤 진로를 선택할지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다른 분들도 상담사나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도전하며 사는 열정을 지녔다.
나도 교직을 명퇴한 후 다양한 보람일자리에 참여했지만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 지 생각해보았다. 아버지가 한국인이고 어머니가 베트남인인 다문화 초등학생을 가르쳤을 때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2학년인 그 남학생이 구구단을 외울 수 있도록 반복해서 함께 외웠고 동화책을 읽어나갔다. 코로나 시대에서 썼던 마스크 위로 반짝이던 눈빛이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 외국이주민 여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도 해보고 싶다. 베트남 여성을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밤바다를 뒤로 하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기회가 되면 여유롭게 자유여행을 하며 베트남에 대해 더욱 알아가고 싶다.
나트랑 바다